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의 날개는 고치 속에서 만들어진다
지금 우리에게 철학 하는 시간이 필요한 이유
이타카로 가는 길을 나설 때면
그 길이 모험과 지식으로 가득한
오랜 여정이 되기를 기도하라.
_C. P. 카바피, 〈이타카〉
이타카섬의 왕이었던 영웅 오디세우스는 트로이전쟁 후 귀향하던 길에 기이한 일들을 겪으며 전쟁이 끝난 지 10년 만에 이타카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리스 시인 카바피는 〈이타카〉에서 당시 오디세우스의 모험담을 노래한다. 살면서 우리는 감당하기 힘든 일을 마주하거나 내 생각과는 전혀 다른 상황을 조우한다. 하지만 이 과정은 어떤 식으로든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며 때로는 이를 통해 깨달음을 얻곤 한다. 오늘날 우리는 즉각적인 쾌락과 보상을 좇는 것에 더 익숙하다.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도 짧은 유튜브 영상을 찾아보는 것으로 대체하거나 누군가가 요약해 둔 글이 없는지 먼저 찾는다.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할 때도 그렇다. 지금 당장 경제·심리적 불안함을 해결할 방법은 없는지, 빠르게 커리어 전문성을 높일 방법은 없는지 즉각적인 치료법이나 해결책을 알고 싶어 하는 식이다.
저자는 ‘당장 만족을 얻어야 한다며 사람들을 자극하는 오늘날의 시대정신’에 휩쓸리기보다는 저마다의 시간 속에서 사색하고 성찰하는 시간이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말한다. 소크라테스는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어떤 문제에 대해 안다고 자만하기보다 성찰하고 질문해야 한다고 했다. 10세기경의 이슬람 철학자 시나는 신(神)과 인간의 관계에 주목했고, 스피노자는 다른 사람의 행동을 그의 입장과 맥락에 따라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려 노력했다. 쇼펜하우어는 삶의 권태와 고통을 이야기했으며 귀족이었던 러셀은 무신론과 휴머니즘, 자유연애를 장려하는 글을 쓰고 직접 사회개혁을 촉구하는 시위에 참여했다.
사랑과 실연, 대화와 단절, 감정과 이성, 자유와 관습, 나와 타인…
인생은 결국 우리 모두를 철학자로 만든다
뉴턴과 별개로 미적분을 창시한 것으로 유명한 독일의 수학자 라이프니츠는 철학하는 법에 관한 격언을 남겼다. “실체라는 한 가지 개념을 파고들다 보니 눈앞에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다.” 이 말처럼 라이프니츠는 자신이 관심을 둔 한 가지를 깊게 사유했고, 철학자뿐 아니라 법학자, 물리학자, 신학자로도 불린다. 이 책에 소개된 현인 30인 모두 각기 다른 분야에서 각자의 방식대로 사유했다. 플라톤이 열 번째 뮤즈라 극찬했던 여성 시인 사포는 사랑의 감정을 처음으로 ‘달콤씁쓸’이란 말로 노래했고 플라톤은 누구보다 대화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근대 철학의 아버지 데카르트는 불변하는 진리를 찾고 싶어 했고 흄은 이성에, 밀은 평등과 자유에 몰두했다. 마르크스는 경제적 변화를 고찰했으며 비트겐슈타인은 일반성에 의문을 던졌다.
이들의 철학적 사유는 오랜 시간을 거쳐 우리 삶과 밀접한 사회의 여러 방면으로 퍼져나갔다. 오늘날 사포는 젠더플루이드 운동의 관심을 받고 있고, 플라톤은 이후 철학에서 파생한 수학과 과학, 경제학 등 서양 학문의 뼈대를 만드는 데 영향을 주었다. 흄의 사고는 환경 문제와 연관되곤 한다. 밀의 사상은 인권과 동물권 의식 향상에 크게 관여했고 마르크스의 고찰은 노동 환경과 임금 수준을 이야기할 때 자주 등장한다. 보부아르는 사회 관습과 체제에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비트겐슈타인의 생각은 타인과 소통하는 법으로 이어졌다.
철학적 사고를 거치면 본래 고민했던 문제에서 답을 얻는 것을 넘어 상관없어 보이는 다른 여러 문제를 관통한다는 걸 깨닫게 된다. 《지극히 사적인 철학》은 다양한 사유의 모습을 통해 ‘생각하는 일’의 의미를 새삼 일깨워준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무엇에 관해서든 철학적 사유를 시작하는 것만으로도 내 삶이 조금씩 나아진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