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 것을 나타내는 신의 경지, 제로
무, 무한, 진공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흥미로운 이야기
서양에서는 0을 오랫동안 거부했다. 수와 도형을 동등하게 바라본 덕분에 고대 그리스인은 기하에 능통했지만, 이러한 사고방식으로는 0을 숫자로 여길 수 없었다. 0을 나타내는 도형이란 있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신의 존재에 대한 증명’은 0을 오랫동안 서양에 발붙일 수 없게 만들었다. 그에 따르면 천구는 각자의 자리에서 천천히 회전하며 온 우주에 퍼지는 천상의 음악을 만들어낸다. 그런데 정지한 지구는 회전의 원동력이 될 수 없으므로 안쪽 천구는 그다음 바깥쪽 천구에 의해 움직여야 하고, 그 바깥쪽 천구는 다시 그다음 바깥쪽 천구에 의해 움직여야 하며, 이 과정이 되풀이된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무한은 상상력의 산물일 뿐이므로 필요하지도 않고 사용해서도 안 된다고 했다. 무한대가 없으니 천구의 수도 유한하고, 따라서 맨 바깥의 천구를 움직여줄 천구도 없다. 그렇다면 이 모든 운동에는 궁극의 원인이 있어야 하고, 그 궁극의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존재가 바로 ‘신’인 것이다. 당시 아리스토텔레스의 교리를 의심하는 것은 신의 존재를 의심하는 것과 같았다. 그의 말처럼 무한이 없다면 무한과 쌍둥이 개념인 무(無와) 진공(0)도 없다.
반면 동양에서는 0이 번성했다. 인도 수학자들은 그저 0을 받아들이는 데서 한 발 더 나아갔다. 인도인은 1÷0이 무한대임을 깨달았고, 12세기 인도 수학자 바스카라는 “분모가 0인 분수는 무한한 양이라고 일컫는다. 여기에 어떤 수를 더하든 빼든 아무런 변화도 없다. 영원불변의 무한한 신에게 어떤 변화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라고 말했다. 0과 무한대에서 신이 발견된 순간이다. 이후 0은 인도에서 이슬람에 전해졌고, 서양은 결국 이슬람으로부터 0을 받아들였다. 0은 아무것도 아닌 무(無)이지만, 피타고라스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연한 논리를 파괴할 만큼 그 힘이 강력했기에 먼 길을 돌아 서양에 받아들여졌다. 0에는 신이 깃들어 있다.
“철학과 종교, 수학과 물리학의 가장 깊숙한 곳에 0이 있었다!”
철학과 과학을 넘나들며 종횡무진 펼쳐지는 제로의 연대기
철학과 종교뿐이 아니다. 0의 활약은 미술, 수학, 물리학에서도 두드러진다. 15세기 화가들은 아마추어 수학자였다. 1425년, 브루넬레스키는 피렌체의 세례당 건물을 그리면서 그 중앙에 길이도 너비도 높이도 없는 0차원의 점을 놓았다. 화폭 위의 미세한 0차원 물체가 바로 소실점이다. 소실점은 관찰자로부터 무한히 먼 곳을 나타낸다. 그림 속 물체는 관찰자로부터 멀리 있을수록 소실점에 더 가까워지면서 계속해서 작아진다. 그리하여 관찰자로부터 충분히 멀어지면 사람이든 나무든 건물이든 모든 물체가 0차원의 점이 되어 사라진다. 그림 중앙의 0은 무한한 공간을 담고 있다. 이 소실점 덕분에 그림은 생생하게 살아나 3차원의 실물과 흡사해진다. 소실점은 0과 무한대와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소실점은 대부분의 우주가 작은 점 하나에 모이게 한다. 이는 과학사에 있어 매우 중요한 개념인 일종의 특이점(singularity)이기도 하다.
자연의 언어라고 불리는 미적분에서도 0은 대활약을 펼친다. 뉴턴은 0을 0으로 나눈다는 부실한 토대 위에서 미적분의 논리를 전개했다. 그리고 열역학에서 0은 넘을 수 없는 장벽이자 가능한 가장 낮은 온도가 되었다.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에서는 별을 통째로 집어삼키는 괴물 같은 블랙홀이 되었으며, 양자역학에서는 무한하고 어디에나 있으며 심지어 가장 깊은 진공에서도 존재하는 기이한 에너지의 원천이 되었다.
책은 이처럼 온갖 분야를 넘나들며 0의 활약을 숨 가쁘게 풀어낸다.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개념과 역사가 자연스레 습득되고, 철학자와 수학자 그리고 과학자의 인간적인 면면을 엿볼 수 있다는 것은 이 책만의 독보적인 매력이다.
이 책에 쏟아진 찬사
“대중의 오해와 달리 수학자는 가장 명석한 작가이기도 하며, 세이퍼는 그 좋은 예이다.”
_「애틀랜타 저널 컨스티투션(Atlanta Journal Constitution)」
“이 매혹적인 연대기에서 제로는 벅찬 지적 수수께끼로 등장한다. 물리학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_「북리스트(Booklist)」
“세이퍼의 이야기는 역사와 철학에서 과학과 기술로 매끄럽게 이동하며, 복잡한 아이디어를 명료하게 제시한다.”
_「댈러스 모닝뉴스(The Dallas Morning News)」
“이 책을 다 읽을 때쯤이면 제로가 인류가 고안해낸 아이디어 중 가장 풍부하고 가장 위험한 아이디어라는 세이프의 주장에 이의를 제기할 독자는 없을 것이다.”
_「퍼블리셔스 위클리(Publishers Week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