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깝고도 먼 나라’ 한국과 일본,
역설의 관계에서 조화하는 한일 미의식의 집대성
이 책은 『일본정신분석』, 『신도와 일본인』, 『국화와 칼』(역서) 등을 펴내며 일본 문화와 사상을 연구하고 그중 국내에서는 드물게도 신사와 신도라는 주제에 천착해온 지은이(박규태 한양대학교 일본학과 명예교수)가 한국과 일본의 미의식을 비교해보겠다는 일념하에 한일 전통미의 현장을 구석구석 찾아다니며 양국의 미학적 개념들을 총망라한 역작이다. 지은이는 한국인의 정서를 대표하는 미의식으로 우리 민족 고유의 보편 감정인 ‘한(恨)’을, 일본인의 미의식으로는 ‘모노노아와레(物哀れ)’를 대별한다. 모노노아와레란 존재하는 모든 것을 가리키는 ‘모노(物)’와 주로 감동을 뜻하는 ‘아와레(哀れ)’의 합성어로, 우아한 정취와 무상감을 수반한 비애미가 중심을 이루는 미의식이다. 아주 단순하게 한은 한국적 슬픔의 감정이고 모노노아와레는 일본적 슬픔의 감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한과 모노노아와레는 모두 슬픔이나 체념의 감정을 내포하고 서로 반대되는 것들의 조화, 모순의 차원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공통분모를 갖지만 한이 ‘모순의 승화’를 지향하는 반면 모노노아와레는 ‘모순의 무화’를 추구한다는 점부터 근본적인 차이를 수반한다.
한과 모노노아와레, 예스럽고 소박한 고졸미와 쓸쓸한 비애미 등 한일 양국을 대표하는 미학적 개념들과 그 사상적 밑그림을 자세히 살피고 불상과 건축, 문예와 예능, 정원, 미술, 도자기의 다양한 사례를 들어 이론적 서술을 뒷받침하는 이 책은 가히 한일 미의식 비교의 집대성이라고 할 만하다. 이 책이 한국과 일본의 문화 및 의식구조 전반에서 확인되는 유사성 속 차이를 들여다보기 위해 제시하는 키워드는 ‘반대의 일치’이다. 이때 ‘반대의 일치’란 아름다움의 세계가 지니는 양면성의 표층적 인식에서 한 발 더 나아간 개념으로, 그 심층에 숨겨져 있는 조화의 원리를 가리킨다. 즉 양면성의 어느 한쪽도 실상이 아니며, 대립되는 것들의 모순적인 동거 또는 양가적 공존이 있다는 것이다.
한국과 일본의 불상, 건축, 정원, 도자기, 시조, 가면극 등
다양한 사례를 통해 총망라하는 한일 미의식
이 책의 1부에서는 한일 양국의 다양한 미의식 개념을 개관하면서 거기서 엿볼 수 있는 ‘반대의 일치’ 양상과 그 사상적 배경을 살핀다. 한국인의 다양한 미감을 크게 ‘멋’ 계열과 ‘한’ 계열로 구분하고 양자 모두 자연미 계열의 미의식이 그 토대를 이루고 있다고 본다. 이러한 한국인의 미의식을 ‘승한(昇恨)의 변주곡’으로 이해하고, 한국형 ‘반대의 일치’ 사상의 궁극적 지향점을 ‘모순의 승화’에서 찾는다. 한편 일본의 미감은 무상감과 결부된 일본적 슬픔의 미학인 모노노아와레의 미의식으로 수렴된다. 모노노아와레 미의식도 자연미에 입각해 있지만, 모노노아와레에서의 자연은 많은 경우 ‘이념화된 자연’으로 나타난다. 그 배경을 알아보기 위해 텐넨(天然: 자연 그 자체), 시젠(自然: 이념화된 자연), 오노즈카라(自然: 저절로) 등의 일본적 자연 개념을 살피고, 절대 모순적 자기동일로 나타나는 일본형 ‘반대의 일치’ 사상은 궁극적으로 ‘모순의 무화’를 지향한다고 정의 내린다.
이 책의 2부에서는 한과 모노노아와레에 대한 본격적인 비교 작업을 개진한다. 먼저 구조적·내용적 측면에서 한과 모노노아와레의 공통점 및 차이를 규명하고, 한의 대표적 사례로 박경리의 『토지』에서 나타난 한의 양상을 살핀다. 『토지』는 동학농민운동과 일제강점기를 전후한 시대를 살았던 한국인의 한은 물론 모순에 가득찬 삶과 세계가 빚어내는 한의 보편적 의미를 묻고자 할 때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텍스트이다. 이에 더해 한의 일본적 표상을 야나기 무네요시의 ‘비애미’ 및 ‘모노(物)’ 개념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보고, 비애미 및 모노와 밀접하게 연동하는 모노노아와레 미의식을 ‘감성적 인식론’과 ‘타자론’의 관점에서 분석한다.
