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과의 대화,
건축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보여주다
BCHO 파트너스(대표 조병수)의 작품집 『BCHO 파트너스 ― 조병수』가 『+ Architect 03 ― 조병수』(공간사, 2009) 이후 15년 만에 출간됐다. 이번 작품집은 조병수의 에세이 ‘땅과의 대화’를 시작으로, ‘땅(EARTH)’, ‘기단(PLATFORM)’, ‘스크린(SCREEN)’, ‘매스(MASS)’ 네 가지 카테고리에 따라 지난 15년간 진행했던 대표 프로젝트 18개를 묶어 소개한다. ‘땅과의 대화’라는 토대 위에서, 각 장은 주위의 여건에 영향을 받는 ‘건축’이 어떤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는지 조명한다. 완공 사진과 글뿐 아니라 시공 과정을 담은 사진과 상세도면을 함께 수록해 건축이 지어지는 과정을 독자들이 보다 면밀히 살필 수 있도록 했다.
‘EARTH’에서는 땅과 적극적으로 관계를 맺으며 건축이 대지에 스며드는 방식을 보여주는 지평집, 시저스 하우스 등을 소개하며, ‘PLATFORM’에서는 건물의 판 아래 도시적, 환경적 맥락이 관통하는 방식을 퀸마마 마켓, 세 박공집의 사례를 통해 이야기한다. 이어 ‘SCREEN’에서는 스크린을 통해 건축이 주변의 맥락과 소통하는 방법을, 마지막 ‘MASS’에서는 어수선한 땅 위에서 담담하게 서 있는 건축이 가질 수 있는 정직함을 담아낸다. 책의 후반부는 배형민(서울시립대학교 교수)의 비평과 프로젝트별 상세도면, 그리고 시기별로 정리한 작업 연표로 마무리된다. 이러한 자료들은 지난 15년간 BCHO 파트너스가 걸어온 길의 의미를 학문적으로 짚는 한편, 작업의 다양성과 깊이를 한눈에 일별할 수 있도록 돕는다.
“건축은 순수예술과 달리 땅이나 그 주위의 여건이 강력히 프로젝트의 방향성을 이끈다.
우리가 지금까지 해온 건축 만들기 방식은 최소한 그러했다.
건축가 개인의 성향이 건축적 형태로 강하게 드러나는 경우와는 달리 우리가 지은 건물들은 그 건물이
지어질 땅의 흐름과 특성에 맞춰져 지어진 경향이 확연하게 보인다.”
- ‘땅과의 대화’ 중에서, 11쪽
편집자의 글
땅에 대한 끝없는 고찰,
건축으로 발화하다
이 책은 30년간 BCHO 파트너스가 수많은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이어온 땅에 대한 끝없는 고찰의 산물이다. 이러한 과정과 누적된 시간에 대해 배형민은 “조병수처럼 단순미, 비움, 한국적인 미학을 추구했던 건축가들은 그동안에도 있었다. 조병수가 특별한 것은 이런 생각을 물질로 실현하는 능력이 매우 탁월하다는 점이다. 이런 역량은 수십 년간의 꾸준한 실험, 협업, 현장 경험으로 쌓은 것이다. 이 과정에서 땅, 기단, 매스, 스크린이라는 네 개의 요소가 확인되었고 조병수의 건축 기율에 접근할 수 있는 일련의 “이름”을 갖게 되었다. 그의 4요소는 보다 넓은 역사적인 관점에서 그의 작업을 볼 수 있도록 해준다.”(290쪽)고 평한다.
땅과의 대화를 통해 세워진 건축물이 “강한 경험과 인식을 줄 수 있도록”(109쪽) 하기 위해서는 간결함과 단순함이 필요하다고 조병수는 이야기한다. 그의 건축을 찬찬히 바라보면, 맥락을 드러내는 세심한 노력이 보인다. 드러낼 것인지, 반만 드러낼 것인지, 혹은 숨길 것인지, 다양한 방법과 효과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벽체, 지붕, 혹은 그 외의 것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 고민의 집합체로서 건물이 탄생한다. 책을 구성하는 방식도 이러한 그의 생각을 담고 있다.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건축하고, 그 결과를 바라보며, 그다음의 건축은 또 어떠해야 하는가, 그리고 어떤 구조와 기술, 재료, 공법으로 이것을 구체화할 것인가. 『BCHO 파트너스 - 조병수』는 현대 건축가들에게, 건축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혹은 건축으로 영감을 받는 모든 이에게 스스로 질문할 기회를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