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성훈 교수의 철학 에세이는 마치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와 버트런드 러셀의 〈서양철학사〉를 읽는 듯한 체험을 독자에게 선물한다. 1부에서 저자는 그리스 신화의 카오스와 노자의 도(道), 그리고 빅뱅 이론을 넘나들면서 독자에게 ‘우주의 눈’을 보여준다. 우주의 눈은 가만히 있지 않는다. 기독교 사상과 힌두교의 메시지와 불교의 깊이까지 종횡무진으로 누비면서 인류가 지금까지 어떤 고민을 했는지 보여주는데, 저자가 안내하는 이런 우주적인 여행은 밤하늘에 펼쳐진 은하수처럼 황홀하다. 마치 철학이란 고전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 아니라고, 그냥 현대에 머물러 있으면 된다고, 그러면 니힐리즘으로 긴밀해진 동서고금의 사상이 독자의 마음속에서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고 말하는 듯하다. 이 책은 이미 1부에서 ‘읽는 맛’과 ‘생각의 즐거움’을 선사하는 훌륭한 교본임을 증명한다.
2부는 니체적인, 너무나 니체적인 니힐리즘의 세계를 펼쳐낸다. 니체 철학 강독일 리 없다. 저자는 ‘니체가 이렇게 말했다’라는 식의 이야기를 피한다. 그 대신 2부에 도착한 독자에게 먼저 동양고전의 장자 이야기를 꺼내면서 1부에서 말한 우주의 눈을 환기한 뒤, 독자가 살고 있는 ‘돈, 학벌, 지위, 외모’의 세계를 둘러보게 하더니, 미국 현대철학자 마이클 왈처의 통찰을 보여준다. 이렇게 우주의 눈과 현대의 삶을 충분히 대비한 다음에 비로소 니체를 만난다. 니체를 만나면 누구나 감전된다. 2부 2장과 3장에서 독자의 마음속에서 니힐리즘의 전류가 흐른다. 이것도 잠시, 4장에서 저자는 80년대의 전율을 전하면서 니체와 마르크스의 만남을 증거한다.
3부에서 저자는 니힐리스트로 사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야기는 더 흥미진진하게 흐른다. 납덩어리보다 더 무겁게 들리는 신의 죽음에 관한 니체의 저 유명한 선언을 아인슈타인의 반문으로 경량화한다. “당신이 말한 신이 어떤 존재인가요?” 그런 다음 인류사에서 빼놓을 없는 신의 존재 증명 이야기와 자유에서 도망가 기어이 우상숭배를 택하고 마는 인류의 도피 행각을 빠트리지 않고 다룬다. 독자들은 불안한 현대인의 모습에 수긍하다가 저자와 함께 니체의 후예인 사르트르를 만난다. 그러자 사르트르는 열쇠 구멍을 통해 우리를 엿보고 있는 타인의 시선을 가리킨다. 수치심의 발견? 아니면 애덤 스미스가 말하는 공정한 관찰자의 눈? 타인의 시선에 맞서야 하는 니힐리스트의 숙명을 체감하자, 니힐리즘의 파노라마는 4부로 이어진다.
이 책의 4부는 인정 투쟁으로 시작한다. 사람들은 학벌, 부, 명예, 권력, 외모 등을 선망한다. 그런데 그런 가치를 인생의 목적으로 삼지 않으려는 니힐리스트의 삶은 고통스러운 과정일까? 저자는 그런 고통을 거부한다. 니힐리스트의 자기 창조적 삶은 타인의 시선에 묶이는 게 아니라 역설적이게도 타인의 시선을 바꿈으로써 타인의 인정을 획득한다는 것인데, 〈인정 투쟁〉의 악셀 호네트에게서 길을 찾은 니힐리스트의 이야기는 매혹적인 문학 평론으로 이어진다. 저자는 아름다운 잔혹미를 보여주는 〈사의 찬미〉를 보여준 다음, 허망하지만 마찬가지로 아름다운 〈노인과 바다〉를 보여주면서 ‘허무는 삶의 출발점’이라는 메시지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3장에서 카뮈가 말하는 시지프를 통해 그 허무가 긍정된다. 4장에서 푸코가 등장해서 니힐리스트를 거든다. 5장에 이르러 다시 니체가 등장하면서 삶이 예술 작품으로 거듭난다. 그것이 니힐리스트로 산다는 것의 의미이다.
