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사회의 성숙한 시민을 육성하는 프랑스 바칼로레아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발언하며, 행동하는 인간을 기른다
‘예술이 사회를 바꿀 수 있는가?’
‘정의로운 사람은 법을 어겨도 되는가?’
‘이성이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가?’
모두 프랑스 대학 입학 자격시험 ‘바칼로레아’에 실제로 출제되었던 철학 문제들이다. 주어진 시간은 단 4시간. 문제를 푸는 고등학생들은 그 안에 충분한 논리로 뒷받침된 하나의 답안을 작성해서 제출해야 한다. 어떻게 프랑스의 교육은 학생들이 이렇게 난해한 질문에 답하도록 만들 수 있었으며, 왜 이런 교육을 지향하는 것일까. 그리고 세계 각국에서 바칼로레아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프랑스의 바칼로레아는 나폴레옹 황제 시대부터 무려 200년 이상 이어져 왔다. 그중에서도 백미로 꼽히는 철학 시험은 그해의 가장 중요한 이슈를 다루는 경우가 많으며, 시험이 시작되고 문제가 공개되면 수험생이 아닌 일반 시민들까지도 각종 미디어를 통해 해당 주제를 두고 토론한다. 긴 역사 동안 철학 과목이 포함된 학교 교육을 받아 온 프랑스인들에게는 이러한 사회적 논의가 낯설지 않다. 《바칼로레아 철학 수업》에서 소개하는 프랑스 철학 교육의 목표는 다음과 같다.
1. 자기 생각이나 지식을 검토하여 그 타당함을 검증할 수 있을 것
2. 곰곰이 생각하지 않으면 대답하기 어려운 복수의 질문을 만들 수 있을 것
3. 하나의 문제에 대해 복수의 시점을 비교 평가하고, 적절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을 것
4. 근거 있는 주장 및 지식에 기초한 논거를 제시함으로써, 자신이 긍정하는 것과 부정하는 것을 정당화할 수 있을 것
5. 철학 작품 독서, 발췌 학습을 통해 얻은 지식을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
이러한 교육 목표에서 알 수 있듯, 프랑스의 철학 수업에는 철학적 개념들과 주요 철학자들의 이론을 학습하는 과정도 당연히 포함되어 있으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러한 지식을 바탕으로 논리적 주장을 펼치는 방법인 ‘사고의 틀’을 배우는 일이다. 민주주의 사회의 시민으로서 설득력 있게 의견을 개진하고,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과도 반목 대신 생산적인 토의를 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이 바칼로레아의 주된 목적이다. 이처럼 주입식 암기 교육의 한계로 지적되는 비판적 사고력 함양과 건전한 토론 능력 증진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이 전 세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논리력 강화를 위한 바칼로레아식 사고의 과정
각종 논술, 토론 시험에 가장 효과적인 훈련법!
《바칼로레아 철학 수업》에서는 프랑스식 논리 교육의 정수인 ‘사고의 틀’의 실질적인 활용법과 가치를 중점적으로 다룬다. 이해를 돕기 위해 실제 출제되었던 바칼로레아 시험 문제를 기반으로 논점을 체계화하고 정제된 형태로 표현하는 방법을 안내한다. 바칼로레아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 철학적으로 독창성이 있고 창의적이어야 할 것이라는 추측이다. 그러나 바칼로레아의 답변은 논리와 체계, 그리고 규칙에 따라 얼마나 깊이 있게 문제를 이해하고 여러 입장을 고민하여 설득력 있는 답을 내놓느냐에 있다. 감동적인 개인의 체험을 서술하거나 개성적인 문체로 유려한 글을 쓴다고 한들 바칼로레아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
또한, 바칼로레아식 사고법은 학문적인 논쟁의 해결에만 적용되지 않는다. 사고의 틀은 인문학적/철학적 문제를 넘어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질문들에 대해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도록 돕는 유용한 도구이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이직을 준비할 것인가’ 하는 다소 개인적인 고민부터 ‘정부의 증세 정책을 지지할 것인가’ 하는 사회적 선택의 문제까지 정해진 답이 없는 세상의 문제를 현명하고 체계적으로 다루는 법을 익힐 수 있다. 주제 분석하기, 형태 분석하기, 표현 정의하기, ‘네, 아니요’로 답해보기, 세부 내용에 주목하기, 하위 질문으로 쪼개기, 논거를 모아 활용하기 등 단계적 접근은 복잡해 보이는 질문의 해결책을 찾는 열쇠가 된다.
이 책은 바칼로레아와 프랑스식 철학 교육을 단순히 옹호하고 예찬하고자 쓰이지 않았다. 저자 역시 본문에서 언급하듯, 아직 프랑스 사회에서도 철학 교육의 목표가 충분히 이루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철학과 실천 사이에는 늘 괴리가 존재하며, 바칼로레아에서 활용되는 것과는 다른 사고법과 표현법이 필요한 분야도 있기 마련이다. 다만 사회적으로 합의된 기본적인 논리 구조가 존재하고, 이것이 건설적인 소통의 밑거름이 될 수 있다는 것은 다각도의 이해관계를 고려해 민주적인 결정을 내려야 하는 현대사회에서 우리도 반드시 숙고해 봐야 할 지점이다. 오랜 연구를 거쳐 만들어진 바칼로레아식 ‘사고의 틀’은 다양한 가치관이 공존하는 우리 사회에서 진정 발전적인 논의를 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꼭 필요한 도구가 된다. 자신의 의견을 논리정연하게 정리하고 설득력 있게 표현하고 싶은 이들이라면 바칼로레아식 사고의 틀을 통해 큰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