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바구니 담기 close

장바구니에 상품을 담았습니다.

러시아는 어떻게 제국이 되었나 표트르 대제의 개혁 2

러시아는 어떻게 제국이 되었나 표트르 대제의 개혁 2

  • 강평기
  • |
  • 아르바트
  • |
  • 2024-04-09 출간
  • |
  • 344페이지
  • |
  • 145 X 210 X 28mm / 671g
  • |
  • ISBN 9791198687623
판매가

17,000원

즉시할인가

15,300

배송비

2,300원

(제주/도서산간 배송 추가비용:3,000원)

수량
+ -
총주문금액
15,300

※ 스프링제본 상품은 반품/교환/환불이 불가능하므로 신중하게 선택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출판사서평

천재 군주가 펼치는 국가 대개혁

“개혁하지 않은 통치자는 역사에 그 흔적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 시대가 필요한 국가 대개혁, 그 개혁의 백과사전이 출간되었다.

프랑스 계몽사상가 볼테르는 표트르 대제의 개혁에 대해 극찬했다. “표트르의 개혁은 다른 국가가 500여 년에 달성하기 힘든 일을 단지 50여 년 만에 이룩했다.”

표트르 대제는 어떻게 개혁했고 어떻게 제국을 만들었을까?

책 속에는 모든 답이 있다.

“표트르 개혁의 핵심은 국가를 부강(富强)하게 하는 데 있었다. 그 첫 번째 방법이 문호를 적극적으로 개방하여 선진문물을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선진문물을 받아들이기 위해 유럽으로 가는 항로가 필요했다. 항로를 얻기 위해 전쟁을 했다. 옛 영토를 수복하고 무역항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이었다.

전쟁의 승리를 위해 외교력, 군사력과 경제력을 키웠다. 이 세 개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인재가 필요했다. 선진국이었던 네덜란드 전문가 1,000여 명과 유럽의 상인 400여 명을 초빙했다.

그의 재임 기간 무려 8,000여 명의 외국인 전문가가 러시아 영토로 들어왔다. 표트르는 죽어가면서도 아프락신 제독에게 도시에 사는 외국인을 잘 보호하라고 명령했다.

그는 종교를 자유롭게 하여 국내 거주 외국인에게 안정적인 생활을 보장했다. 프로이센과 네덜란드가 그러하듯 종교적 관용 사회였다.

외교력, 군사력과 경제력을 유지하기 위해 선진 행정체계와 전문 관료가 필요했다. 유럽의 선진모델을 빌려 관료 체제를 만들고 인재 양성을 위해 교육을 개혁했다.

새로운 상징적인 도시를 세워 미래의 국가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 미래는 찬란한 상트페테르부르크였다. 제국으로 가는 길이었고 비전이었다. 그 비전은 표트르의 심장이자 영혼이었다.”

“러시아는 20여 년 만에 유럽의 열강과 견줄 수 있는 외교력을 보유했다. 각 국가에 대사관과 영사관을 개설하여 대외 네트워크를 만들고 국익을 고려한 대외정책을 펼쳤으며, 국제질서에서 ‘현상 유지’가 아닌 ‘현상 타파’ 정책을 추진했다.

변방의 약소국이 유럽의 세력균형 체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궁극적으로는 유럽의 세력 균형자가 되었다.

스웨덴을 비롯한 유럽의 외교 행정 시스템을 도입하여 외교 용어, 외교문서, 외교의전 등을 서구화했으며 능력 있는 전문 외교관을 양성하여 정보력을 높였고 외교에 새로운 기풍을 불어 넣었다. 전쟁의 최전선에서 외교관이 밤새워 쓴 보고서는 강국으로 가는 초석이었다. 외교관은 최고의 연봉을 받았지만, 그만큼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시간은 길었다.

유럽의 강국과 대응할 수 있는 최강의 군사력과 해군력을 단기간에 확보했다. 개혁에 반대했던 왕실 소총수와 구식 군대를 해산하고 새로운 군을 조직하여 국가에 충성하게 했다. 오합지졸의 군을 이길 수 있는 최강의 군으로 발전시키고 세계 최고의 군사 법령과 해군 헌장을 공포하여 군율을 바르게 세웠다.

