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를 주제로 한 오락물: 스파이테인먼트
지난 20년간 스파이를 주제로 한 오락물이 급증했고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다. 키퍼 서덜랜드가 주연한 TV시리즈 〈24〉나 CIA의 대 중동 작전을 현실감 있게 다룬 〈홈랜드〉 등은 국내에도 팬층이 두텁다. 스파이 물은 물론 완전히 허구인 것도 많지만 이란 대사관 인질 탈출 사건을 소재로 한 〈아르고〉나 오사마 빈 라덴을 추적한 작전을 다룬 〈제로 다크 서티〉처럼 실제 사건에 기반한 영화도 있다.
저자의 조사에 따르면 스파이 오락물을 더 자주 시청한 사람이 용의자에 대한 가혹 행위, 미국 시민에 대한 감시 등 공격적 활동에 더 찬성했다. 스파이 물은 일반인은 물론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의 정책결정자에게도 영향을 끼쳐 허구의 스파이가 현실 여론과 실제 정보기구 관련 정책을 좌우하는 수준이 되었다.
저자는 스파이 오락물의 영향으로 고문 받지 않을 권리, 정당한 재판을 받을 권리 등 기본적인 인권을 무시하고서 테러리스트로 의심되는 인물을 심문하고 처벌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사고방식이 널리 퍼지는 것은 아닐지 우려한다. 반대로 모든 정보활동이 불법적이며 민주주의와 양립할 수 없다는 사고방식도 국가안보와 민주주의를 무너뜨릴 수 있다. 그런 이유에서 미국 정보기구의 실체를 정확히 전달하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미국 정보기구의 간략한 역사: 가짜 빵 오븐에서 드론 살상까지
미국 독립전쟁 중 워싱턴이 수적 열세를 감추기 위해 거대한 제빵 오븐을 짓고 빵 굽는 연기를 피워 영국군을 속인 일은 이순신 장군이 노적봉 바위에 빈 가마니와 짚을 덮어 산처럼 쌓인 군량미로 속인 일화와 비슷하다. 당시 영국의 진지와 병력 이동에 관한 중요한 정보를 전달했던 가장 성공적인 스파이 조직은 컬퍼 스파이단이었는데, 이들은 뉴욕 주 작은 마을의 친구들이었다.
독립 이후 미국의 정보 역량은 전시에는 발전했다가 평시에는 흩어지기를 반복했다. 독립전쟁과 남북전쟁 외에는 정보활동이 거의 중단되었으며, 제1차 세계대전까지도 정보활동은 전쟁 중에만 필요한 것으로 인식되었다. 법무부, 육군, 해군 등 각 기관에서 각자의 필요에 따라 정보부서를 만들었기 때문에 정보가 통합되어 올바른 분석으로 이어지지도 못했다.
미국의 정보기구는 제2차 세계대전과 냉전을 겪으면서 자리 잡을 수 있었으며, 정보공유 실패로 막지 못한 2001년 9.11 테러와 정보분석 실패로 초래된 2003년 이라크 전쟁 이후 정보를 통합하고 대통령의 정보 고문 역할을 하도록 국가정보장(DNI) 직위가 신설되었다.
미래 예측과 미래의 정보활동
전문가들의 미래 예측 성공률 조사에서 예측 성공률이 높은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대단히 개방적이고, 호기심이 많고, 신중하며, 자기비판적이었다. 다행히 학습과 훈련을 통해 이러한 특성을 향상시키고 예측력도 높일 수 있다. 또한 정보활동에서는 장기적 관점을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정보관 개개인은 물론이고 정책결정자와 정보활동 감시자 모두 긴 안목과 냉철한 판단, 그리고 열린 태도로 사실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과거에는 국가안보 기관만 인공위성 영상을 입수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누구든지 전 세계 어느 곳이든 인공위성 영상으로 감시할 수 있다. 그 배경에는 다양한 상업 인공위성과 AI를 활용한 패턴 분석이 자리 잡고 있다. 또한 기술 발전에 따라 각국은 사이버 공간에 점점 더 의존하고 있는데, 사이버 공간은 국경이 없고 공격자를 특정하기도 어려우며 선진국일수록 취약점이 더욱 많은 환경이다. 사실상 누구나 정보활동을 하고 선진국의 안보가 더 불리해지는 시대에 미국의 정보기구와 정책결정자들이 검토해야 할 기술과 철학이 무엇인지 살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