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 번 정의하거니와, 우리가 음담패설집으로 알고 있는 고금소총(古今笑叢) 내용 중에서 주로 양반이 계집종과 벌이는 짓이나, 파계승과 변절하는 여인들 간에 은근히 눈 맞추려다가 망신당하는 이야기는 해학(諧謔)에 속한다.
이야기꾼으로 유명한 정수동(鄭壽銅), 정만서(鄭萬瑞)전이나 백사 이항복(白沙 李恒福) 대감이 어릴 적에 보인 천재성으로 어른들을 감탄하게 해 준 이야기가 골계(滑稽)이며, 우리가 잘 아는 봉이 김선달(鳳伊 金先澾)의 대동강 팔아먹는 이야기는 단지 무식한 부자들을 골탕 먹이는 익살쯤으로 보면 무난할 것이다.〈본문 중에서〉
풍속화가 남헌 서정철(南軒 徐正澈) 화백이 자신의 풍속화 43점과 함께 〈회화 속에 숨은 웃음 ‘해학’〉 화문집(畵文集)을 발간했다.
남헌 화백은 해학작품을 전문으로 그린 60년 화업(畵業)이지만 얼마 전까지도 해학과 골계, 익살의 뜻을 제대로 구분하지 않고 두루뭉술하게 사용하는 데 아쉬움이 컸다.
때로는 자료도 찾아봤지만 이에 대한 자료는 전무했고 20년 전 자신이 정리한 자료를 책으로 발간하려 했으나 상처(喪妻) 등의 가정사로 이제야 세상에 빛을 보게 됐다.
남헌 화백의 해학 화문집은 제1부 유모어의 장(章), 제2부 해학(諧謔)과 골계(滑稽)와 익살, 제3부 나의 해학 풍속화로 구성됐으며 해학을 설명하는 자신의 풍속화가 곁들여져 있다. 이를 통해 해학과 골계와 익살의 구분 기준을 명확히 제시, 확립했다.
1부는 ‘해학’을 서양에 유모어(Humor)와 비교해 설명하고 있으며 2부에서는 해학과 골계, 익살을 그림과 함께 설명한다. 3부는 자신의 화업(畵業) 60년에 대한 회고와 전시 에피소드를 소개하며 작가로서 새로운 각오도 담았다.
그림을 직접 보면 더 실감 나지만 글로써 설명해도 상황이 그려지며 미소가 떠오르는 화문집에 담긴 해학풍속화 몇 작품을 소개한다.
* 버스〈63×63㎝〉는 비포장 시골길을 달리는 버스는 고장도 잦고 펑크도 잦았다. 버스가 고장 나면 기다렸다는 듯 소변과 대변을 해결하기 위하여 일제히 보리밭으로 가는 60-70년대의 풍경을 그리고 있다.(본문 85P)
* 명퇴(名退) 아빠〈45x67cm〉는 IMF로 직장을 잃은 아빠가 아내는 외출 준비를 하고, 아기 보는 도우미가 됐지만 “그래도 골프는 쳐야지…”하며 아기를 업고 골프 연습 중인 90년대의 웃픈(웃기고 슬픈) 그림이다(본문 212P-213P)
* 커피는 괴로워〈60×70㎝〉는 서울 미도파백화점 6층에 우리나라 최초로 문을 연 카페가 있었다. 그 당시 커피 한잔 값이 쌀 한 되 값이었으니 매우 비싸기도 했고 입에도 잘 안 맞는 것을 젊잖게 마시자니 내심 불편했던 것 같다.(236P)
동덕여대 김상철 교수는 남현 화백의 작품을 “작가 특유의 해학과 풍자의 이야기는 이전 작업들에 비해 보다 농밀한 여운을 담아내고 있다. 해학은 유머나 익살과 같이 언어로 전달되는 가벼운 것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연민과 동정을 불러일으키는 잔잔한 웃음이다.”라며 “작가가 풍속화에 매진하는 이유 역시 이러한 풍자와 해학을 통해 발현되는 독특한 심미에 주목했기 때문일 것이다.”라고 평가한다.
남헌 화백은 2백-3백 년 전, 단원 김홍도와 혜원 신윤복의 풍속화 이후 맥이 끊길 번한 해학풍속화를 재현해낸 풍속화가라는 화단의 평가를 받고 있다. 2016년 전시를 관람한 한 평론가는 ‘해학풍속화의 선구자’라는 극찬을 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