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쪽으로는 알제리, 북동쪽으로는 지중해, 남동쪽으로는 리비아에 접하고 있는 튀니지는 지리적 위치 덕택에 예로부터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의 영향을 두루 받았다. 베르베르인들이 살던 이곳에 카르타고, 로마, 이슬람 제국, 오스만 제국, 프랑스가 차례로 영향을 미치며 각기 다른 문화의 흔적을 겹겹이 쌓아 올렸고, 이는 현재 튀니지 문화의 토대가 되었다. 이번에 번역한『튀니지의 민담』에도 이러한 튀니지의 문화 다양성이 곳곳에 숨겨져 있다.
『튀니지의 민담』은 1949년부터 1954년 사이에 수집된 80여 편의 튀니지 민담을 번역한 것이다. 놀랍고 신기한 이야기부터 사람과 지역, 축제, 장소, 물건에 얽힌 전설, 동물과 식인귀를 주제로 한 이야기, 마그레브 지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쟈’와 ‘오미 시씨’를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 등 길고 짧은 이야기들 속에서 우리는 튀니지의 민족적, 종교적, 사회문화적, 환경적 다양성을 발견하게 된다. 수록된 민담에는 유목 생활을 하는 베두인족, 아랍인 장수, 베르베르인 여전사, 케르케나 제도를 약탈하러 온 시칠리아인, 무어인 카페 주인 등 튀니지의 다양한 지역을 무대로 활동했던 인물들이 등장하며 칼리프, 술탄, 순례자, 회당 등 이슬람과 유대교의 흔적 또한 찾아볼 수 있다. 화폐 단위인 디나르, 전통 모자 셰샤, 음식의 한 종류인 쿠스쿠스와 하리사 소스는 튀니지의 사회와 문화를 반영하는 중요한 요소들이다. 한국에서 접하기 힘든 올리브나무, 캐롭나무, 종려나무, 선인장 등의 배경 역시 튀니지의 독특한 자연환경을 드러낸다. 경희대학교 아프리카연구센터에서 발간하는 이 『튀니지의 민담』을 통해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를 모두 담은 튀니지만의 독특한 문화를 느낄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책을 읽으면서 이를 발견해 가는 여정은 마치 숨은그림찾기를 하듯 독자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프랑스어를 전공한 역자로서 특히 흥미로웠던 작업은 아랍어 기원의 단어들을 찾아 그 뜻을 밝혀 번역하는 일이었다. 아랍어가 공식어이고 프랑스어가 교육의 언어로 사용되는 튀니지의 독특한 사회언어학적 환경을 고려하여 프랑스어로 쓰인 원서를 선별하여 번역하였지만, 민담은 주로 튀니지에서 사용되는 아랍어 지역 방언으로 구전되어 왔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생소한 아랍 단어나 다른 이슬람 지역에서는 사용되지 않는 단어들이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원어의 발음을 그대로 표기하게 되면 가독성을 해칠 수 있었기에, 이슬람의 독특한 문화를 드러내는 아랍어 기원 단어들은 문맥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가급적 의미를 풀어 번역하는 방식을 선택하였다. 예를 들어 이슬람 종교법에 정통하여 이슬람과 관련된 판결을 하는 ‘카디’는 ‘재판관’으로, 모스크에서 기도 시간을 알리는 ‘무에진’은 ‘기도 시간을 알리는 사람’으로 번역하였고 ‘셰샤’와 ‘할와’의 경우 원어를 유지하였지만, 문맥을 통해 그것이 각각 ‘모자’, ‘간식’을 지칭하는 용어임이 드러나도록 신경을 썼다. 아랍어와 이슬람에 관한 공부를 통해 그 뜻을 정확히 전달하고자 노력하였지만 그럼에도 발견되는 오역은 역자로서 짊어져야 할 숙명이라고 생각한다.
끝으로 방학 중임에도 꼼꼼하게 원고를 읽어 준 경희대학교 프랑스어학과 박민아, 한민주 학생과 표지 디자인에 신경을 써 준 경희대학교 프랑스어학과 김승은 학생에게 각별히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