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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큰글자책)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큰글자책)

  • 김경일
  • |
  • 바다출판사
  • |
  • 2024-02-27 출간
  • |
  • 384페이지
  • |
  • 210 X 290mm
  • |
  • ISBN 979116689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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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한국인의 문화적 폐쇄성과 콤플렉스

지금 세계는 급격히 변하고 있다. 정보통신의 발달은 시간과 공간을 획기적으로 단축시켰으며, 세계금융자본과 다국적 기업의 지반을 활성화시켰다. 미래학자들의 지적대로 우리는 이제 새로운 유목민의 시대로 접어들었으며,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국경이나 국적은 무의미해지고 있다. 이처럼 도도한 세계화의 물결을 올바로 이해하고 따라가는 것만이 우리의 살길이요 미래를 담보하는 길이다. 개방이 없으면 개인도 사회도 국가도 죽어버리고 만다. 문화적 공존을 위한 자세 전환이 시급한 시점이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우루과이라운드가 체결되고 농산물 시장이 개방되면서 터져나온 구호 가운데 단연 히트를 친 것은 “우리 몸에는 우리 땅에서 난 것을 먹어야 혀.” 하는 신토불이(身土不二)였다. 수입 개방이 못내 찜찜했던 농부들과 언론은 이 기막힌 논리에 열렬히 환호했다. 그러나 냉정히 따지고 보면 순수하게 ‘우리 것’은 거의 없다. 과일이며 가축이며 그 종자는 거의 외국에서 들여온 것이다. 감정적 구호에 현혹되지 말고 우리의 모습을 차근히 되돌아보자.
‘우리 것’ ‘우리 것’ 하면 할수록 우리 모습은 작아진다. 그건 아무리 봐도 자신감이 없다는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우리끼리 하지 말고 남들과 경쟁해서 ‘너희 것 좋아’란 소리를 들어야 한다. 지구를 빙빙 돌며 벌어와도 시원치 않은데, 골방에 쭈그리고 앉아 못난 우리 것 지킬 생각만 하고 있음은 아무리 생각해도 못난 짓이다. 우리 사회의 ‘신토불이’에는 일종의 기피증과 문화적 폐쇄성이 숨어 있다.
우리가 세계에 자랑하는 것 중에 하나가 반만년을 이어온 ‘단일 민족’이란 것이다. 정말 단일 혈통인지도 의심스럽지만 설령 그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내세울 게 없어서 단일 민족의 혈통을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사람들이 왜 고아들은 수출하는 것일까? 그 아이들의 혈통은 어떻게 되든 내 혈통만 깨끗하면 된다는 생각 때문일까?
아직도 무슨 씨, 무슨 파의 자손들 외에는 모두 인간도 아니라는 못난 생각을 버리지 못하는 우리가 남의 나라, 남의 문화를 아무런 저항감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세계화 시대의 흐름에서 밀려나고 도태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범세계화의 담론이 평상적인 것이 된 지금, 민족주의는 쑥스러운 테마가 되어버렸다. 하물며 민족주의보다 하층의 정서라고 볼 수 있는 혈통주의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의 핏줄 문화는 우리를 더할 수 없이 부끄럽게 한다.
세계의 보편적 추세와 질서에 역행하여 애국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우물 안 개구리식, 눈 가리고 아옹식의 억지가 아직도 횡행하고 있다. 우리 것, 핏줄, 민족에 그다지도 집착하는 것은 지나친 피해 의식과 콤플렉스의 반영일 뿐이다. 서구인들의 오리엔탈리즘처럼 우리에게도 역사를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고 미화하려는 경향이 있으며, 이는 우리의 못난 역사를 허세로 커버해보려는 자격지심의 발로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문화적 콤플렉스의 배후에는 오랜 군사독재 정권의 권위주의 통치와 해방 후 6ㆍ25를 거치면서 고착된 반공이데올로기, 그리고 일제의 식민통치 등 우리의 아픈 근현대사의 질곡이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그 기원을 더 거슬러 올라가 보면 거기에는 조선의 사대주의가 있고, 유교가 있고, 주자, 공자가 있는 것이다.
이제는 문화적 공존을 위한 자세 전환을 할 때가 되었다. 아니 이미 지났는지도 모른다. 한국인으로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아이덴티티를 확보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인간다운 삶을 보장할 수 없을지도 모르는 ‘민족적 아이덴티티’는 그것에 집착하면 할수록 더욱 더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지 모른다. 오히려 열린 마음과 유연한 태도로 나의 문을 열고 타인의 문화와 공존할 수 있을 때, ‘우리 것’이 나름의 생존 공간을 얻게 될 것이다.