연봉제, 보상제, 메달과 훈장을 도입하여 능력 위주의 용맹한 정규군을 양성했다. 방만한 군 행정 시스템을 개혁하여 군 행정을 효율화하고 군 내부의 부당행위를 도려냈다. 무기 수입을 중단하고 오히려 무기와 전함을 수출했다.

국내 산업을 증진하여 수입국에서 수출국으로 바꾸고 세계 최고의 주철 수출국이 되었다. 중상주의 경제정책을 실행하고 수출주도 성장을 추진했으며, 통치 후 완제품 수출이 원자재 수출보다 많았다.

세수를 무려 10배 증대했고 통치 말기에는 적자에서 흑자재정으로 전환했다. 방만한 국영기업을 효율화하기 위해 민영화를 추진하여 기업의 수가 10배가량 증가했고 경쟁력 있는 민간기업은 국영기업보다 많았다.

상공인에게 군역과 세금을 면제했으며 장인이 만든 상품에 브랜드를 도입하고 기술 장인을 존중했다. 결국 유럽 열강에 버금가는 산업력과 기술력을 짧은 기간에 확보했다. 운하를 만들고 도로를 확장하여 물류 수송을 원활하게 했으며 국가 인프라를 구축했다. 제국의 발판이었다.

행정 개혁을 단행하여 세계적 수준의 행정체계와 전문 관료를 양성했다. 복잡한 행정조직을 통폐합했으며 정부의 모든 부서를 한 건물에 이주시켜 정부 부서 간 효율성을 높였다.

개혁에 대항하는 귀족 회의와 국민 회의를 무용지물로 만들고 귀족이라도 평생 군 복무하고 능력에 따라 진급하며 의무교육을 받은 후 국가에 봉직하게 했다.

원로원을 설립하여 입법, 사법, 행정, 재정, 감사, 후계자 선출 등 국가의 중요한 업무를 맡겼고, 원로원의 의결 시 만장일치제를 도입하여 국가의 중요한 의제를 신중하게 결정하였다. 원로원에서 차르의 법령을 독회한 후 공포했으며, 철저하게 법령을 우선시하고 법에 따르는 통치를 하였다.

업무의 정확성과 책임성을 강조하기 위해 구두로 결정하던 것을 금지하고 모든 과정을 문서로 남겼으며 서명 제도를 도입했다. 회의 시 모래시계와 다수결을 도입하여 정책 결정의 신속성과 합리성을 보장했다.

정부 각 부서에 투표제를 도입하여 어느 한 사람, 또는 한 명의 장관에게 결정권을 주지 않았다. 이유는 추상적, 관념적, 친분에 의한 판단이 아닌 인간의 합리적 판단과 합의에 따른 결정을 위해서였다. 전제군주정 하의 민주정이었다.

모든 행정 관료는 공무원 선서를 했으며 공공의 이익을 위해 노력해야 했다. 관등표를 도입하여 철저히 능력에 따라 승진시켰고 국가에 충성하는 문화를 만들었다. 정부 부서의 차관은 모두 외국인 전문가였는데 그들이 서구 시스템을 모델로 해서 국정을 전담했다. 기존의 귀족 체제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았다.

장관이라도 회의에 한 시간 늦으면 일주일 치 월급을 삭감했고 원로원 의원 또한 업무를 미룰 때마다 벌금을 매달 부과했으며 5개월간 업무를 미루면 재산과 직위를 박탈했다. 엄격하게 시간을 준수하는 문화를 만들었다. 표트르의 행정은 제국을 유지하는 버팀목이었다.

교육은 국민 계몽보다 인재 양성에 초점을 두었다. 국가의 재목을 빠르게 양성하는 방법은 선진국의 최고 교육기관과 학술기관을 차용하는 것이었다. 학교 설립과 운영을 외국인 전문가에게 맡겼고 외국의 교재를 원본 그대로 사용하거나 번역하여 이용했으며 외국의 최고 교육기관과 같은 교과목을 구성했다.

기술전문학교와 대학의 교사, 교수도 외국인이었다. 마치, 러시아 내 독일학교, 영국학교, 네덜란드학교였으며, 당시 프로이센에 있었던 프랑스학교와 같았다.

