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자 여행작가인 김인자의 서평을 소개한다.
어느날 기억의 편린들이 소장되어 있는 ‘우두동’이라는 이름을 가진 작은 창고의 문을 열어보는 기회가 내게 주어졌다. 그 속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귀한 원석을 발견하는 의외의 수확이 있었는데 그건 다름 아닌 글과 그림에서 소설의 첫 문장 같은 생경함이 주는 기쁨을 들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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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에 들어온 책을 한 쪽 두 쪽 넘기는 순간 이미 내 맘은 우두동 골목을 걷기 시작했으니, 우두동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옛 골목 옛 풍경에서 크게 벗어나리란 기대는 하지 않았음에도 대체 어떤 힘이 내 손에서 이 책을 떼어내지 못하게 하는지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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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빌딩과 아파트에 밀려 하루가 다르게 쇠락해가는 우두동의 어느 것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는 작가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우두동에 관한 역사와 옛이야기, 과거이면서 현재이기도 하고 또한 미래일 수도 있는 야트막한 지붕과 골목엔 사람 냄새로 가득하다. 붉은 기와지붕과 예배당 십자가와 길과 길 사이, 집과 집 사이를 연결하는 전깃줄과 열린 대문의 안과 담장 밖에는 목련꽃이 하얗게 피고 달맞이꽃, 감자꽃, 토끼풀, 붉은 여뀌 등, 온갖 꽃과 나무와 채소가 까치발로 자라고 새들도 날아온다. 따듯한 작가의 시선은 어느 것 하나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심지어 파밭도 설렘이라 전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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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담에 둘러싸인 저택 정원에서 피고 지는 꽃은 아무리 예쁘다 해도 그 안에서 사는 사람들만 볼 수 있는 한계성을 지니고 있다면 무엇 하나 내세울 것 없는 서민들이 사는 골목엔 대문 곁이나 지붕, 심지어는 대문 밖까지 울긋불긋 채송화 봉선화 분꽃 백일홍 등 우리꽃을 가꾸어 마을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한다. 나이든 어머니들이 굽은 허리로 가꾼 꽃들은 나보다 이웃을 위한 배려라서 비록 찌그러진 깡통이 화분을 대신할지라도 그 대문에서 피고지는 꽃의 이름은 사랑일 수밖에 없다.
어느 지역인들 그렇지 아니할까 마는 작가는 우두동을 소개할 때 삶은 지금 여기 같아야 한다고 속삭이면서 유독 힘을 주는 부분이 있다. 우두동은 천천히 그리고 자세히 봐야 아름답다고.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왜 그런 설명이 필요했는지에 대한 이해는 자동으로 해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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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더 길었으면, 몇 페이지만 더 늘렸으면, 하는 아쉬움을 간직한 채 작가의 글과 그림을 들여다 본 순간순간들은 작은 행복감으로 심장이 몽글몽글했다. 현란한 수사나 유려한 문체는 아니었지만 마음을 다해 한줄 두 줄 써내려간 글은 순수로 감동하게 했고 세필화에 가까운 그림은 얌전하고 착하기 그지없었다. 머잖아 어느 해질 무렵 혼자 느릿느릿 우두동 골목길을 산책하고 있을 나를 상상해본다. 그 상상이 현실이 된다면 그것은 내 의지가 아니라 지금 내 손 안에 있는 작고 예쁜 책 〈우두동동 우두두두동〉이 한 일이라는 걸 믿어 의심치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