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설 중에서
많은 사람들은 조선의 의인들을 이야기하고, 노래 부르고 싶어 한다. 박석무 교수는 『조선의 의인들』(한길사)에서 “현실의 삶이 괴롭고 고달프거나 가야 할 방향이 어두울 때, 과거의 역사적 경험이 아니면 어디서 지혜를 얻어 현재의 난관을 극복하겠는가. 나라의 정치가 혼란해 근심이 깊어지면, 난세에 어떤 역량을 발휘해 그 어려움을 극복했는가를 알아볼 수 있는 선현들의 경륜과 삶의 발자취를 살펴보아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퇴계 이황과 성리학의 본간 도산서원에 깃든 사상 외 23명의 조선의 의인들을 소개하고 지속적으로 말 걸기를 시도하고 있음을 본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관심 있게 보아야 할 것은 의인이나 영웅은 어느 특정한 사람만의 관점에서 결정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유사하게 혹은 같은 삶의 방법이나 사상으로 결정된다고 반드시 확언할 수 없음이 바로 유구한 역사 속에서 우리가 만나야 할 사람들을 특정할 수도 없으며 그들의 행보나 유적을 미쳐 발견할 수 없는 유한한 경험치만을 지니고 살아온 까닭이다. 그렇다면 이석규 작가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시산군 역시, 이석규 작가뿐 아니라 그들의 후손들에게는 분명 의인이며 영웅이며 또한 시대적 멘토가 틀림없는 것이다. 그 역사적 변증을 이 소설이 대리한다고 한다고 봐도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21세기에 왜 우리는 조선시대의 잊혀진, 혹은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만 희미하게 남아있거나 역사서를 뒤적거리다가 문득 발견한, 유명하지도 않거나 검증이 되지 않은 이름 석자 드러내놓고 고백할 고증을 발견하지 못한 채 누군가의 말에 실낱같은 희망을 걸어보는 걸까? 그런 인물을 만나면, 우리는 가볍게 치부할 수 없다. 특히 어느 누가 자신의 일생을 걸어 봄직 하다고 장담하고 그의 역사적 사실을 세상에 드러내 알리고자 할 때면 더욱더 그의 고증에 관심을 조명시켜야 함이 맞다.
이석규 작가가 바로 그 예에 해당하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21세기 이 시대는 인간이 길을 잃고 방황하는 인륜의 황폐한 처지에 이르렀음을 부인할 사람이 없다. 문명의 이데올로기 앞에서와 그 유산이 인간의 정신세계를 잠입하여, 인간의 가치를 폄하시키고 동시에 인간관계에 불신이라는 치명적인 균열을 야기시키고 있다. 가정이 해체되고, 사람 하나하나의 가치나 존엄성이 상당 부분 사라진 이 시대를 향해서 과연 누가 애통하면서 가슴을 치면서 아파할 것인가? 또한 인간 문명의 산물은 지구 환경을 파괴하고, 그 파괴된 지구 안에서 심하게 굴절된 가치관의 소유자들이 자행하는 온갖 범죄 행위는 또 어떻게 판단 할 것인가? 그 현상들을 위해서 선택적 위치를 점유한 지성인들과 지식인들 그리고 교육자나 종교인들과 문화운동가들을 비롯한 정치인들의 역할에 과연 몇 점이란 점수를 줄 수 있겠는가? 서두에서 밝힌 바와 같이 뿌리 깊은 유서를 가진 대한민국이 왜 이렇게 분열되고, 이분법의 이데올로기에 맥을 놓치고 있으며, 중심을 잃고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는가? 그 질문들에 우리 스스로 정확하고 효율성 있는 답을 내야만 할 때가 되었다. 그에 말 걸기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석규 작가가 지적 노동을 시도하고 있는 이유이자 목적이라고 보면 맞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