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니체가 일각돌고래로 태어났더라면
전쟁이나 홀로코스트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촘촘하게 배치된 과학적 근거와
치밀하게 설계된 논리가 만나 펼쳐지는
인간 존재에 대한 새로운 관점
1354일 동안 행복을 선사한 푸바오가 중국으로 반환되었다. 한국에서 자연 번식으로 태어난 첫 판다였기에 탄생부터 성장 과정이 지속적으로 소개되어 마음을 쏟은 사람이 많았다. 또 공교롭게도 푸바오가 한국에서 성장한 시기는 코로나 팬데믹 탓에 사람들의 마음이 지쳐 있던 시기였다. 눈부신 문명의 발전을 이루었노라 자평했던 인류는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에 속수무책이었고, 세계적으로 700만 명 이상 사망한 초유의 상황을 감당해야 했다. 어쩌면 사람들은 특별하고, 예외적이고, 뛰어나다 생각한 인간 존재에 대한 무상함 때문에 푸바오에 마음을 내어주었을지도 모른다.
생물학 교수이자 과학 저술가인 저스틴 그레그는 학제를 넘나들며 동물 행동과 인지, 언어를 연구해 온 끝에 『니체가 일각돌고래라면』이라는 도발적 저작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인간의 우월함이라는 너무도 당연한, 누구도 섣불리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던 가정에 촘촘하게 배치된 과학적 근거와 치밀하게 설계된 논리로 도전한다. 또한 차별과 혐오, 감시와 처벌을 정당화한 도덕 체계, 기후위기를 앞당긴 아름다운 잔디밭에 대한 집착, 역사상 최악의 전쟁 무기를 가능케 한 원자의 발견 등 다양한 사례를 더해 우리의 견고했던 사고방식에 조금씩 균열을 낸다.
| 진화의 기적인가, 진화론적 아킬레스건인가?
자신의 지성에 매혹당하곤 하는 인간의 인지능력을
둘러싼 도전적 이야기
2020년대는 두 개의 대비되는 거대한 사건이 공존하는 시기이다.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가 2020년 최고의 과학 성과로 ‘코로나 19 백신 개발’을 선정한 것처럼 불과 1년도 걸리지 않은 백신 개발 덕분에 전 세계를 공포 속에 몰아넣은 팬데믹 종식은 앞당겨졌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2022년 2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했고, 두 번의 거대한 전쟁을 겪은 유럽은 물론이고 전 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우며 전쟁의 향방을 지켜보고 있다. 모두 인간이 만든 일이다.
『니체가 일각돌고래라면』에 등장하는 사례들은 인간 지능이 만든 눈부신 성과와 함께 그것이 빚어낸 죽음과 파괴의 그림자를 동시에 조명한다. 오직 인간만 가진 인지능력에 의해 가능한 도덕적 추론은 사회적 상호작용의 근간이 되었다. 하지만 캐나다 원주민과 나치 치하의 유대인에게는 차별과 혐오, 감시와 처벌을 정당화한 수단으로 작용했다(4장). 말끔히 손질된 정원에 대한 욕망은 어떠한가. 아름다운 잔디밭은 개인적, 국가적 부유함과 번영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며 현재 미국적 풍물을 드러내는 상징이 되었지만, 동시에 이 지구의 기후위기를 앞당겼고 지금도 앞당기고 있는 중이다(6장). 현재 우리의 문명을 지탱하는 과학과 수학의 성과로 발견한 원자는 결과적으로 최악의 전쟁 무기가 되고 말았다(7장).
| “술술 읽히면서도 머릿속에 여운을 남긴다.”_《사이언티픽 아메리칸》
“할 수만 있다면 그의 머릿속 세계를 거닐고 싶다.”_애덤 그랜트
《가디언》은 이 책에 대해 “인간의 지능이 한 종으로서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영광이 아닌, 실존적 불안과 갈수록 명백해지는 자멸의 원천은 아닌지 답하고자 한다”라로 평했는데, 니체의 삶의 바로 그러했다. “심오한 생각이 과하면 말 그대로 두뇌가 망가질 수도 있다는 전형적인 예를 보여 주는, 겉으로는 멀쩡하지만 속은 엉망진창인 사람”(16쪽)이었던 니체는 생의 대부분을 정신적 고통 속에 보냈고, 그 고통 속에서 생을 마감했다. 니체는 “다른 목적 없이 (중략) 바보처럼 모든 비뚤어진 욕망으로 맹목적이면서 미친 듯이 삶에 매달”린다며 동물을 불쌍하게 여겼다. 저스틴 그레그는 각 장마다 다루고자 하는 주제에 맞춰 니체의 경구를 도입부에 배치함으로써 독자들에게 주제를 분명히 각인시키고, 앞으로 펼쳐질 논리의 전개에 대해 긴장감을 더한다.
하지만 우리의 견고한 사고방식을 흔드는 과정은 긴장한 것만큼 결코 어렵고 거칠게 진행되지 않는다. 동물 행동과 인지 전문가답게 다양한 동물 종들과 인간을 비교하며 주장을 이어가는 과정은 마치 잘 연출된 한 편의 동물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은 즐거움을 느끼게 한다. 덕분에 “매력적으로 쓰였을 뿐 아니라 그 속의 논쟁적인 주제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숙고할 가치가 있다”(《월스트리트 저널》)라고 말할 수 있는 책이 탄생했다. “오랜만에 접한 최고의 데뷔작 중 하나”라고 극찬한 애덤 그랜트가 “지능에 대한 기존의 관념을 생각하지 않은 채 이 책을 펼쳐 읽기 시작하라고 감히 권한다”라고 말한 것처럼, 철학과 과학, 심리학을 넘나드는 이 도발적인 책은 독자들에게 놀라운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