3부에서는 이상의 이론적 서술을 뒷받침해주는 다양한 사례를 제시한다. 한일 불상 및 건축 비교에서는 석굴암 불상과 교토 광륭사 반가사유상 및 종묘와 이세신궁을 살피고, 이중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금동 반가사유상과 닮은꼴인 광륭사 목조 반가사유상과 관련하여 하타씨에 주목한다. 한일 정원은 부석사 무량수전과 교토 용안사 돌정원, 궁궐 정원을 대표하는 창덕궁 후원과 민간 정원을 대표하는 담양 소쇄원 및 교토의 황실 정원인 가쓰라리큐와 슈가쿠인리큐 등을 다룬다. 한일 문예와 예능은 양국의 정형시인 시조, 와카, 하이쿠 및 양국의 국민문학으로 사랑받는 『춘향전』과 『주신구라』, 그리고 양국의 대표적 가면극인 탈춤과 노(能)를 다룬다. 한일 미술은 양국을 대표하는 화가(판화가)인 이중섭과 무나카타 시코 및 조선 민화와 에도시대의 다색목판화 우키요에(浮世絵)에 초점을 맞춘다.
이 책의 4부에서 주목하는 한국과 일본의 도자기는 양국의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으로 얽혀 있는 미의 세계이자 한일 미의식의 차이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이다. 고려청자는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은 ‘화이불치(華而不侈)의 푸른 꽃’으로, 조선백자는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은 ‘검이불루(儉而不陋)의 선비향’으로, 분청사기는 조화로우면서도 개성적 차이를 지니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의 민중미’로 표상하고 이와 같은 한국 도자기의 아름다움을 ‘한의 산물’로 간주한다. 그리고 임진정유 양난 때 피랍된 조선 도공들이 규슈 곳곳에 정착하여 가마를 열고 도자기를 만들어낸 이래 이들이 시조가 되어 일본 도자산업의 토대를 구축한 대표적인 사례들을 살핀다. 이 가운데 특히 최초로 일본 백자를 만들어낸 이삼평 및 일본 도자기의 어머니로 불리는 백파선을 비롯하여, 피랍 조선 도공의 후예인 박무덕과 14대 심수관을 둘러싼 현대 한일의 신화 만들기 현상에 대해서도 주목한다.
이 책의 5부에서는 한일 미의식의 사상적 배경으로서 한국과 일본의 조화 사상을 고찰한다. 이때 일본과 한국의 대표적인 조화 모델로 「17조헌법(十七条憲法)」의 화(和) 개념과 원효의 화쟁(和諍) 개념에 초점을 맞춘다. 자기와 타자 사이의 차이에 민감하면서도 보편성의 관점에서 그런 차이를 인식하고 수용하는 태도로서 ‘비교의 정신’을 제시하고 일본형 화와 한국형 화의 소통 가능성을 시사한다.
유사성 속 차이의 조명으로 이루어지는 정신적 균형잡기
한국인과 일본인은 세계에서 가장 가까운 민족임에 틀림없다. 양국은 인종적·언어적 유사성뿐만 아니라, 동일한 한자·대승불교·유교문화권에 속한다는 점에서 문화적 유사성을 많이 공유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한일 양국에 공통된 미의식인 조화미에 자리한 근본적인 차이에서도 알아볼 수 있듯이 한일 미의식에는 분명 ‘유사성 속의 차이’가 존재한다. 한국의 조화미가 있는 그대로의 자연에 순응하는 미라면 일본의 조화미는 작위의 미가 큰 부분을 차지한다. 이러한 ‘유사성 속의 차이’는 한일 양국의 문화와 의식구조 전반에서도 확인된다.
이 책은 이와 같은 한일 문화 사이의 공통분모와 유사성 속의 차이를 비롯한 수많은 차이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자세가 우리에게 필요함을 역설한다. 그것이 양국 간의 참된 유대와 대화의 계기를 만들어내기 위해 불가결한 작업이라는 것이다. 물론 한일 간의 어두운 역사를 일방적인 회피나 일시적 봉합으로 적당히 덮는 것은 바닷가 모래성을 쌓는 일과 다름없다. 아픈 과거일수록 역사를 제대로 알고 기억하는 작업을 통해 생산적 미래를 위한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 점에서 꾸준한 정신적 균형잡기를 지향하는 이 책은 가장 전위적인 투쟁의 장인 미의식이야말로 모순을 품어 안으며 승화시키는 조화의 궁극적인 지향점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