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로-병-사로 표현되는 인간의 생애주기에서, 현대인에게는 ‘죽음’보다도 오히려 ‘로(老)’ 즉 노화가 가장 문제가 되는 것처럼 보인다. ‘맛있는 것을 먹고 즐기는 것’과 더불어 ‘노화 방지나 젊어 보이기’가 인생 최대의 목표인 것처럼 유행하고 있다.
오래 삶(長壽)이 단지 오늘날에 비로소 인간의 중요 관심사가 된 것은 아니다. 인간이 의식을 갖게 된 이후부터 언제나 죽음 문제와 함께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은 인간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지상과제였다. 진시황의 불로초 탐색이나 도가의 신선사상과 무릉도원 같은 설화 등은 인간의 이러한 욕망을 반영한 역사와 설화의 극히 일부분이다.
현대사회의 ‘노화, 나이 듦’에 관한 인식과 담론이 이전까지와 달라진 부분을 꼽자면, 노화를 일종의 질병 상태로 간주하는 인식이 팽배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인간 수명이 증가하면서 ‘고령화’라는 현상이 동반되고, 이에 따라 인생의 후반기가 질병과 함께 진행되며, 그 질병으로 말미암아 죽음에 이르는 경우가 일반적인 현상이 되기 때문이다. 의료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을 때는 질병조차 삶의 일부로서 필연적인 과정으로 보아 결국 감수(甘受)하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첨단의 의료 기술이 인간 수명의 한계를 점점 늘려가고 있는 추세 속에서, 노화 - 나이 듦 자체를 필연적인 과정이 아니라 방지하거나 회피할 수 있다는 의식이 점점 늘어가고 있는 것이다.
개인의, 그리고 사회적인 차원에서의 노화 - 나이 듦에 대한 인식 변화에 맞춰서, 의료적인 관점에서도 노화 방지나 회피를 위한 다양한 처방이 제시되었다. 의료계의 이러한 대처는 사회 전반이나 개인의 노화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키는 기폭제가 되었다. 그에 더하여 노화 - 나이 듦을 방지, 예방, 회피하는 것과 관련된 ‘시장’의 움직임도 현대 사회에서 노화를 기피하고 나아가 죄악시하는 분위기를 부추기고 있다.
『나이 듦과 함께하는 의료인문학』은 이러한 배경 하에 집필되었다. 작은 문고본에 나이 듦의 문제에 관한 모든 측면을 다 담아낼 수는 없지만, 이 문제에 관한 종합적인 통찰을 배경으로 할 때, 그 의미를 새롭게 조망할 수 있는 글을 모아서, 전체적인 인식 지평을 확장시키는 데 좋은 실마리를 제공한다.
최지희의 글은 동아시아에서의 ‘노인 건강과 장수 담론’을 통해, 나이 듦의 문제의 오랜 역사를 살펴볼 수 있게 하면서 그것이 근대사회로 이행하면서 어떻게 변화하였는지를 짚어준다. 이동규의 글은 노화 - 나이 듦과 깊이 관련되는 음식문화, 영양학 등을 살핀다. 김현수의 글은 노년기 이후, 즉 노화에서 죽음에 이르는 경로 중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와상(臥床) 질환 문제를 다룬다. 이는 노화, 수명 연장, 고령화와 삶의 질 문제를 근본적으로 성찰한다. 조민화의 글은 베이비 붐 세대가 노인 인구로 편입되는 시점에서 벌어지는 사회 현상을 고찰함으로써 노화 - 나이 듦이 어떻게 개인 차원을 넘어 사회적인 문제가 되는지를 살펴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