이 책은 1부 우주의 눈으로 시작하여 4부 허무의 예술에 이르기까지, 니힐리즘 관점으로 펼쳐지는 존재와 인간 삶의 세계로 독자를 충분히 안내하는 데 성공한다. 독자는 마치 니힐리즘 만화경으로 보듯 그런 진경을 목격했다. 그런데 혼자 외롭게 삶을 감당하려는 어느 이름 모를 독자를 위해 니힐리스트는 혼자가 아니라면서 저자는 5부를 덧붙인다. 1장은 현대인들이 니체가 말하는 이상적인 초인의 길에 들어서지는 못하더라도 술처럼 달콤한 ‘간헐적 니힐리스트’의 길이 있음을 상기시켜 준다. 2장은 니힐리즘 철학의 계보를 재미있게 거론한다. 사람들이 흔히 칭송하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아닌, 알렉산드로스 대왕을 놀라게 한 디오게네스가 등장하고, 법정스님의 무소유가 이어진다. 3장은 니힐리스트의 사랑을, 4장은 니힐리스트 사회를 다룬다. 존 롤즈의 정의론이 니힐리즘 관점으로 해석된다.
오늘날 현대인의 삶은 마냥 평화롭거나 안전하지는 않다. 삶이 무겁고 힘든 사람이 많다. 이토록 매혹적인 문장으로 니체 철학을 해설하면서 동시에 그런 사람들을 위로해주는 책이 있었을까? 이토록 자욱하면서도 명쾌한 스타일로 니힐리즘을 소개하면서 니힐리스트의 삶을 권유한 철학책이 지금껏 있었을까? 이 책 〈니힐리스트로 사는 법〉은 존재와 허무를 씨줄과 날줄로 엮어 자유로운 삶의 가능성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 보기 드문 역작이다.
열심히 살고 있음에도 삶의 길을 잃어버리는 것은 한순간이다. 인생의 고통과 실패는 도처에 있으며 방황은 불현듯 찾아온다. 인생의 목적이 무엇이며, 왜 살아가야 하는지 고민하는 현대인의 마음을 적셔줄 반가운 책이 출간되었다.
우선 이 책은 철학 책이다. 그러나 단순히 인물과 사상을 분류해서 ‘갤러리에 전시하는’ 소개하는 철학사 책은 아니다. 누구든지 쉽게 읽을 수 있는 철학 에세이다. 니체의 니힐리즘을 근간으로 저술되어 있으므로 니체 철학을 쉬운 우리말로 제대로 이해하고 싶은 독자에게 특히 반가운 책이다.
그런데 이 책은 오히려 철학 책이라기보다는
마음 수양 책에 가깝다.
경쟁 사회에서 타인이 정해 놓은 게임 규칙에 따라 돈, 권력, 학벌, 외모, 명예를 목적으로 삼는 인생에서, “도대체 왜?’, ‘다른 인생이 있어?’라고 의문을 품는 사람들에게, 삶이 무겁고 힘든 사람들에게, 이 책은 자유로운 정신으로 그들의 마음에 힘을 준다.
이 책 말미에 붙은 출판사 편집자의 편집 후기를 독자에게 전한다:
이 책을 읽고 편집하면서 환상 특급을 타고 깊은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 들었습니다. 대체로 철학책을 티켓 삼아 떠나는 여행은 역사를 빛낸 인류의 스승을 찾아 그들의 발자취와 사상을 체험해 보는 여행이며, 말하자면 과거를 공부하는 시간 여행입니다. 그런데 저한테 이 책은 달랐습니다. 마치 우리는 그저 현재에 머물러 있으면 되고, 과거에 살던 인류 스승들이 찾아와서는 우리를 위로해 주는 시간 여행이었습니다.
우리는 존재 이유와 삶의 목적에 대해 심한 갈증을 느낍니다. 저자는 그런 현대인의 목마름을 적셔 주기 위해 상당한 인내심을 발휘합니다. 독자를 배려하기 위해 너무 깊게 들어가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꼭 필요한 얘기는 구슬 꿰듯 꿰어놓습니다. 어려운 말을 피하면서도 제대로 지식을 전합니다. 그 지식이 우리를 위로합니다. 덕분에 동서양의 지혜가 우리 삶과 긴밀해집니다. 니체의 니힐리즘 관점으로 수천 년의 인류의 사상을 정리하면서도, 저자는 독자들이 니체의 표현에 묶이지 않고 니체를 넘어서는 니힐리스트로 살아가는 법을 제안합니다. 이 책에 새겨진 저자의 인상적인 제안에서 더 많은 사람이 독서의 즐거움과 인생의 위로를 얻기를 희망합니다. 이 책을 편집하면서 철학책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버트런드 러셀의 문장력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그러므로 러셀이 〈서양철학사〉 서론에 쓴 문장을 인용하면서 이 책의 편집을 마칩니다. “무기력한 상태에 빠지지 않고 의연히 살아가는 법을 가르치는 일이야말로 우리 시대에 철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을 위해 철학이 지금도 해야 할 중요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