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에 나는 그만 예술에 빠져 버렸다”
“우리는 예술을 보고 들으면서 무엇을 얻을 것인가”
인생 후반기, 예술의 매력에 뒤늦게 눈뜬
유창선 박사의 문화예술 현장에 대한 인문학적 시선의 기록들
예술은 우리의 심연 속에 있었던 마음이 무엇이었던가를 꺼내서 알게 해준다. 연주를 듣다가 저절로 눈물이 나는 데는 그만한 내면의 이유가 있다. 그러니 예술은 내가 누구인가, 내 마음이 어떠한가를 알도록 해준다. 또한 예술은 우리를 더 좋은 사람으로 성장시킨다. 어떤 감정과 삶이 좋은 것이고 나쁜 것인가를 돌아보게 만들어주는 힘이 있다. 우리는 그림을 보면서 음악을 들으면서 내면의 성숙을 다지는 시간을 갖게 된다.
음악평론가 스티븐 존슨은 『쇼스타코비치는 어떻게 내 정신을 바꾸었는가』에서 이렇게 말한다. “길고 긴 고립의 한가운데에 빠져 있었던 나에게 쇼스타코비치는 내가 완전한 혼자가 아님을, 내가 느끼는 감정을 다른 누군가도 알고 있음을 알려주었다. 또한 어떤 신비한 차원에서 쇼스타코비치도 나를 "들었음"을 깨닫게 해주었다.” 저자와 같은 감정을 가진 사람이 혼자가 아님을 음악은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음악은 힘들고 지친 사람들에게 나도 그렇다면서 위로와 치유의 힘을 준다. 역시 스티븐 존슨의 말이다. “음악이 계속되는 한은 나도 그들 중의 일부다. 여러 목소리 가운데 하나다. 교향곡의 마지막 몇 마디가 침묵 속으로 사라지고, 나는 잠시 그대로 서 있다. 나는 하잘것없는 존재일 수가 없었다. 음악이 나에게 이렇게 느끼게 하는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겠는가.”
음악은 이렇게 사람들에게 용기를 준다. 내가 존엄하고 귀한 존재임을 자각하게 만든다. 어디 음악만이 그렇겠는가. 모든 예술이 그러하다. 그래서 예술이 고마운 것이다.
예술은 또한 자유이다. 정치에서는 눈치를 보느라 감히 입에 담지 못했던 생각과 감정을 예술은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표현한다. 예술가들에게는 금기도 성역도 없었다. 내가 감히 못하던 것을 그들이 하는 것을 듣고 보니, 비겁하지만 그 또한 위로가 된다.
책을 내지만 문화예술에 관한한 저자는 언제나 배우는 학생이라고 말한다. 체계적인 음악교육을 받은 적도 없고 악기를 연주해 본 적도 없다. 그림을 보는 것도 전문적인 식견을 갖고 있지 못하다. 그래서 연주회를 가고 전시회를 갈 때면 열심히 공부한다. 가기 전에는 예습을 하고, 다녀온 뒤에도 그 여운을 즐기면서 복습을 해서 내 것으로 만들려고 노력한다. 예술의 매력을 뒤늦게야 깨달은 늦깎이 학생이라고나 할까.
평생 하던 정치 얘기나 하면서 살지, 이 나이에 무슨 새로운 문화예술 얘기를 하겠다고 공부를 하고 글을 쓰느냐고 물을지 모른다. 사실 저자도 무엇을 위해서 이러는지 알지 못하겠다고 말한다. 그저 보고 듣는 것 자체가 즐겁고 행복한 마음 때문일 것이다. 평생 갖고 살았던 정치나 이념 가득한 삶이 결코 줄 수 없었던 마음의 평안과 안정을 예술이 이렇게 주고 있음을 발견하고 있다. 공부에는 나이가 없다고들 한다. 저자는 이 말을 조금 바꿔서, 예술을 접하는 데는 나이가 없다고 말한다.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한편의 교향곡이나 그림이 주는 의미가 무엇인가를 내 것으로 받아들이며 생각할 수 있는 깊이를 갖게 될 수 있으니
이 책이 문화예술의 즐거움을 많은 분들과 함께 나누는 기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사는 것이 힘들고 고달픈 많은 이들을 위해서도, 이제 나이도 드니 인생의 즐거움을 찾을 곳이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을 위해서도, 문화예술의 문턱이 더 낮아져서 함께 향유하게 되기를 소망한다.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독자 여러분들과 공연장과 전시장에서 더 많이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