유교, 그 은폐와 왜곡의 역사

유교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우리는 그것이 사실을 어떻게 은폐하고 왜곡했으며, 그렇게 조작되고 꾸며진 허구의 가치를 진리로 알고 잘못 추구하도록 강요받았는지를 깨닫게 된다. 최근 발견된 「상서(尙書)」의 갑골문 기록을 통해서 알게 된 사실을 종합해보면 다음과 같다.
고대 은나라에 조갑이라는 인물이 있었는데, 형을 몰아내고 왕위를 찬탈하였다. 조갑은 그렇게 획득한 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한 방편으로 자신의 조상을 신성화하고 그에 따라 족보를 뜯어고친다. 은나라가 멸망하고 주나라가 들어선 뒤에도 제사를 집행했던 유(儒) 계급은 살아남아 위정자들의 지배를 영구화할 수 있도록 아이디어를 짜내게 된다. 그 유 계급의 후예 가운데 한 명이 바로 공자였다.
공자는 조갑의 쿠데타 사실을 왜곡한다. 현재 전하는 「상서(서경)」의 편자였던 공자는 조갑이 왕위를 찬탈한 것이 아니라 정당하게 물려받은 것이라고 엉뚱하게 서술한다. 고대 역사에 관한 유일한 기록은 불미스런 사실을 숨기고 과거를 이상화하려던 공자의 순진한(?) 의도에 따라 변질되고 만 것이다. 「상서」는 옛부터 과거시험 보는 이들에게는 교과서와 같은 책이다. 이미 왜곡된 문헌을 통해 국가와 행정을 이해하도록 강요받은 엘리트들이 현상을 올바로 볼 수 있는 눈과 마음을 가질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하다. 그들은 겉으로는 가장 도덕적인 가치로 벌벌 떠는 체하면서 실제로는 유교의 가장 중요한 텍스트를 통해 거짓과 왜곡과 더러운 타협을 학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땅속에 묻혀 있어 유교 근본주의자들의 왜곡과 조작의 손길을 다행히 피할 수 있었던 갑골문의 발견이 없었다면 영영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공자는 과거 속에 존재하는 허구의 가치를 제시했을 뿐 아니라 이를 적극적으로 추구하도록 제자들에게 강요했다. 본질적으로 존재하지도 않는 의미를 찾기 위해 공자의 제자들은 과거 속으로 빠져들어가야 했으며, 그 허구의 질서에 따라 모든 역사적 사실들을 왜곡하고 미화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리고는 그 과거의 그물에 자신들이 구속되고 말았다. 이제 ‘과거’는 시간 속의 과거가 아닌 삶의 의미를 결정짓는 가치적으로 대단히 ‘위험한 과거’가 되었다. 이런 점에서 공자는 동양사회의 스승은커녕 동양사회 전체를 거짓과 왜곡으로 끌어들인 장본인이었다.
이러한 공자의 사상은 동중서(董仲舒)에 의해서 국가의 통치이데올로기로 정착되었고, 다시 주희(朱熹)에 의해서 보편적 우주론, 신성불가침의 절대 진리가 되었다. 그러나 조선왕조 500년 역사를 통해 확인해 볼 수 있듯이, 도덕이며 우주론이며 하는 것은 모두 허황된 이야기이다. 그건 어차피 가면에 불과했다. 유학자들은 그것을 매개로 정적들을 제거하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었다. 어차피 황당한 논리였으니 결론이 날 리 없었다. 그것은 저 먼 옛날 은나라의 조갑이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위해 조상을 끌어들일 때부터 잉태된 씨앗이었다. 정적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이 비열한 싸움은 처음부터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유교를 버려야 하는 몇 가지 이유

