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등철학의 심화
《대등한 화합》(2020)에서 처음 제기한 대등론은 이 책에서 철학적 기반과 발전 단계를 갖추어 심화·체계화된다. 노자의 무명·무위, 기일원론이 대등론의 철학적 기반이며, 서경덕과 임성주, 최한기 철학을 분석하여 대등론이 만물대등에서 만생대등, 만인대등생극론으로 전개됨을 밝힌다. 서두에서 저자는 윤동주 〈별 헤는 밤〉으로 만물과 만생대등을 시적으로 보여 준다. 저자의 시 가운데 〈나·풀·별〉은 만인·만생·만물대등을 넘어 세 존재의 얽힘과 윤회를 노래한다. 특히 〈질병이 스승이다〉는 대등론이 어떻게 우리네 삶과 불가분인지 깨닫게 한다.
문학으로 만나는 대등론
이 책 전체에 걸쳐서 만물과 만생, 만인대등의 예로서 세계의 시와 소설, 수필, 전기 등 이야기가 펼쳐진다. 고즈넉한 시조에서 자연물과 하나되는 만물대등을 엿볼 수 있다면, 잔잔한 수필에서는 나귀, 수목, 벌레(미물) 등 만생대등을 느낄 수 있다. 만인대등의 비중은 상당히 높다. 차등의 현실을 남녀관계, 권력관계 등으로 나누어 차별에 항거한 시, 풍자문학, 성자전 등을 동서고전을 넘나들며 들여다본다. 더하여 저자는 자신의 시를 여럿 읊어 감흥을 전한다. 여기 저자의 시 〈구름〉에서 만물대등의 예를 만나보자.
구름
하얀 구름 가벼워
높이 떠 있다가,
색깔이 짙어지면 품위 잃기 시작한다.
세력 불려 패권 장악
이런 뜻은 전혀 없고,
무게가 늘어나면 잘못된 줄 알아차린다.
하늘을 온통 가리는
잠깐 실수 뉘우치고,
참회하는 눈물이 되어 아래로 내려온다.
제 몸을 헐어내어
온갖 생명 살려내고,
땅 위의 모든 물과 다시 만나 소생한다.
역전의 원리
대등론의 묘미는 유무有無역전, 현우賢愚 전복, 표리表裏역전에 있다. 저자는 “불운이 행운”이라는 이 역전의 원리가 역사와 문학에 종종 출현함을 실감나게 보여 준다. 유구, 핀란드 같은 약소국이 채온 문학이나 〈칼레바라〉 서사시를 이룩한 것이나, 대대로 농민 집안의 시골 사람 안등창익의 호성론互性論이 시대를 앞서간 이야기는 한둘이 아니다. 독자들은 만리장성과 돈황막고굴, 키플링과 타고르의 시, 《리어왕》과 《심청전》을 비교하며 차등의 위세 너머에 있는 미, 강약의 전복을 통찰하게 된다.
풀, 진달래, 무無 … 이 책을 읽으면 꽂히는 단어들이다. 저자는 보잘것없는 풀, 진달래가 곧 “나”이며, “선생”이라고 말한다. 이 책을 한낱 사라지는 “바람”으로 여겨달라는 그이지만, 바람의 노래는 존재를 휘돌아 감싸며 끝 간 데 없이 불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