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民衆에 주목한 평화·평등주의자, 묵자墨子
묵자는 전국시대 초기에 약육강식의 혼란기를 종식하고 민중의 삶을 구제하기 위해 겸애兼愛와 절용節用, 비공非攻 등의 사상을 주창하였다. 한비자韓非子는 묵가墨家를 유가儒家와 더불어 당대의 양대 학파로 평가하여 유묵儒墨이라 불렀으며, 장자莊子는 묵자가 진정으로 평화를 사랑하였다고 평가하였다. 이러한 묵자와 묵자 학파인 묵가의 사상을 모은 책이 ≪묵자墨子≫다.
예악禮樂을 중시했던 유가와 달리, 묵가는 재화를 절약하고(절용節用), 장례를 소박하게 치루고(절장節葬), 민생에 도움이 안 되는 음악을 삼갈 것(비악非樂)을 주장했다. 친소親疏의 정도에 따라 친애하는 바도 달리할 것을 주장한 유가와 달리, 묵가는 차별 없이 모두 사랑할 것(겸애兼愛)을 역설하였다. 차별 없이 모두를 사랑하기 때문에 다른 나라를 침략하지 말라고 주장하는 한편(비공非攻), 민생의 안녕을 보장하기 위해서 적의 침입에 대비한 군사력 강화는 필수적이라 하였다.
민생의 안정을 위해서는 국정 개혁이 필수였기 때문에, 묵자는 공정한 인재 선발 제도를 확립할 것(상현尙賢)과 하늘의 뜻(천지天志)인 ‘의義’에 입각하여 국론을 통일할 것(상동尙同)을 요구하였다. 이처럼 민중의 삶을 중시하였으며, 지배층의 사치와 침략전쟁을 비판하였다.
2000년간 잠자던 묵자를 다시 깨운 손이양孫詒讓의 ≪묵자간고墨子閒詁≫
오랫동안 잊혀졌서 많은 부분이 유실된 채 도교경전道敎經傳 속에서 근근히 전해지던 ≪묵자≫는 청淸나라에 이르러서야 다시 소환되었다. 서양의 과학 기술을 접한 청나라 학자들은 중국 고대의 논리학과 과학 기술 등의 내용을 담고 있는 ≪묵자≫에 주목하였다. 착간錯簡과 오탈자가 많았던 ≪묵자≫를 교감하고 주석하는 등 그 본의를 밝히기 위한 작업을 진행하였다. 그 작업을 집대성한 주석서가 바로 손이양孫詒讓의 ≪묵자간고墨子閒詁≫이다.
손이양은 유월兪樾, 황이주黃以周와 함께 ‘청말 삼선생淸末三先生’으로 일컬어졌으며, 장태염章太炎이 “300년을 통틀어 견줄 자가 없다.”라 평가할 정도로 명성을 떨쳤던 학자로 경학, 문자학, 목록학, 지리학 등 여러 분야에 능통하였다. 그는 ≪묵자≫의 여러 교감본과 주석서를 두루 검토하였으며, 문자학, 성운학, 지리학 전적을 비롯한 문·사·철의 다양한 전거들을 참고하여 당대까지 이루어진 묵자 연구를 집대성하는 ≪묵자간고≫를 완성하였다.
양계초梁啓超는 이 책을 통해 비로소 ≪묵자≫가 읽을 수 있는 책이 되었으며 현대의 묵학墨學이 부활한 것은 모두 이 책이 이끌어낸 성과라고 평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