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들으리라 기대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 것입니다.
모두 읽으리라 기대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볼 눈이 있는 자는 읽을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아시는 그 한 날을 소망하는 교회에게
심판의 주로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교회에게
순결한 신부로 주님 앞에 서길 사모하는 교회에게
들려주는 날 선 검 같은 하나님 말씀, 영원한 복음
그 구원의 서사, 광야에서 부르는 하늘과 땅의 노래!
은혜가, 은혜가 되려면 은혜 아닌 것을 은혜라고 하는 위선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구원이, 구원이 되려면 구원 아닌 것을 구원이라고 하는 도그마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하여 주님 다시 오실 그날까지 “그게 아니다!” 하는 단호한 나팔 소리가 교회에 크게 울려야만 한다. 그러나 큰 음녀의 금잔(계 17장)에 취해 비틀거리는 교회, 은혜로 얻은 구원을 노래하며 땅의 것을 탐하는 교회, 소돔의 관원처럼 고모라의 백성처럼 큰 성 바벨론처럼 된 교회가 심판 경고의 나팔 소리를 듣기나 하겠는가? 주님께서는 “인자가 다시 올 때 믿음을 보겠느냐!” 하지 않으셨던가?
저자는 진단한다. 지금 교회는 이미 임한 하나님의 나라에만 안주하여 장차 임할 하나님의 나라를 전혀 열망하지 않는다고. 장차 완성될 구원을 힘쓰지 않는다고. 그러다 보니, 지금의 혼인 잔치는 무당의 굿판이 되었다고. 이 굿판은 사거리 길에서 닥치는 대로 초청해 온 사람들로 인산인해라고. 그러나 이제 곧 신랑이신 왕이 이 땅에 들어오시는 날, 이 굿판에서 음행의 포도주에 취해 흥청거리는 교회는, 예복을 입지 않은 교회는, 청함을 받은 자는 많지만 택함을 받은 자는 적다는 주님의 심판 경고를 뼈저리게 체험하게 될 것이라고. 그리고 선언한다. 그 날에 그들은 바깥 어둠에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이라고.
심판과 구원은 동전의 양면이다. 세속화된 교회를 향한 심판 선언은,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듣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은 자, 신앙의 싸움에서 이긴 자,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믿음을 지키며 죽기까지 예수를 따르는 자들이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 새 노래를 부르며 영원한 생명의 영광에 이르는 종국적 구원을 전제한다. 그 구원의 영광을, 저자는 교회의 참 소망으로 거듭 소환한다. 어두워 가는 이 하늘과 이 땅 너머에서 다가오는 새 하늘과 새 땅에 나타날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의 시대, 하나님과 어린 양이 그 성전이 되셔서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 양이 그 등불 되어 밤이 없는 빛의 시대, 하나님께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셔서 다시는 사망도 슬픔도 울부짖음도 고통도 없는 샬롬의 시대, 어린 양 보좌에서 흘러나온 생명수 강과 그 좌우의 생명나무로 만국이 소성하는 생명의 시대, 그 광영의 시대를 일렁이는 가슴으로 바라보게 한다.
끝으로 저자는 현재의 고통과 고난에도 참 소망으로 광야의 길을 걷자고 한다. 그렇다. 교회 시대가 마침표를 찍는 그 날, 우리 주님 다시 오시는 그 날, 교회의 참 소망이었던 새 하늘과 새 땅이 나타나는 그 날에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의 복락 안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원한 장막이 되실 것이니, 여기 이 땅에서의 광야를 기꺼이 인내해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