유교문화는 뒤돌아보기 문화다
IMF가 터지기가 무섭게 사회 전반에 박정희 신드롬이 일었다. 우리 사회 전반에 드리운 과거 지향의 ‘옛날 만세’, 온고지신(溫故知新)의 강박관념이 다시 한 번 극명하게 드러난 순간이었다. 한국인은 유난히 역사에 매달린다. 물론 때로는 과거를 참고할 필요가 있겠지만, 한국인들은 모든 정답은 과거에 있다고 믿으며 새로운 현상이 나올 때마다 낡은 경전을 뒤적였다. 때문에 이 옛것에 맞지 않는 것들은 가치를 부정당했고, 새로운 것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경전을 펼쳐대는 자들에 의해 매장당해왔다.
새로운 것은 새로운 곳에 있다. 이제까지의 언어를 계속하는 한 새로운 미래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한국인의 뇌리에 각인된 온고지신의 ‘뒤돌아보기 문화’는 미래를 지향하는 젊은이들의 발목을 수시로 붙잡는다. 이 ‘뒤돌아보기 문화’로 인해 한국인은 오래도록 미래를 보는 눈을 갖지 못했다. 종갓집 맏며느리는 새해가 다가오면 그 해에 지내야 할 제사의 음력 날짜부터 헤아려 달력에 수십 개의 동그라미를 그려넣는다. 이미 새로운 1년은 과거로 가득 차버리고 내일은 어제의 장례식 기억을 되살리는 데 필요한 시간으로 전락하고 만다. 기껏 미래를 위한 행동이라고 해봐야 묘자리 미리 봐두는 차원에 머물고 있다. 늘 미래를 꿈꾸어도 아름다운 내일을 만들어내기란 쉽지 않은 법인데, 구성원 거의 모두가 늘 어제와 과거를 기억하며 살아가는 사회. 이러한 사회의 구성원들이 어지러울 만큼 빠르게 변하고 있는 미래 사회를 올바로 예측하고 적응해갈 수 있을까.

유교문화는 여성을 죽인다
유교문화의 최대 피해자는 바로 여성이다. 유교 경전 「상서」의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나 「논어」의 “여자와 소인배는 기르기 힘든 존재”라는 공자의 말은 동양사회 속에서의 여성의 위상을 결정짓는 잣대가 되었다. 오늘날 동성동본 혼인법이나 상속법 등이 힘겹게 국회를 통과하기는 했지만 남존여비의 문화적 유산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여성에 대한 이러한 착취와 억압은 결과적으로 남성의 피해로 이어졌다.
정신분석학에서 이야기하듯이, 모든 남성은 여성의 인격을 무의식 속에 간직하고 있다. 남성들은 그것에 부합하는 여성을 동경하고 찾아 헤매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아니마’라 불리는 감정이다. 유교문화는 여성들을 너무나도 손쉽게 소유할 수 있도록 만듦으로써 남성들의 아니마를 위축시키는 문화 구조라 할 수 있다. 유교사회의 남자들은 여성을 완벽하게 소유하기 위해 여성을 틀어쥐었지만 결국 얻은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여성을 완벽히 소유하기 위해 만든 유교의 많은 장치들은 결국 여성을 죽여버렸다. 유교 속의 여성은 더 이상 인간도 여성도 아니었다. 그것은 왜곡된 생명체에 불과했고 원한으로 뭉쳐진 카오스에 불과했다. 결국 여성들은 폭발해버렸고, 남자들을 떠났다. 원시 속의 순수한 여성을 잃어버린 동양의 남자들은 그래서 결국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남녀 차별 금지법안이 통과되었다고 해도 남녀 차별의 오랜 문화가 만들어낸 아니마의 억압은 아직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유교문화는 창의성을 말살한다
일본은 다른 분야는 몰라도 만화와 애니메이션 분야에서만큼은 세계 제일로 군림하고 있다. 그것을 가능케 한 것이 바로 자유분방한 상상력의 힘이었다. 대부분의 기성세대 한국인들이 일본 만화에 거부감을 갖는 것은 일본 만화가 갖는 폭력성과 선정성 때문이라기보다는 그들 자신의 유교적인 엄숙주의 가치관 때문이다. 즉 유교의 엄숙주의는 일본 만화가 지니는 허풍과 경박성을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허풍과 경박성은 뒤집어 말하면 놀라운 상상력과 위트이기도 하다. 상상력과 위트가 만화의 핵심이라면, 유교의 핵심은 현실과 엄숙함이다. 둘의 사이가 좋을 리 없다. 유교적 가치관은 언제나 만화를 폄하하고 모함한다.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괴이하고, 억지 쓰는 것, 상황을 어지럽게 만드는 것, 귀신에 관한 이야기들을 말하지 않는다.”
이는 뒤집어 말하면 정상적이고, 순하고, 단순하고, 인간적인 것만 말하라는 뜻이다. 이로 인해 조선시대부터 오늘날까지 600년 이상 억압된 우리의 상상력은 21세기가 다가오는 오늘날에도 터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흔히 앞으로의 세기를 창의성의 시대라고 말한다. 그러나 유교적 가치관이 낳은 상상력의 빈곤은 문화적 창의성에 대한 기대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그래서인지 오직 베끼기의 문화가 극성을 부릴 뿐이다.
한편 유교문화는 글을 숭상하면서 말에 대해서는 억제하는 태도를 가졌다. 이러한 경향은 오늘날에도 여전한데, 초등학교 1학년 때의 받아쓰기부터 대학 입시의 논술 시험, 입사 시험 등에 이르기까지 ‘쓰기’가 능력 테스트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이때의 ‘쓰기’란 창의적인 쓰기가 아니라 경전(교과서)의 테두리 안에서의 ‘베껴 쓰기’라는 점에서 더욱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논술고사 답안의 천편일률적 구성과 결론을 보라.) 이러한 ‘베껴 쓰기’ 문화는 공자의 ‘술이부작(述而不作 : 베낄 뿐 창작하지 않는다)’이라는 선언 때문에 비롯되었으며, 당송 때의 ‘문이재도(文以載道 : 글에는 도덕을 담아야 한다)’ 풍조 때문에 동양 유교사회의 병폐로 자리잡았다.
어쨌든 그러다보니 외국어 학습에서도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의사소통은 무시되고 글 다루기 위주로 교과서가 만들어진다. 또 선생님들은 그것을 가지고 역시 의사소통과는 관련이 없는 단어 스펠링이나 문법 등만을 가르친다. 그러니 학생들은 영어책을 한문책처럼 읽고, 그 깊은 뜻을 헤아리기에만 몰두한다. 영어가 ‘말’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시험에 통과하기 위한 공부만 하는 것이다. 그 결과 단어들의 깊은(?) 뜻은 알지만 쉬운 말 한 마디도 하지 못하는 쪼다들이 되고 만다.