국가의 항구적인 발전을 위해 외국인 전문가 초빙 시 자국의 학생을 가르치는 내용을 연봉계약서에 포함했다. 러시아의 젊은 신진학자들이 세계적 명망가와 함께 연구하는 기회를 보장하여 학문 발전과 후학 양성을 동시에 이뤄냈다. 매년 50여 명씩 유럽으로 유학생을 보내어 선진 학문을 배우게 했다.

이러한 방법은 러시아 제국이 후에 기초과학 분야에서 앞설 수 있었던 비결이고 노벨상을 받게 된 이유였다.

사회·문화개혁은 혁명 수준으로 추진했다. 수염을 깎고 의복을 변경하는 개혁을 추진하고, 연도를 천지창조 추정일이 아닌 서기(西紀)로 바꾸며 새해를 9월 1일에서 1월 1일로 옮겼다. 이것은 표트르 개혁의 신호탄이었고 개혁의 상징이었다. 변방의 국가에 제국이라는 옷을 입힌 것이다.

최초의 인쇄 신문을 발행하여 정치·경제뿐만 아니라 전쟁, 군수 산업, 과학기술 등의 다양한 정보를 국민에게 알렸으며, 농사와 중요 행사 내용을 담은 생활용 달력을 배포하여 국민을 유익하게 했다.

아라비아 숫자를 공식적으로 도입하고 읽고 쓰기 편하게 ‘시민 알파벳’을 보급했다. 이 알파벳은 라틴문자와 키릴문자를 접목한 글자로 오늘날 사용하는 러시아어와 별 차이가 없다. 시민 알파벳은 제국의 글자였다.

세상의 모든 희귀한 것을 수집하여 박물관, 도서관, 동물원과 식물원을 세웠고 시베리아 과학 학술 탐험을 지원했다. 후에 제국의 고고학은 세계 최고 수준이 되었다.

강제 결혼을 금지하고 미혼녀에게 공식적으로 결혼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했다. 집안이나 궁궐에서만 생활하는 여성을 세상 밖으로 해방하여 여성들은 종교행사 외 축제에도 자유롭게 다닐 수 있었고, 개선식과 진수식 등에도 참여할 수 있었다.

프랑스풍의 무도회를 도입하여 여성이 남성과 동등하게 춤을 추고 카드놀이도 즐길 수 있었으며 정치와 사회적 이슈에 관해서도 대화할 수 있었다. 여성은 가정교사, 연극 배우, 디자이너 등 새로운 직업을 가졌다. 여성 노동을 최초로 인정한 러시아 지도자였다.

표트르의 개혁을 가장 강력하게 반대한 종교의 경우, 총대주교를 선출하지 않고 영국 국교회와 스웨덴의 루터교를 모델로 신성종무원을 설립하여 마치 정부의 한 부서로 만들었다. 종교 국가에서 세속 국가로 바뀌었다.

타 종교인을 수용하고 그들이 도시 곳곳에서 자유롭게 예배드릴 수 있도록 했으며, 루터교와 가톨릭 교인이 묻힐 수 있도록 정교회 수도원이 아닌, 삼손 교회를 지어주었다. 종교 교리에 충실하면서 검소하고 부지런하며, 사회에 봉사하는 성직자 상(像)을 만들었다.

게으르고 타락한 성직자를 극도로 경멸하여 강압적으로 교육시켰다. 성직자는 신학 외에 기하학, 논리학, 수사학, 물리학, 철학 등도 배워야 했다. 수도원에 강제 노동을 도입하여 성직자는 노동하고 월급을 받았으며 그들이 죄를 지으면 교회 재판이 아닌 세속 재판을 받았다.

세속 공무원을 교회에 파견하여 총무와 회계를 맡겼으며 교회의 불필요한 재정 경비를 줄이고 음주와 뇌물 등 잘못된 관행을 처벌했다.

최초의 보육원을 세우고 성직자들이 사생아, 장애인과 불우아동을 돌보고 보육원을 운영했으며, 남편 또는 미혼남이 아기가 있음에도 별거하면 산모에게 양육비를 지급해야만 했다.

국가에 헌신한 상이 병사와 은퇴 관료에게 복지연금을 지급했으며 죽을 때까지 무료로 병을 치료받을 수 있는 지원제도를 마련했다. 특히 군 복무 중 사망한 군인의 미망인에게는 군인 월급의 8분의 1을 지급했고 자녀에게는 12분의 1의 양육비를 지급했다.

