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위기
참여정부에게 허니문은 없었다. 참여정부가 출범한 2003년 봄엔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하며 전쟁이 시작되었고, 노무현 대통령은 고뇌 끝에 파병을 결정하였다. 그는 어떤 일이 있어도,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한반도에서의 전쟁만큼은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거대 야당은 김두관 장관의 해임건의안을 제출하였고, 대통령은 결국 장관을 교체해야 했다. 2004년 봄엔 검찰이 대선 자금 수사 결과를 발표하였고 야당은 ‘동반책임론’으로 대통령을 압박했으며, 총선을 앞두고 선거법 위반 시비 끝에 탄핵 소추를 받았다.
위기의 순간은 또 있었다. 2004년 마지막 해외 순방지인 일본과의 정상회담 때의 일이다. 대통령의 이상한 점들이 참모들에게 포착되고 있었다. 말투가 느리고 어눌해졌던 것이다. 아침에는 어지럼증으로 휘청했다. 주치의는 조심스럽게 ‘뇌경색’ 가능성을 언급했다. 예사롭지는 않았지만 정상회담을 취소할 수는 없었다. 참모들은 초비상이 되었다. 만일의 상황을 대비해야 했다. 윤태영 비서관은 귀국을 강권했지만, 대통령은 그럴 수 없다고 했다. 대통령은 정상회담과 만찬은 물론, 다음 날 일정까지 마친 후에 귀국했다. 이틀 뒤, 서울대병원에서 오랜 시간 검진이 이어졌다. 뇌경색의 흔적이 뇌 한 가운데에 남아 있었다.
임기 말에는 자신의 공약이었던 개헌을 제기하며 자신의 임기까지 걸고자 했지만(대통령의 사임), 여론은 그것을 그저 ‘정략’으로 치부했다. 저자는 이러한 주요 고비들에 임하는 노무현 대통령의 고뇌와 선택을 기록하고 있다.
봉하, 454일간의 기록
노무현 대통령은 2008년 2월 퇴임 후, KTX를 타고 고향 봉하로 향했다. 전직 대통령이었지만, 그는 결코 한가한 사람이 아니었다. ‘민주주의 2.0’ 프로그램도 완성해야 했고, 유기농 벼 재배와 화포천 가꾸기, 생태계 조성 등의 당면 과제가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침 일찍부터 사저 앞으로 몰려든 방문객들과의 만남이 중요한 일과가 되어 있었다. 방문객들은 힘껏 소리쳤다. “대통령님, 나와 주세요.” 한두 차례로 끝날 것으로 예상했던 방문객들의 요청은 끝이 없었다. 반가운 함성이었다.
한갓진 봉하에 자리잡은 전임 대통령의 인기는 날로 높아지고 있었다. 봉하 벌판에 오리를 풀어 놓을 무렵, 서울에서는 한미 쇠고기 협상 결과에 반대하는 촛불시위가 벌어지고 있었다. 그즈음부터 청와대로부터 이상한 이야기들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른바 ‘기록물 유출 건’이었다. 그리고 공기업 등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전방위로 진행되며 참여정부 인사들의 이름이 이니셜로 언론에 보도되기 시작했다. 농협의 세종증권 인수와 관련하여 박연차 회장의 이름이 오르내리기 시작했고, 대통령의 형님이 구속되었다. 그리고 그는 칩거를 시작했다.
이후 노무현 대통령은 봉하 사저에 사실상 갇혀 있었다. 언론은 봉하 사저를 주시하며 사진을 찍었다. 손님들의 발길도 끊겼다. 오겠다는 사람에게도, 그는 오지 말라고 강권했다. 이광재 의원이 구속되고, 안희정 최고위원에 대해 내사가 이어지고, 강금원 회장이 구속되었다. 그는 홈페이지를 닫기로 하면서 지지자들에게 글을 남겼다. “이제 저를 버리셔야 합니다.”
마지막 세 장의 제목은 “고난”, “유폐”, “작별”이다. 겉으로 쉬이 드러나지 않던 노무현 대통령의 고뇌는 윤태영 비서관의 시선 속에 포착된다. 하지만 저자는 고요하고 절제된 언어로 기록을 이어 간다. ‘노무현의 필사’로서, 또는 오랜 관찰자로서 자신의 사명을 다한다.
이 책엔 ‘노무현의 진심’이 오롯이 담겨 있다. 이 책을 통해 노무현이란 인물은 하나의 감동적인 서사로 우리 앞에 당도한다. 그리하여 그를 향한 우리의 그리움은 이제 노란 빛깔 희망으로 도약할 준비를 한다.
대통령의 메모 “나의 구상”
노무현 대통령은 재임 중 ‘이지원’ 시스템 상의 메뉴인 ‘나의 구상’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메모 형식으로 정리하곤 했다. 메모가 완성되면 대통령은 부속실과 연설기획비서관실을 통해 각 수석실에 구체적인 지시로 전달했다. 이 책의 부록으로 담은 대통령의 메모는 저자가 대통령에게 전달받아 기록한 것으로, 대부분 처음으로 공개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