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서비스는 내 책을 통해 파동 이론을 학습하는 독자에게 도움을 주고자 만든 것이다. 이 서비스의 독특한 점은 시장을 예측하지 않고 파동 이론을 최근 시장 동향에 적용한다는 것이다. 독자들은 책을 교과서로 삼아 파동 이론을 앞으로 진행될 파동에 적용해서 시장을 예측해야 한다.”
- 엘리어트 시장 예측 서신 중에서
1. ‘엘리어트의 파동 이론’은 널리 알려진 시장분석 투자도구이다. 다만 널리 알려진 것과 별개로 그 이론을 정확히 알고 실제 시장에 적용하는 사람은 극소수다. 그것은 이론이 어렵기 때문이 아니라 제대로 소개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2. 〈인베스트먼트 카운슬〉이라는 투자 정보지를 운영하는 짐 콜린스는 1934년 12월 2일 한 통의 편지를 받는다. 편지 봉투에는 11월 28일의 소인이 찍혀 있었고, 보낸 이에 R. N. Elliott라고 적혀 있었다. 편지에서 엘리어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주식시장이 움직이는 세 가지 새로운 속성을 발견했습니다. 이것은 파동의 종결점을 인지하는 방법과 파동의 등급 분류와 시간 예측 방법입니다.’ 그는 이 편지에서 이어 말하기를 ‘현재 불 마켓의 종결점에 이르면 조정이 오는 것이 아니라 대단한 폭락 사태가 연출될 것입니다’라고 예언했다. 이 예언은 정확히 들어맞아 1937년과 1938년 사이에 월스트리트에서는 무려 50%의 폭락이 일어난다.
3. 엘리어트는 66세에 처음 주식시장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는 과테말라 인터내셔널 레일웨이라는 회사의 회계감사직에 근무하다가 심한 아베마성 이질에 걸려 은퇴한다. 이때가 1927년, 그의 나이 58세였다. 그는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하여 투병생활을 하지만 병은 점점 심해져만 갔다. 1929년에는 병이 심한 빈혈로 악화되어 거동조차 못하고 누워 지내야만 했는데 이후 무려 5년 동안 죽음을 넘나드는 투병생활을 계속한다. 당시 1920년대 주식시장은 엄청난 호황을 구가하고 있어 엘리어트도 주식에 관심을 갖고 주식정보지를 탐독하게 된다. 이를 계기로 엘리어트가 주식시장의 동향에 눈을 돌리게 되었고, 1934년 5월경, 그가 병과 죽음의 사투를 벌인 지 두 달 후 ‘파동 이론’의 틀을 확립하게 된다. 그 시절을 후에 술회하기를 “내가 고안한 기계를 다루는 데 점점 숙련되어 가는 발명가 같은 느낌이었다”고 하였다.
4. 엘리어트는 살벌하고 촘촘한 월스트리트의 그물에서 잔뼈가 굵은 정통파 투자이론가가 아니었다. 환갑이 넘은 나이에 독학으로 시장을 익혔고, 그의 후견 역할을 하던 짐 콜린스 이외에는 증권가에 아는 사람이라고는 한 명도 없는 아웃사이더였고 이단아였다. 만일 그의 예측이 뛰어나지 못했고 월스트리트의 오랜 비밀이었던 그의 이론을 몰래 익혀서 성공을 거둔 사람이 많지 않았다면, 그의 이론은 이미 50년 전에 그와 함께 무덤에 묻혀 버렸을 것이다. 그의 이론은 월가의 오랜 역사 속에서 이론의 진정성만으로 끈질기게 살아남아 진가를 더해온 희귀한 사례인 것이다. 다시 말해 실전에서 돈을 벌어주는 이론인 것이다!
5. 엘리어트는 자신의 ‘파동 이론’에 아주 강한 확신과 애착을 갖고 있었다. 오랜 투병생활 끝에 경제적으로 곤궁해진 생활고를 극복하기 위해서 그는 자신의 이론이 정확하게 예측한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 장기적 시장 예측뿐만 아니라 장중의 시간별 변동까지도 적중시키기 위해 수많은 데이터를 분석하여 〈인베스트먼트 카운슬〉지의 짐 콜린스 사장에게 보냈다. 짐 콜린스는 그의 이론에 대해 회의적이었으나 실제 시장을 정확히 예측하는 데 놀라 열렬한 엘리어트의 지지자가 되었다. 엘리어트의 시장 예측의 정확성은 95% 이상이었다고 전해진다.
6. 엘리어트의 사후 ‘파동 이론’은 묻혀 있다가 1939년 해밀튼 볼튼에 의해 연구된다. 해밀튼 볼튼은 몬트리얼 볼튼 트렘블리 회사의 뛰어난 재정분석가였는데 그는 엘리어트의 파동 이론을 연구하여 1960년에 《엘리어트 파동 이론의 비판적 평가》라는 책을 출간한다. 그는 이 책에서 ‘파동 이론’에 근거하여 다우지수가 999선에 이를 것이라고 예언했는데 6년 후 이 예측은 소수점 이하까지 정확하게 적중하여 세상을 놀라게 했다. 1966년에는 볼튼의 요청에 의해 콜린스가 엘리어트의 ‘파동 이론’에 입각하여 다우지수가 525선까지 내려갈 것이라고 예측하는 글을 〈뱅크 크레딧 애널리스트〉지 부록에 기고하였는데, 이 글을 쓸 당시 다우지수는 1,000에 육박하고 있어 그의 예측은 상상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 예측도 그대로 실현되었다. 이후 볼튼의 비즈니스 동료 A. J. 프로스트는 볼튼의 사후 그가 주관하던 〈뱅크 크레딧 애널리스트〉지에 엘리어트 이론을 집필하는 책임을 맡게 되어 기고하게 된 글에서 다우가 572까지 하락할 것이라고 예측하여 적중한 바가 있다. 그때 실제 시간별 최저지수는 572.20이었다.
7. 이 책에는 엘리어트의 최초의 저작 〈파동원리〉와 파이낸셜 타임지에 12회에 걸쳐 연재되었던 기고문, 엘리어트가 죽기 1년 전에 집필한 〈자연의 법칙〉 그리고 1938년부터 1946년까지 엘리어트가 투자자들에게 유료로 해준 조언, 시장 예측 서신이 실려 있다. 사실상 주식시장과 관련한 그의 모든 저작물이 수록 번역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