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펼치면 아버지(Alan Alexander Milne, 앨런 알렉산더 밀른)가 아들(크리스토퍼 로빈 밀른, Christopher Robin Milne)에게 동화를 들려주는 장면과 동화 속의 장면이 교차하면서 동시 진행형으로 전개된다. 이야기를 듣는 로빈의 옆에는 여러 동물 인형들이 놓여 있는데, 동화 속에서는 그 인형들이 로빈을 포함해 다 친구가 되어 숲속에서 이런저런 일들을 함께 겪으며 유쾌하게 살아간다. 이야기를 듣던 중에 로빈은 불쑥 “정말 그랬어요?” 하는 식으로 끼어들기도 하고, 이야기가 끝나면 목욕을 하고 자러 간다.
1882년 영국 런던에서 출생한 밀른은 유머 잡지 〈펀치(Punch)〉 편집부 직원이자 작가로 활동하다가 1913년 서른한 살에 도로시 다핀 드 셀린코트(Dorothy Daphne de Sélincourt)와 결혼했고, 1920년에 외아들 로빈이 태어났다.
결혼 7년 만에 뒤늦게 얻은 아들을 각별히 사랑했던 밀른은, 로빈이 네댓 살 정도 무렵에 동물 인형들에게 말을 걸며 놀고 있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은 밀른은 어린 아들을 무릎에 앉히고 아들의 동물 인형들을 의인화해 지어낸 동화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동화들을 묶어 1926년 《위니 더 푸(Winnie-the-Pooh)》를 세상에 선보인다. 우리에게는 ‘곰돌이 푸’로 더 친숙한, ‘지구상에서 가장 유명해진 곰’이 첫걸음을 떼는 순간이었다.
동화에 나오는 주인공들의 면면을 살펴보자.
위니 더 푸(Winnie-the-Pooh) : 늘 엉뚱한 행동을 일삼고 머리가 썩 좋은 편은 아니지만 천진난만하기 이를 데 없는 곰돌이. 노래를 만들어 부르고 시 짓기를 좋아한다.
피글렛(Piglet) : 푸의 절친한 친구이며 소심하고 겁쟁이지만 호기심도 많은 새끼 돼지.
이요르(Eeyore) : 늘 우울해하며 구시렁대는 늙은 당나귀.
엄마 캥거(Kanga)와 아기 루(Roo) :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숲속 친구들의 일원이 된 엄마와 아기 캥거루(KangaRoo).
래빗(Rabbit) : 늘 간섭하고 나서길 좋아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토끼.
아울(Owl) : 허술하게(?) 아는 게 많은 올빼미.
크리스토퍼 로빈(Christopher Robin) : 숲속 동물들의 든든한 친구이자 조력자인 소년.
그리고 조연급인 래빗의 친구와 친척들…….
밀른이 상상력을 발휘하여 만들어낸 래빗과 아울을 빼면 나머지 동물은 모두 아들 로빈이 가지고 있던 장난감 인형들이었다. 그리고 이들이 살아가는 장소는 동화 속에서 ‘100에이커 숲’과 그 주변으로 묘사되고 있는데, 이 숲의 실제 이름은 런던 남쪽으로 48km 정도 떨어진 이스트 서식스(East Sussex) 지방에 위치한 하트필드(Hatfield)의 ‘애쉬다운 숲(Ashdown Forest)’이다.
밀른은 로빈이 다섯 살이었던 1925년에 하트필드의 아담한 시골집 코치포드 농장(Cotchford Farm)을 사들여 주말이나 휴가철이면 늘 이곳에서 아내, 아들과 함께 지내곤 했다. 그러면서 아들을 데리고 자주 산책을 나갔던 장소가 바로 애쉬다운 숲, 즉 동화 속의 ‘100에이커 숲’이 된 것이다. ……(중략)…… 《위니 더 푸》는 아버지가 어린 아들이 실제로 몸담았던 공간에서 아들이 사랑하는 인형들이 펼치는 재미난 모험을 이야기로 들려주는, 아들을 위한 선물이었던 셈이다.
《위니 더 푸》의 탄생에 어니스트 하워드 쉐퍼드(Ernest Howard Shepard)라는 이름을 빼놓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는 밀른보다 세 살 연상으로, 두 사람은 앞에 언급한 유머 잡지 〈펀치〉 편집부의 동료 직원으로 인연을 맺었다.
자료에 따르면 쉐퍼드는 《위니 더 푸》의 삽화를 그리게 되기까지 몇 차례 우여곡절을 겪었다. 원래는 다른 화가가 작업을 맡았는데, 동료 시인이 강력하게 추천하는 바람에 밀른은 마지못해 쉐퍼드의 그림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그는 삽화를 그리기 위해 밀른과 로빈이 살고 있는 집에 머무르며 아이와 인형의 모습을 스케치하는 열정을 보였다.
밀른의 개성 넘치는 문장과 쉐퍼드의 언뜻 투박하면서도 따뜻한 그림으로 합작한 《위니 더 푸》는 출간 즉시 선풍적인 인기를 불러모았다. 자신감을 얻은 밀른은 2년 후인 1928년에 역시 쉐퍼드와 손을 잡고 두 번째 푸 이야기 《푸 모퉁이에 있는 집》을 출간했고, 이 책 또한 큰 호평을 받았다.
1930년에는 책의 인기를 기반으로 푸 상품이 출시되었고, 1926년 출간 이후 세계 각국 50여 개의 언어로 번역되어 누적 판매 7천만 부를 기록하고 있다. 1977년에는 월트 디즈니가 푸 이야기를 애니메이션 영화 〈곰돌이 푸의 모험〉으로 제작하면서 푸는 세계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캐릭터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푸는 지금도 우리가 쓰는 일상생활 상품 곳곳에 등장하며 함께 살아가고 있다.
곰돌이 푸 이야기를 그저 아이들 책으로 치부해 버리는 것은 곤란하다.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100에이커 숲은 인간세상을 비유적으로 나타낸다. 푸, 피글렛, 이요르, 래빗, 캥거와 루, 아울 등 등장 동물들은 우리들이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인간상을 빗대어 보여주고 있다. 어린이에게는 순수한 동심과 우정의 소중함을, 어른에게는 더불어 살아가는 인생살이에 대한 가슴 따뜻한 메시지를 전해 주는 《위니 더 푸》는 아이와 어른 모두를 위한 순백색의 동화라 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