네덜란드식 임상병원을 세워 의료를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유럽의 의료체계를 그대로 러시아에 도입하고 최초로 군의관을 양성하여 사망자 수를 줄였다. 의사의 실수로 환자가 죽으면 처형했다. 나태하거나 게으른 의사를 용납하지 않았다. 러시아 역사상 처음으로 출생자와 사망자를 기록한 차르다.

종교적 색채가 짙었던 예술, 건축, 사회·문화에 자유로움을 부여하여 누구나 창의적인 작품을 제작할 수 있는 여건을 보장했다. 예술은 차르의 업적을 알리는 홍보 수단이 되기도 했고 국민을 계몽하기 위한 수단이 되기도 했다.

황제의 자녀마저 누드로 그리고 차르의 얼굴을 반쪽만 그려도 무방했다. 잠옷 입은 황후도 그릴 수 있었듯이 예술가의 자유로운 화풍 속에 찬란한 여명이 비추었다.

조각의 경우, 이탈리아에서 수입하여 도시의 정원 곳곳에 배치했는데 정교회에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던 비너스상을 비롯한 조각품을 설치하기도 했다. 도시 곳곳에 바로크 양식의 건축과 엠블럼이 등장했다.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었다. 그리스·로마 문화로 제국을 수놓았다.

이렇게 그가 세운 제국은 종교적 교리에 충실한 고요한 동방의 국가가 아닌, 과학적 합리성과 인간의 이성에 근거한 근대국가였다. 영토와 인구의 규모가 아닌 국가의 대(大)개혁으로 제국이 되었다. 차르 중심의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확립했다.

표트르의 개혁에 직접 영향을 받은 계층은 주로 국가를 운영하는 엘리트와 국가의 월급을 받는 관료, 군인, 성직자, 도시민 등이었다. 인구의 다수였던 농민과 농노는 표트르의 개혁에 대해 수동적이었다.

개혁을 이끌기 위해 공포한 여러 법령 중 과도한 세금 징수와 거주 이전 등의 자유를 박탈하는 법령은 그들의 삶을 힘겹게 했다. 지역에서 농민 봉기가 일어나기도 했다. 농민의 다수가 농노가 되었고 지위는 하락했다.

러시아의 농노는 가혹한 환경에 노출되었다. 농민은 농노와 함께 국경지대로 대거 탈출했다. 도망자를 찾을 때까지 그의 가족을 감옥에 가두기도 하는 등 강력한 처벌이 뒤따랐다. 개혁의 부작용이었다.

표트르는 자신의 국가 러시아가 어떤 국가로 변화되어야 하는지 명확한 비전을 머릿속에 넣어 두고 국익이라는 이름으로 펼쳐 놓았다.

표트르의 비전이 제국이 된 원리였으며 그의 염원대로 제국은 흥성하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러시아는 찬란한 영광의 열매를 따기도 했고 땅에 떨어져 색이 바래기도 했다. 그것은 후예들의 몫이었다. 바로 제국의 흥망성쇠였다.”


저자는 러시아 전문가로 오랫동안 강대국의 흥망성쇠를 연구하고 있으며, 소련 붕괴 후 「러시아와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의 상호관계 연구」로 모스크바국립대학교 정치학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동 대학교 정치학부 러시아정치학과에서 강의했다.

국가 대개혁을 화두로 야심 차게 쓴 책이 「러시아는 어떻게 제국이 되었나 표트르 대제의 개혁 I, II」이다. 작가는 후속 시리즈로 「러시아 제국의 번영」, 「러시아 제국은 어떻게 쇠망했나」를 구상하고 있다.

이 책은 러시아 제국의 흥망성쇠를 다룬 국내 최초의 책이다.

지은이는 근대 역사학의 아버지 랑케가 말한 그대로 책을 썼다고 했다.

“역사는 과거를 심판하고 미래의 유익을 위해 현재에 교훈을 주는 임무를 스스로 떠맡았습니다. 이 일은 이러한 고귀한 목표를 열망하지 않습니다. 역사의 임무는 단지 모든 일이 실제로 어떻게 일어났는지 보여주는 것입니다. - 랑케”

천재 군주의 개혁 이야기를 300여 년 전의 수많은 고문서를 해독하면서 한 땀 한 땀 하얀 종이 위에 수놓았다.

