죽음이란 쌍생아처럼, 샴쌍둥이처럼 삶속에 엄연히 함께 존재합니다.
우리 몸 자체에도 매 순간 수많은 세포가 죽고 새로 태어나고 있으니,
살아 있는 이 순간조차 죽음을 품고 있는 것입니다.
-이경혜(작가, 번역가)
죽음이 사라진 세상
바닷가 외딴 집에 아픈 엄마와 폴이 살고 있습니다. 어느 날 폴은 아픈 엄마를 데리러 온 ‘죽음의 신’을 도토리 속에 가두고 바다에 던져 버립니다. 덕분에 엄마는 다시 건강을 되찾지만, 그때부터 이상한 일들이 일어납니다.
달걀이 깨지지 않고, 채소는 뽑히지 않으며, 곡식은 거둘 수가 없고, 고기는 잡히지 않지요. 죽음의 신을 가둔 덕분에 그 어떤 것도 죽지 않게 되어 버린 것입니다. 죽음이 사라진 세상에서 사람은 물론이요, 새들도 물고기들도 먹을 것이 없어 배고픔에 허덕이지요. 폴은 세상을 돌아가게 하는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죽음임을 깨닫고, 죽음의 신을 찾아 나섭니다. 폴은 과연 죽음과 삶을 구할 수 있을까요?
삶조차 온전하지 않은 세상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고 피하려 합니다. 삶의 끝은 죽음이라고 생각하니까요. 그래서 죽음이라는 단어를 금기시하고 외면하다가 죽음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그것을 맞닥뜨리게 됩니다. 그러니 두렵고 피하고 싶을 수 밖에요.
왜 생명은 영원하지 못하고 죽음을 맞아야 할까요? 죽음은 어떤 필요 때문에 존재하는 것일까요? 뮈리엘 맹고 작가는 이 물음에 대한 질문에 답하는 새로운 생각을 던집니다. 죽음이 사라진 세상은 어떨까? 삶이 영원히 지속된다면 어떨까? 우리는 이 그림책 『도토리 껍질 속의 죽음』을 통해 죽음이 없으면 삶조차 온전하지 않는다는, 당연하지만 그동안 인식하지 못했던 진실을 알게 됩니다.
상징과 은유로 가득찬 그림
그림 작가 카르멘 세고비아는 ‘죽음은 삶과 연결되어 있다’는 책의 주제를 절제된 색과 상징적인 사물을 사용해 효과적으로 드러냅니다.
망토를 입은 노파와 그가 들고 다니는 낫은 서양에서 죽음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사물입니다. 모든 것을 덮을 수 있는 망토, 농작물을 베는 낫은 목숨을 거둔다는 의미를 지녔습니다. 바다 역시 마찬가지이지요. 큰 물을 건너 저편에 도달한다는 것은 이승을 떠나 저승으로 넘어간다는 상징입니다.
검은색과 붉은색의 대비는 이 책의 주제를 더욱 도드라지게 합니다. 죽음의 신을 가둔 뒤 엄마의 뺨과 살에 비치는 붉은 기운, 폴의 집과 마을에 사람들의 붉은 옷, 빨간 게와 물고기들은 강렬한 생명과 삶을 의미합니다. 반면에 사신의 검은색 망토과 낫, 검은 도토리 껍질은 죽음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그 경계에 바다의 푸른색이 자리하고 있지요. 이 책에서 푸른색은 삶과 죽음, 이승과 저승을 상징합니다. 폴과 엄마가 살고 있는 외딴 집이 바닷가에 있다는 것, 이야기 초반 아픈 엄마가 입고 있는 옷은 푸른색이라는 점은 이는 엄마가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특히 폴의 옷은 검은색과 붉은색, 푸른색이 섞여 있어서 삶과 죽음은 외따로 떨어진 것이 아니고,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만물이 소생하고 생명의 기운이 가득한 순간에도 죽음은 늘 그 이면에 있으며, 생명의 기운은 죽음에서 온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우리가 늘 죽음을 이야기하고, 죽음을 생각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