유교문화는 사회를 붕괴시킨다
유교문화의 결정적인 폐해는 그것이 사회체제를 붕괴의 악순환 속에 빠뜨린다는 점이다. 유교문화의 내부에는 스스로를 붕괴시키는 모순이 내재되어 있다. 유교문화는 그 자신이 몸담고 있는 사회 자체를 부식시켜 마침내 붕괴에 이르게 하는 바이러스와도 같다. 그것은 트로이 목마처럼, 때로는 컴퓨터 바이러스처럼 프로그램 곳곳에 숨어 적당한 타이밍이 되면 작동하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마침내 자신이 몸담고 있는 프로그램 전체를 마비시켜버린다.
새로운 정치권력이 등장하면 그들은 한결같이 숭고한 도덕의 깃발을 흔들어댄다. 그 내용이 ‘잘살아보세’든 ‘정의사회구현’이든 ‘보통사람’이든 ‘역사바로세우기’든 혹은 ‘제2의 건국’이든, 그것은 중요치 않다. 그들은 그 깃발 아래 초법적인 힘을 행사하게 되고, 사회운용의 기본적 룰을 파괴하게 된다. 그들의 권력행사에서 전문가집단은 부수적인 위치로 내몰리며, 사회붕괴의 객관적 경보장치들은 하나하나 무력화되어버린다. 이러한 현상은 사회 각 계층의 전문시스템의 부식으로 확산되고, 결국 결정적인 외부의 충격 또는 내부적 혼란이 일어나면 곧바로 붕괴해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러면 끝나는 것일까? 천만에. 이내 사태의 수습을 위한 새로운 도덕의 깃발이 내걸리는 것이다. 그들의 구호는 한결같다. “한국인은 위대한 민족, 다시 한 번 더!” 물론 그것은 또다른 붕괴 사이클의 출발에 불과하다.
우리가 유교문화를 과감히 도려내지 않는 한, 이 붕괴의 악순환을 피할 수 없다. 한일합방과 6ㆍ25, IMF와 같은 사건은 언제든 다시 일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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