오늘의 러시아를 알고 싶은 자!
자신의 국가를 개혁하기를 희망하는 개혁가!
변방의 국가가 제국이 되는 그 원리를 찾고 있는 리더들에게 권하는 책이다.

목차

6. 경제 개혁
산업 시찰·외국인 초빙 | 11
산업정책 | 16
상업정책 | 26
농업정책 | 32
농민과 농노 | 36
화폐·세금 개혁·예산 | 42
표트르의 경제학자 포소시코프 | 57

6. 교육 개혁
표트르의 교육 | 65
통·번역학교 | 69
수학·항해학교 | 75
중등학교 김나지야 | 79
의과대학 | 82
산술학교 | 86
과학예술 아카데미 | 89

7. 사회·문화·종교 개혁
새해 연도·달력·서명·신문·숫자·알파벳 | 97
수집광 표트르: 동물원·식물원·도서관·쿤스트카메라 박물관 | 105
표트르의 고고학자 매서슈미트 | 113
여성·무도회·황제의 여인·사생아 | 117
음식문화 | 134
종교 개혁 | 146

8. 예술 개혁
연극 | 159
음악 | 165
황제를 그린 화가 니키틴 | 175
자화상을 그린 화가 마트베예프 | 181
누드를 그린 화가 카라바크 | 185
판화 | 194
조각 | 201

9. 표트르의 도시, Saint Petersburg
뉴 암스테르담 | 213
페트로파블롭스크 요새와 대성당 | 218
트루베츠코이 감옥과 왕세자 알렉세이 | 224
크론슈타트 요새와 해군성 | 239
여름 정원·여름 궁전·겨울 궁전 | 243
트리니티 광장·넵스키 수도원·넵스키 대로 | 247
수도 이전 | 255
바로크 건축가 라스트렐리 | 261

또 하나의 에필로그(Another Epilogue)
표트르 치세 | 275
제국의 흥망성쇠 | 285
평가 | 292
작가의 마침표 | 299

I권 차례 | 303, 표트르 개혁 연표 | 305, 각주 | 310, 참고문헌 | 316, 찾아보기 | 325

교환 및 환불안내

도서교환 및 환불
  • ㆍ배송기간은 평일 기준 1~3일 정도 소요됩니다.(스프링 분철은 1일 정도 시간이 더 소요됩니다.)
  • ㆍ상품불량 및 오배송등의 이유로 반품하실 경우, 반품배송비는 무료입니다.
  • ㆍ고객님의 변심에 의한 반품,환불,교환시 택배비는 본인 부담입니다.
  • ㆍ상담원과의 상담없이 교환 및 반품으로 반송된 물품은 책임지지 않습니다.
  • ㆍ이미 발송된 상품의 취소 및 반품, 교환요청시 배송비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 ㆍ반품신청시 반송된 상품의 수령후 환불처리됩니다.(카드사 사정에 따라 카드취소는 시일이 3~5일이 소요될 수 있습니다.)
  • ㆍ주문하신 상품의 반품,교환은 상품수령일로 부터 7일이내에 신청하실 수 있습니다.
  • ㆍ상품이 훼손된 경우 반품 및 교환,환불이 불가능합니다.
  • ㆍ반품/교환시 고객님 귀책사유로 인해 수거가 지연될 경우에는 반품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 ㆍ스프링제본 상품은 교환 및 환불이 불가능 합니다.
  • ㆍ군부대(사서함) 및 해외배송은 불가능합니다.
  • ㆍ오후 3시 이후 상담원과 통화되지 않은 취소건에 대해서는 고객 반품비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반품안내
  • 마이페이지 > 나의상담 > 1 : 1 문의하기 게시판 또는 고객센터 1800-7327
교환/반품주소
  • 경기도 파주시 문발로 211 1층 / (주)북채널 / 전화 : 1800-7327
  • 택배안내 : CJ대한통운(1588-1255)
  • 고객님 변심으로 인한 교환 또는 반품시 왕복 배송비 5,000원을 부담하셔야 하며, 제품 불량 또는 오 배송시에는 전액을 당사에서부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