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식민지 시기 동아시아, 또 다른 연대의 가능성
일본 식민지 시기 ‘동아시아’ 관념을 거론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곧 일본이 제기했던 ‘동아신질서’ 및 ‘대동아공영’이다. 특히 ‘대동아공영’은 일본이 타이완과, 조선, 만주, 중국 본토에 이어 동남아까지 제국의 식민 영역으로 확장시켜 자신의 침략적 야욕을 채우는 한편 영국과 미국 등 서구 제국주의에 대항하여 제국주의 패권을 쟁취하려는 목적에서 고안된 이데올로기였다. 즉 이 이데올로기의 궁극적인 목적은 동아시아 모든 민족이 단합하고 노력하여 ‘다 함께 영광을 누리는 데’ 있었던 것이 아니라 동아시아 모든 민족이 역량을 결집하여 ‘제국 일본을 영광의 무대로 끌어올리는 데’ 있었다. 일본의 헛된 망상과 식민 야욕으로 점철된 ‘대동아공영’의 이상은 현실 속에서 거짓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식민주의 속성을 노출하게 되었고, 이는 일본을 배제한 피식민 민족들의 연대 즉 일본의 ‘대동아공영’과는 다른, 오히려 그에 대항하기 위한 동아시아의 연대 혹은 피압박민족의 공동 이익 창출을 토대로 진정한 공영을 실현하기 위한 동아시아의 연대를 가능하게 했다. 『타자와 동아시아 인식-일본 식민지시기 만주문학』은 이와 같은 ‘또 다른 동아시아 연대’를 ‘만주국’ 각 민족 작가들의 문학 활동과 작품을 통해 여실히 보여주었다.
식민문화권력에 대한 ‘만주국’ 지식인들의 다양한 대응
‘만주국’의 문화장은 일본에 의한 통제와 강요, 통합과 배제의 식민문화장이었다. 『타자와 동아시아 인식 - 일본 식민지 시기 만주문학』은 이러한 문화장의 생리에 굴복하여 식민문화권력의 입장을 강력하게 대변하는 지식인들이 등장하는가 하면, 반대로 식민문화권력에 은근히 도전하는 지식인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전자는 주로 이 책의 3부, 일본인 작가들을 통해 드러나며 후자는 1부와 2부의 조선인과 중국인 작가 및 잡지 편집자를 통해 드러난다. 특히 이 부분은 오로지 텍스트만을 통해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지식인들의 다양한 문학 행위를 통해 보여준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이를테면 식민문화권력의 주도자인 일본인을 배제한 조선인과 중국인 작가의 교류, 일본 식민주의 이념에 도전하는 중국인 편집자의 작품 편집 및 피식민지인을 열등한 민족으로 부각시키는 일본인 작가의 텍스트와 이미지 서사에 대한 중국인 지식인들의 맞대응 등이다. 한편, 이 책의 3부에서는 지속적으로 체험하는 ‘만주국’의 이상/이념과 현실의 괴리감 속에서 점차 식민문화권력의 대변인으로서의 강력한 목소리를 약화시키고 현실에 눈길을 돌리는 지식인들도 등장한다. 이는 협력과 저항이라는 이분법적인 잣대로 성급하게 식민지 지식인들을 재단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준다.
이 책을 통해 통제와 강요, 통합과 배제의 방식으로 ‘만주국’의 문화장을 구축했던 식민문화권력의 패권을 확인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문화적 패권주의에 도전하여 상처받은 민족적/문화적 자존심을 회복하는 식민지 지식인들을 만날 수 있으며 더 이상 식민문화권력이 강요하는 이데올로기만을 추종하지 않고 조금씩 현실을 드러내는 식민지 지식인의 양심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