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바라는 ‘함께 사람답게 살아가는 세상’,
그 꿈을 찾기 위한 6개의 열쇳말을 묻고 따져서 풀다!
정치가 어떻고, 교육이 어떻고, 누구의 인성이 어떻고, 외모가 어떻고, 성문제가 어떻고, 누가 누구 덕에 어떻게 됐다더라…. 한국인이 두 명 이상 모이면 으레 등장하는 단골 대화 소재들이다. 한국인이 자주 입에 올리는 낱말이라는 것은 그만큼 한국인이 관심을 두고 중요하게 여긴다는 뜻일 터이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그러한 낱말들이 어디에서 비롯되었고,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 말인지를 배운 적이 없다. 바른 정치, 바른 교육, 바른 인격을 논하려면 그에 앞서 정치란, 교육이란, 인격이란 무엇인지부터 제대로 밝혀야 하지 않을까?
이 책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수많은 말 가운데 ‘사람됨(人格)’, ‘아름다움(美)’, ‘성(性)’, ‘덕(德)’, ‘가르침(敎育)’, ‘다스림(政治)’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깊고 넓게 묻고 따져서 풀어내고 있다. 이 6개의 낱말을 고른 까닭은 첫째, 한국인 개개인이 사람다운 삶을 꿈꾼다면 반드시 짚어보아야 할 낱말들이기 때문이고, 둘째, 그것들이 ‘사람, 나, 남, 우리, 아름, 다움, 맛, 멋, 신, 성미, 덕분, 본, 보기, 이룸, 어짊, 모짊, 사랑, 자랑, 도움’ 등과 같이, 한국인이 다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삶의 기틀을 이루는 말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한국사람에게 ○○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의 ‘○○’에 무엇을 넣든, 그 해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사람이면 다 사람이냐, 사람이 사람다워야 사람이지”
이 책에는 50년 가까이 언어, 철학, 역사, 윤리, 미학, 교육, 정치 등을 묻고 따져서 개념을 다듬고 이론을 만들어온 저자의 학문적 깊이와 통찰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저자는 6개의 열쇳말은 물론이요 그 바탕을 이루는 낱말 하나까지 허투루 넘어가지 않고, 1) 그 말은 어디에서 왔고, 2) 주로 어떤 낱말들과 어울려서 어떻게 쓰여왔으며, 3) 그에 대응하는 한자나 영어, 일어와 어떻게 다른 뜻을 가지게 되었고, 4) 역사의 부침을 거쳐 오늘에 이르는 동안 그 말의 뜻이 어떻게 더욱 또렷해지거나, 흐릿해지거나, 혹은 변질되고 곡해되고 오용되었는지를 치열하게 묻고 따져서 풀어낸다.
제1장 ‘한국사람에게 사람됨은 무엇인가’를 예로 들어 살펴보자.
사람은 ‘살다’, ‘살리다’에 바탕을 둔 말로, 온갖 것이 가진 살리는 힘을 살려서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임자를 말한다.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됨됨이(인품)와 차림새(인격)를 갖추어 사람의 구실(자격)을 다함으로써 사람다운 사람이 되고자 하며, 적어도 그러려고 애쓰며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한국인은 툭하면 “사람이면 다 사람이냐, 사람이 사람다워야 사람이지”라고 말한다.
그런데 예나 지금이나 세상에는 인격을 신분으로 갈라서 차별하는 ‘인격 차별’이 존재하고, 이 때문에 인격의 높낮이를 둘러싼 ‘인격 투쟁’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우리 사회는 한국말 특유의 ‘존비어 체계’로 인해,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자동으로 높임말을 써야 할 사람과 낮춤말을 써도 되는 사람으로 나뉘는 ‘유사 신분관계’가 작동한다. 비록 법적, 제도적 신분관계는 사라졌을지라도 나이, 성별, 학벌, 지위, 재산 등으로 신분의 높낮이를 나누고, 말투를 달리해서 인격을 차별하려고 한다. 이에 한국인들은 유사 신분관계 속에서 인격의 높낮이를 두고 끊임없이 인격 투쟁을 벌이게 되었고, 그 결과 나이, 성별, 외모, 치장, 출신, 학벌, 지위, 자본, 명성과 같은 인격의 형식에 관심을 집중하게 되었다.
인격 투쟁에서 이기려는 한국인의 남다른 열망은 선명한 빛과 그림자를 남겼다.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경제 성장과 민주화, 기술·문화 강국으로의 도약이 ‘빛’이라면, 그 과정에서 외면한 모든 것은 우리 사회의 ‘그림자’로 남았다. 거칠게 몰아치는 인격 투쟁에 지친 몸과 마음을 돌아보며, 한국인은 거듭 되묻고 있다. “왜, 살아야 되지?” “왜, 낳아야 되지?” “왜, 키워야 되지?” 저자는 이제라도 죽기 아니면 살기 식의 인격 투쟁을 넘어서 다 같이 고루 하고, 두루 하고, 널리 할 수 있는 떨림, 울림, 어울림, 알아줌, 보아줌, 도와줌, 보살핌과 같은 ‘함께함’의 바탕을 되살려야 한다고 말한다.
‘번역 인문학’, ‘수입 인문학’, ‘종속 인문학’, ‘중개 인문학’에 기대지 않고,
한국말을 바탕으로 ‘한국 인문학’을 펼치다!
이 책은 ‘사람됨’에 이어 ‘아름다움’, ‘성’, ‘덕’, ‘가르침’, ‘다스림’에 대해서도 그 연원과 쓰임새, 역사 속에서 한국인이 그 말과 맺어온 관계 등을 동서고금을 종횡무진하며 입체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이와 같은 작업이 필요한 이유는, 한국인이 자주 입에 올리는 말들 속에 한국인에게 사람답게 사는 일이란, 더 나아가 한국인이 바라는 세상이란 어떤 것인지를 밝힐 수 있는 열쇠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것을 밝힐 책임이 있는 한국의 인문학자들이 그동안 ‘번역 인문학’, ‘수입 인문학’, ‘종속 인문학’, ‘중개 인문학’에 의존해 왔다고 지적한다. ‘나’에 대해 물으면 ‘자아(自我)’나 ‘에고(ego)’를 말하고, ‘사람다움’에 대해 물으면 ‘후마니타스(humanitas)’를, ‘아름다움’에 대해 물으면 ‘미학(aesthetics)’을, ‘가르침(교육)’에 대해 물으면 ‘맹자’를, ‘다스림(정치)’에 대해 물으면 ‘고대 그리스’를 들먹이는 식이었다. 이렇게 된 까닭은 그들이 한국말은 그냥 배우고 쓰면 그만이라 여겨서, 한국인이 한국말로 펼치는 한국의 인문학에 마음을 쓰지 않은 탓이다.
하지만 나는 ‘그냥 나’가 아니고, 사람다움과 아름다움도 ‘그냥 그런 것’이 아니며, 하물며 가르침과 다스림은 말할 것도 없다. 한국인은 바로 그러한 말들로 살림살이의 판을 차려서, 누구나 즐겁게 누리며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힘을 쓰고 애를 쓰며 살아왔다. 『한국사람에게 ○○은 무엇인가』는 그렇듯 귀하고 소중한 한국말을 바탕으로 한국문화를 가꾸며 살아온 한국사람의 살림살이를 묻고 따져서 야무지게 풀어낸 ‘한국의 인문학’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