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만으로 이미 섬뜩함을 느끼게 하는 《시체의 거리》. 제목의 ‘시체’는 1945년 8월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의 피해를 입고 사망 혹은 사망에 이르는 사람들의 모습을 일컫는다. 이 소설은 고향 히로시마에서 원폭 피해를 입은 작가 오타 요코가 환난에 꺾이지 않고 작가 혼을 실어 한 자 한 자 눌러 쓴 역작이다. 원자폭탄 투하 직후인 1945년 8월부터 11월까지 3개월간 작가 자신이 겪은 일을 가감 없이 모두 담았다. 원폭문학연구회 사무국의 나카노 가즈노리(中野和典) 후쿠오카대학(福岡大学) 교수는 이 소설에 대해 "혼란 속에서도 병고를 억누르며 메모를 했던 작가 혼이 특별하여 감동했다. 특히 후반부에 죽음에 위협당하면서도 살아 있는 자의 심리를 잘 그려 내고 있다”라고 높이 평가했다.
피폭 이전에 이미 어느 정도 작가로서 이름을 알리고 있던 오타 요코는 전쟁 후, 원폭과 관련 없는 작품을 쓰려고 했으나 그럴 수 없었다고 한다. 도시와 인간이 모두 무너져 내린 처참한 광경이 구체적 환영이 되어 작가의 머릿속에 맴돌며 다른 작품에 대한 영감을 모두 쫓아 버린 것이다. 《시체의 거리》는 이처럼 작가가 뇌리에서 지우려야 지워 낼 수 없었던 당시의 처참한 상황을 매우 구체적으로 기록한 다큐멘터리성 소설이다. 이는 원폭 소설의 특징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원폭 피해 당사자가 현지의 참상을 직접 낱낱이 서술한 것이라 더욱 가치가 높다. 오타 요코는 원폭의 피해를 입고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면서도, 이미 죽은 시체들로 가득 찬 시가지, 강가에 떠 있는 시체, 그것을 보고도 갈증 때문에 강에 뛰어드는 사람들의 모습들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피해자였지만 동시에 작가였기에 자신이 보고, 듣고, 느낀 것을 끝끝내 글로 적어 내게 한 사명감이야말로 오타 요코를 다시 일으킨 힘이었다.
이 소설에서 작가는 자신이 직접 경험한 것 외에도 히로시마시 전체의 상황을 신문 기사를 인용해 소상히 밝히고 있다. 피폭 이후 사상자의 숫자 등을 밝히는 신문 기사를 그대로 소설에 가져왔으며, 피폭 한 달 후에도 계속해서 사망자가 생기거나 아무 상처도 없던 사람이 갑자기 죽어 나가는 현상 등이 원자폭탄병에 의한 것임도 신문 기사를 인용해 드러냈다. 이렇게 작가는 개인의 사적 경험을 넘어 히로시마시 전역의 피해 양상, 원자폭탄병에 관한 현상과 전문 지식까지 이 소설에서 모두 다루어 냈다.
지식을만드는지식에서 선보이는 이번 책은 특히, 소설의 사실성을 더할 자료로 소설에 언급된 신문 자료를 8점 수록한 것 외에도 히로시마의 원폭 피해 지역 지도, 작가가 머무르던 지역의 하쿠시마구켄초 지도, 원폭 피해자의 모습으로 묘사된 요쓰야 괴담의 오이와(お岩)를 그린 우키요에를 함께 실어 독자들의 몰입감을 한층 더 끌어 올렸다.
오타 요코는 소설의 말미에 “내가 여러 고통 속에서도 한 권의 책을 쓰는 의미”는 “일본을 참된 평화로 이끌기 위한 것”라고 말한다. 세계 곳곳에서 전쟁의 위기가 다시금 고조되고 있는 지금, 이 책이 평화의 의미를 일깨우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