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부한 시각 자료, 흥미진진한 서술, 입체적인 관점
종횡무진 질주하는 ‘한국인을 위한 독일사’
난민, 전쟁, 불황, 그리고 역사.
현재 전 세계의 모든 이슈는 독일로 이어진다고 봐도 무방하다. 메르켈 총리 집권 시기부터 독일은 100만 명에 가까운 난민을 수용했다. 스스로 문제 해결에 앞장선 덕분에 국제사회에서 난민 문제에 관한 발언권이 강하고, 숱한 강대국들 앞에서도 당당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또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독일의 행보도 시종일관 주목을 받았다. 예로부터 ‘접촉을 통한 변화’를 추구한 독일 정부가 러시아산 수입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서독의 빌리 브란트 총리가 수립한 ‘동방정책’과 그것의 이념인 ‘접촉을 통한 변화’는 오늘날까지 이어진 독일의 주요한 외교 기조였다. 그러나 사민당 출신 올라프 숄츠 총리는 독일이 과거 저지른 전쟁범죄를 기억하며 러시아의 침략을 규탄한다는 이유로, 독일의 이익을 포기하면서까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단호하게 대처했다.
한편 1월 중순부터 거의 한 달간 독일 전역에서 ‘독일을 위한 대안(AfD, 독일대안당)’을 규탄하는 시위에 수십만 명이 참가했다. AfD는 2010년 그리스 구제금융 사건을 계기로 창당된 극우 정당으로 최근에는 반이슬람, 반이민 정책을 전면에 내세워 독일에서 세력을 불리고 있다. 세계적으로 극우 정당이 발흥하는 건 사실이지만 독일에서는 그 의미가 남다르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독일은 대내적으로는 나치 청산과 독일 재건을 내걸고, 대외적으로는 유럽통합과 이를 통한 국제무대의 복귀를 추진했다. 즉 독일인에게 과거사 반성이란 도덕적 정당성을 회복하는 과정이자 동시에 유럽연합에서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필수조건이었던 셈이다. 이처럼 독일의 역사란 세계의 역사와 긴밀하게 조응했고, 이러한 특징은 단순히 현대사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하룻밤에 읽는 독일사』는 게르만족 전사 ‘헤르만’부터 시작하여 오늘날 독일을 이끄는 총리 ‘올라프 숄츠’까지의 역사를 통해 독일 역사의 격동적인 변천사를 서술하고, 나아가 한국인들이 미처 알지 못했던 독일의 숨겨진 면모를 부각한다. 이에 따라 유럽사 속의 독일사, 독일사가 품은 유럽의 이야기를 그려내고자 한다. 이 책을 읽을 독자들이 주목해야 할 부분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유럽과 세계의 관점에서 독일사를 서술했다. 유럽은 각국이 지리적으로 인접하기에 서로의 역사에 많은 영향을 주고받는다. 그중에서도 독일은 유럽 대륙 한복판에 놓여 있다는 지정학적 특성으로 인해 유럽사 전체에 걸쳐 역사적 변천에 영향을 끼치기도 하였고, 본인이 외부의 영향을 받기도 했다.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이 독일을 넘어 기독교 세계 전체를 뒤흔들었고, 비스마르크의 독일 통일이 19세기 열강들의 세력 균형을 뒤흔들었으며, 나치의 제3제국이 또 한 번의 대전쟁을 불러일으켰듯이 말이다. 따라서 독일 역사는 그 자체로 유럽사의 그림자 혹은 거울이라 부를 수 있고, 저자는 본문 전체에 걸쳐서 독일과 외부의 상호작용을 특별히 강조한다.
둘째, 독일 역사를 입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도록 풀이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독일 역사는 다른 나라, 다른 민족, 다른 문명과 긴밀히 연결됐다. 또한 독일 지역 내부에서의 갈등이나 교류도 적잖은 편이다. 따라서 단일한 시각, 단편적인 이야기로는 독일사를 풍부하게 표현할 수 없다. 저자는 단순한 ‘이야기 나열하기’를 피하고자 여러 방법을 동원한다. 연표를 활용해 비슷한 시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비교할 수 있도록 하거나 관련된 학설이나 연구자들의 이론을 인용하며 같은 사건도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유도한다. 필요한 순간마다 극적인 문체를 사용해 독자가 머릿속으로 쉽게 상상할 수 있도록 이끄는 것도 이 책의 매력이라 할 수 있다.
셋째, 독자들에게 깊게 고민하고 생각할 주제를 끊임없이 제시한다. 저자는 이 책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접했던 학계의 성과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그리고 이를 본문에 인용하면서 독자들에게 논쟁의 쟁점이 무엇인지를 과감하게 드러낸다. 논쟁을 감추어 독자에게 매끄러운 지식만을 전달하려는 기존의 역사책들과는 달리 저자는 독자들이 책을 읽으며 각자의 생각과 판단을 갖추기를 원하듯이 계속해서 질문한다. 제1차 세계대전의 책임이 어느 쪽에 있는지, 베르사유 강화 조약의 문제가 무엇인지, 제2차 세계대전의 전후 처리가 어떻게 미흡했는지, 68운동의 성과와 한계가 무엇인지 등 저자는 독자들과 마치 소통하듯이 질문을 던진다. 따라서 이 책은 독일 역사를 배우고자 하는 독자는 물론이고, 독일사 혹은 유럽사를 다른 이에게 알려주고자 하는 독자에게도 유용하다고 할 수 있다.
독일 역사를 유심히 살피면, 독일 국민 혹은 민족이 공동체의 과제를 어떻게 해결했는지가 특히 인상적으로 보인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지역별, 방언별로 분리되었기에 각자의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과정공동의 문제를 해결했다. 때로는 그 과정에서 압도적인 무력이나 권위가 동원되기도 하였으나 최종에는 타협과 조율의 작업이 수반되었다. 그 과정에서 ‘독일’이라는 나라가 태어나도록 합의된 것이고, 이러한 합의 문화의 전통은 오늘날 독일 정치의 기본 문법으로까지 발전했다. 따라서 분단국에 거주하는 한국인에게 독일의 역사는 타협, 합의, 상호 인정의 가치를 일깨워 줄 것이다. 오랜 세월 독자성을 유지하는 지역별 풍토, 종교가 달라도 서로를 인정하는 관용, 강력한 힘으로 독일 통일을 관철시킨 비스마르크조차 경쟁자들과의 타협을 고려했을 만큼 오랜 세월 누적된 합의와 숙의 문화 등은 앞으로 더더욱 세분화되고 다양한 난제를 직면할 한국인에게 좋은 참고사례가 될 것이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