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를 깨우지 마세요
이 책의 원제는 〈백설공주와 일흔일곱 난쟁이〉예요. 실제로 이 그림책에서 가장 주목한 것은
집안일에 대한 무게감이었을지 몰라요. 일곱 난쟁이일 때, 백설공주가 일곱 난쟁이를 위해
한 집안일이 그렇게 많아 보이지 않았다가 일흔일곱 난쟁이가 되니까, 누구라도 입이
떡벌어지는 것처럼 작가는 과장법을 통해서 사실은 일곱의 집안일도 적지 않았으며
백설공주가 결국 일곱의 집안일을 다 해주는 일이 ‘집안일만 조금’은 아니라는 것을 꼬집은
것처럼 보여요. 하지만 이 책이 처음 나온 시점으로부터 또 세월이 흘렀고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다시 한 번 주목해야 할 지점을 발견했어요. 그것은 바로 ‘공주의 선택’이에요.
우리는 언제라도 공주와 같이 마녀를 피해 집을 나와야 하고,
어두운 숲에서 길을 잃을 수 있어요. 그리고 숲에서 다정한 난쟁이들을 만나면
그들이 일곱이던 일흔일곱이던 당장 어두운 숲에서 잠들기 싫어서
난쟁이의 ‘집안일만 조금 도와주면 된다’는 조건을 흔쾌히 수락할 수 있지요.
집을 나온 것도 공주의 선택, 난쟁이의 조건을 수락한 것도 공주의 선택이에요.
하지만 이 그림책이 여러분에게 던져줄 통쾌함은, 공주가 끝까지 자신이 뭘 해야 할지 알고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잘 알고 있으며, 그 선택의 순간을 미루거나 지연하지 않고
행동하는 인물이라는 점이에요.
이 책에서는 공주로 그려졌지만, 사실 우리는 모든 관계에서 이런 경험들을 해요.
내가 선택한 일이기 때문에 꽤 미련하게 오랫동안 책임지려는 마음이 있고
책임을 지려다 결국 내가 아프고 힘들어서 견디지 못하는 것까지 스스로를 탓하기도 해요.
하지만 기꺼이 독사과를 깨물어, 자신의 상황을 바꾸는 전환의 힘을 가진 공주의 이야기는
우리가 하는 선택들과 선택에 대한 책임, 그리고 새로운 선택지를 찾아가는 힘에 대한
놀라운 지지와 응원이 들어 있어요.
잘 선택하는 것도 중요하고 선택한 일을 책임지려는 태도도 중요하지만
선택한 일이 나에게 정말 맞지 않고 옳지 않다면 과감하게 새로운 선택을 하고
바로 그 상황에서 벗어날 수도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마음에 담기 위해 여러분
같이 외쳐 보아요. “절대로 공주를 깨우지 마세요!”
네. 우리는 공주의 선택을 믿고 지지하고 응원해 주기로 해요.
우리는 언제나 공주님 편인 착한 독자들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