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를 위한 도시 인문학〉 시리즈에 대하여
알면 더 사랑하게 되는 로컬의 재발견
〈여행자를 위한 도시 인문학〉, 줄여서 ‘여도인’ 시리즈는 국내 여행자들이 사랑하는 전국의 도시들을 인문적 시선으로 조금 더 깊숙이 들여다보고 풍경 이면의 뿌리와 정신까지 읽어주는 문화 안내서이다. 그 도시에서 태어났거나 어떤 이유로든 오래 머물면서 문화의 흐름과 변천사를 지켜본 저자들이 그 지역의 주요 역사·지리적 배경, 고유한 음식과 축제, 건축과 주거문화, 현지민의 언어와 대표적 인물, 그밖에 다양한 풍속과 라이프스타일 속에서 이야기를 끌어내 지역의 고유함과 차이를 알게 한다. 인문적 스토리를 찾아 느린 도시 여행을 즐기는 사람, 그 도시에서 한번쯤 살아보거나 이주할 계획을 갖고 있는 사람, ‘로컬의 재발견’을 시도하고 있는 오늘의 젊은 세대들에게 공간의 서사를 발견하고 이해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자 기획되었다.
분지 안에서 형성된 주체성 강한 문화
대구는 어떻게 ‘보수의 심장’으로 변해 왔을까?
앞 음절에 악센트를 주는 대구 사투리는 분지라는 지형적 특성에 맞춰 공기 울림에도 멀리까지 말이 전달될 수 있게 한 방법이었다고 한다. ‘대프리카’로 불리는 대구의 무더위도 분지에서 비롯되었다. 서쪽의 소백산맥과 동쪽의 태백산맥이 서해와 동해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막는 영남 분지는 여름에 무덥고 겨울에 추운 대륙성 기후를 보이는데, 특히 대구는 팔공산과 비슬산이 북쪽과 남쪽까지 가로막아 뜨거운 공기가 배출되지 못하기에 계속 뜨거운 상태가 유지되는 것이다. ‘보수의 심장’이라 불리는 정치 성향 역시 외부로의 인구 이동이 미비한 분지의 특성이 폐쇄적인 지배 구조를 형성해 보수성을 키웠다는 견해가 있다.
분지 안의 분지에서 형성된 대구만의 문화는 주체성이 강하다. 뜨거운 기후와 거침없고 시원시원한 성정, 화끈하고 직설적이며 끈기 있는 기질은 삶의 형태와 일상 곳곳에서 ‘대구 스타일’을 자연스럽게 완성했다. 광복 이후 7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주기적으로 크고 작은 화재가 발생해온 서문시장은 대형 화재로 대구 경제가 휘청거리고 부도가 급증하는 경제공황 상태까지 벌어졌지만, 상인들은 폐허에서 일어나 새로 건물을 짓고 서로 도우며 어려움을 극복해 나갔다. 시장은 치열한 경쟁의 시간 속에서 상호 견제와 균형을 통해 형성된 공간이라 변화를 허용하기 어려운 곳이지만, 대구 사람들은 화재를 공간을 재편하고 현대화하는 계기로 삼았다. 화마가 할퀴고 가면 7년을 기다리고 10년을 준비해 현대적 전통시장의 새 모델을 만들어냈다.
프로야구팀 삼성 라이온즈 팬들은 삼성 라이온즈가 2011~2014년 4년 연속 통합 우승에 2015년까지 정규 시즌 5연패를 차지하면서 왕조 시대를 보낸 뒤 2016년부터는 줄곧 하위권에 머물고 있어도 주말이면 2만 명 정도가 삼성라이온즈파크에 모여 ‘푸른 피’를 응원한다. 이기는 날보다 지는 날이 더 많던 대구FC를 FA컵 우승팀으로 만든 것도 12번째 선수인 대구 시민들이다. 2018년 결승 2차전 응원을 위해 모인 1만8351명의 대구 시민들은 그해 하루 최다 관중 신기록을 세웠다.
대구 스타일은 음식에서도 찾을 수 있다. 무더운 여름을 보내야 하는 곳이라서 상하기 쉬운 음식에 강한 양념을 가미해 보관하다 보니 타지방보다 자극적인 맛의 요리가 발달했다. 기름기를 제거하고 간만 맞춰 쪄둔 갈비를 고추와 마늘 위주 양념으로 매콤하게 조리한 찜갈비는 대구의 열기가 녹아든 화끈한 요리다. 전국 미식가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동인동 찜갈비 골목은 전국 최초의 ‘착한 골목’이기도 하다. 골목에 있는 모든 찜갈비 가게가 매달 일정 금액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하고 있다. 이렇게 끈끈한 돌봄과 나눔의 연대는 납작만두에도 깃들어 있다. 속이 비치는 얇은 밀가루 피 안에 다진 당면과 약간의 야채를 넣고 부침개처럼 부쳐내는 납작만두는 배고픈 서민들의 허기를 채워 주는 음식이었다. 6ㆍ25 전쟁 이후 값싸고 흔한 밀가루로 만두피를 만들었지만 만두소로 쓸 재료가 마땅치 않자 보관이 쉽고 씹는 맛이 있는 당면을 넣었다.
대구만의 독특한 문화는 화려한 관광자원이 아니기에 경상도의 다른 지역에 비해 여행지로의 인기가 없다. 하지만 분지 안으로 걸어 들어가 역사와 전통을 함께 보면 대구가 ‘재미없는 보수 도시’에 머물지 않는다는 사실을 바로 알 수 있다. 과거 대구는 좌파가 강한 ‘조선의 모스크바’였고 대표적인 ‘야당 도시’ ‘진보 도시’였다. 1907년 일본에 진 빚을 갚아 경제적 자주권을 지키자는 국채보상운동이 대구에서 시작되었고, 1946년 미군정에 저항한 10월 항쟁이 대구에서 처음 일어났다. 4ㆍ19 혁명 당시에도 제일 먼저 거리로 달려 나가 2ㆍ28 민주운동을 전개했다. 그런 대구가 언제부터, 어떻게 보수의 상징이 된 걸까? 그에 대한 답 역시 분지 안으로 들어가 보아야 찾을 수 있다.
이 책은 도시 여행자를 대구라는 미지의 분지로 즐겁게 안내하는 역사문화 해설서이자 여행서다. 저자는 역사 속 이야기에 대구에서 살아온 추억, 언젠가는 대구로 돌아가 살아갈 미래의 희망을 담아 대구를 처음 찾는 이들도 쉽고 재미있게 여행할 수 있도록 목차를 구성했다. 분명 대구 스타일인데 대구 이야기가 아닌 것처럼 신선하고 즐거운 해설이 이어져 금세 그 분지에 빠져들고 만다.
책에 소개된 장소들은 중구에 집중되어 있다. 걸어서 돌아보기 쉬운 동선이므로 부록으로 소개된 ‘걸어서 대구 인문여행’ 추천 코스를 그대로 따라가면 대구와 친해지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청라언덕에서 수성들을 바라보며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읊어보는 도시 여행이라면 충분히 멋지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