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도 재외동포도 아닌, 고향 방문조차 어려운 대한민국 국민
1965년 한일수교로 한국국적을 선택한 조선인은 ‘국적이 있는 외국인’으로서 일본 정주를 위한 법적지위를 갖게 되었다. 이때 대한민국을 선택하지 않았던 이들이 오늘날 조선적자다. 한국정부에 동조한 일본정부는 이들의 거주권을 제도로서 인정하지 않았다. 이렇게 재일코리안사회는 남북 분단과 냉전 논리가 깊숙이 개입하여 분단되었다. 한국정부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조선적자를 획일적으로 북한 지지자로 여겨 이를 제도화하고 있다. 대한민국이 이들에게 부여한 법적지위란 주민도 재외동포도 아닌, 고향 방문조차 어려운 대한민국 국민인 ‘외국 거주 동포’라는 것이다. 재일코리안 중 약 98%가 남한 출신자임에도 조선적자는 고향 방문조차 쉽지 않다. 남북교류협력법으로 ‘북측 인사’에게 발급되는 여행증명서로 입국이 가능하지만, 역대 정권의 정치적 재량에 따라 입국 허용과 불허가 반복되었다.
‘빨갱이’보다 더 무거운 국민국가에 귀속하지 않는 죄
조선적자 중에는 확실히 북한/조총련과 친화성을 갖는 이들이 다수를 차지하며, 국가로서의 북한에 대한 귀속의식을 갖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나 여러 명의 필자가 지적하듯 조선적자 중에는 이들과 다른 정치적 성향을 지닌 이들도 존재한다. 이처럼 정치적 다양성이 존재함에도 ‘민단-조총련’이라는 이분법적 접근으로 재일코리안사회를 포착해온 것이 그동안의 한국 정부 그리고 사회 일반의 인식이다. 지극히 현실과 괴리되는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 ‘비북’ 조선적자는 일제강점 이전의 통일된 고향으로서의 조선을 희구하기에 분단국가 어느 한쪽에 귀속될 것을 거부한다. 이들에게 조선적이란 ‘국적미선택’을 능동적으로 선택하는 의지의 표징이다. 현실적으로 분단국가 양측의 존재를 부정하기는 어렵지만, 분단국가의 존재 자체가 이미 이들의 통일과 모순적이다. 이러한 맥락으로 ‘비북’ 조선적자 중에는 남북교류협력법에 근거한 여행증명서에 의한 한국 입국을 거부하는 이가 있으며, 이 책에서는 그의 주장이 논의되고 있다.
한편, 국적이 있어야 대한민국의 재외동포가 될 수 있음을 규정하는 현행 재외동포법은 조선적자를 ‘모조리 ‘북’’으로 간주하여 배제하기 위해 교묘하게 설계된 제도로 비추어질 수 있다. 혈통에 근거한 대한민국의 재외동포 개념과 모순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누가 대한민국의 ‘우리’인가를 규정하는 제도는 재일코리안사회의 실태를 외면한 채 국가의 독점적 권력에 의해 이분법으로 누군가를 배제함으로써 성립된다. 심지어 국민국가 대한민국의 독점적 통치를 일시적으로라도 받아들여 ‘북측 인사’에게 발급되는 여행증명서 사용을 마다하지 않은 이들에게는 그나마 한국 입국이 허용되지만, 국가에의 귀속 자체를 거부하는 ‘비북’ 조선적자에게는 정국이 어떻게 기울든 고향을 관광하는 일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이런 일이 반공을 국시로 하는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으니 여간 아이러니한 일이 아니다. 이는 분단 이전에 국민국가라는 틀 자체의 한계다.
왜 트랜스내셔널한 관점이 필요한가?
이 책의 부제 ‘트랜스내셔널의 관점’은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사고 틀로 유용하다. 국가보다도 사람이나 문화, 정보 등을 주체로 포착하는 이러한 논의는 국민국가 논리에 강하게 구속된 남쪽 분단국가 구성원들의 사고 폭을 넓히는 데 다음 세 가지 측면에서 도움을 줄 것이다. 첫째, 누구나가 통일은 물론 사회 전반의 문제에 대해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을 높이는 일이며, 둘째, 재외동포를 비롯한 나와 다른 존재도 더 널리 포용하기 위한 사고의 유연성을 갖추게 될 것이다. 그리고 셋째, 타자와 ‘우리’ 사이의 관계성 구축에 있어 수평적 사고에 입각한 평등의식이 전제되어야 함을 인식하게 될 것이다.
냉전과 국가 논리가 강하게 지배하는 동아시아에서는 인간 개개인의 소통조차 쉽사리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국가로 국한되지 않은 다양한 경로가 마련되어야 비로소 이 지역의 대화가 끊임없이 지속될 것이며 화해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독자는 글로벌화된 사회가 무색해질 정도로 국민국가 논리로 삶을 지배받는 조선적자가 놓인 현실을 이들을 둘러싼 법과 정치 그리고 당사자들의 삶을 직시하게 될 것이다. 이 책을 접함으로써 일본 제국의 해체와 냉전 그리고 분단이라는 ‘제국 후’ 현상이 조선적자와 재일코리안을 둘러싼 ‘남의 일’로 그칠 것이 아니라 여전히 ‘우리’의 일상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재인식할 계기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