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 인류문화의 시원이며 생활터전을 제공하는 생명수다. 식수로 사용할 수 있는 강물이 우리 대한민국에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 우리나라 지형이 대륙을 향해 포효하는 호랑이 형상이라면 강은 뜨거운 피를 몸속 구석구석까지 흐르게 하는 대동맥이고, 발원지는 그 피를 공급하는 뜨거운 심장이다. 저자 정유순은 언젠가 아프리카 여행에서 물 부족으로 고생하는 원주민들을 보면서 ‘물이 보석 보다 더 귀하다’는 사실을 목격하고 우리나라 6대강을 발원지부터 하구까지 두 발로 답사하며 선조들이 켜켜이 쌓아 온 생명의 소리를 들었고, 그 흔적들을 찾아다니면서 때로는 영광의 역사도, 때로는 통한의 역사도 함께했다. 그리고 저자는 긴 여정을 통해 세상을 걷는다는 것은 자신을 여물게 하는 양식(糧食)이었고, 세상을 일깨워 주는 양서(良書)라고 하였다.
1부 〈한강의 시원을 따라〉는 태백산 금대봉에 있는 검룡소(儉龍沼)에서 솟아오른 물줄기는 골지천으로 흘러 아우라지에서 오대산에서 발원한 송천을 만나 조양강으로 모양을 바꾸고, 정선에서 영월까지 동강으로 흐르다가 서강을 만나 남한강이 된다. 단종이 왕위를 찬탈당하고 유배를 가던 그 길을 거꾸로 더듬어 내려오면 충주댐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다음 여주에서 섬강과 만나 여강(驪江)이 되었다가 양수리에서 북한강과 만나 한강이 되고, 파주에서 임진강을 받아들여 서해로 들어간다.
2부 〈낙동강 천삼백 리 길을 따라〉는 황지에서 발원한 황지천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자연적으로 산에 구멍을 뚫어 구문소(求門沼)를 만들었다. 철암천을 만나 봉화군으로 넘어오면 석포 제련소에서 나오는 물질로 심한 몸살을 앓는다. 봉화를 거쳐 앙동시에서 내성천과 반변천을 받아들이고 하회마을을 휘돌아 상주시 칠백리공원에서 낙동강의 원 모습이 들어난다. 구미를 거쳐 대구 달성을 지날 때는 회룡고미(回龍顧尾) 명당을 만나고, 남강을 만난 물길은 을숙도에서 낙동강 하구둑에 막힌다.
3부 〈금강 천 리 길을 따라〉는 조선을 개국한 이성계의 이야기가 있는 뜬봉샘에서 출발하여 진안과 무주를 지나 충남 금산으로 휘감아 서북으로 꺾이어 흐르던 금강은 개경을 향해 활을 쏘는 형국이라 왕건의 훈요십조에 금기의 땅으로 명시되어 멸시를 받기도 했다. 충북 영동과 옥천에서 대지를 적시며 대청호에서 휴식을 취한 후 다시 대전에서 갑천을, 세종시에서 미호천을 받아들여 공주와 부여, 논산과 전북 익산의 언저리를 지나 군산의 금강 하구까지 장장 401km를 달려간다.
4부 〈섬진강 오백삼십 리를 걷다〉는 섬진강의 발원지인 전북 진안의 데미샘에서 출발하여 임실의 옥정호에서 숨을 고른 후 전북 순창과 남원을 거쳐 전남 곡성 압록에서는 주암호에 들렸다가 나온 보성강이 기다린다. 매화(梅花)가 만발한 광양과 하동에서 벚굴로 입맛을 돋우고, 망덕포구까지 530리(212.3Km)를 걸어 봤다. 두꺼비가 울어 쳐들어온 적군을 물리쳐서 이름이 섬진강(蟾津江) 따라 답사하면서 주변 마을의 역사와 문화를 이야기한다. 지리산 정기는 지금도 생생하다.
5부 〈영산강 150km를 걷다〉는 전남 담양의 용소에서 출발한 물줄기는 바로 아래 담양호에서 몸집을 키워 무등산의 정기를 받은 용산천과 광주천을 가슴에 안고 숨 가쁘게 내려가다가 장성의 백암산에서 흘러오는 황룡강과 자웅을 겨룬 후 나주 땅으로 젖어든다. 나주에는 태조 왕건이 장화왕후 오씨를 만났던 우물이 있고, 삼봉 정도전이 귀양을 와서 민본사상을 깨우친 곳이 있다. 아랑사와 아비사의 이루지 못한 슬픈 사랑 이야기가 깃든 앙암(仰岩) 아래 깊은 물은 조용하기만 하다.
6부 〈한탄강과 임진강〉은 철책에 가로막혀 갈 수 없는 발원지를 생각하고 북녘 땅을 바라보며 최북단에서부터 걷기를 시작했다. 개혁군주 궁예가 기득권층들의 저항을 뿌리치고 도읍을 옮겨 태봉국을 세운 곳이 철원이다. 나중에 왕건에게 쫓길 때 백성들과 함께 울었다는 명성산(鳴聲山)이 잃어버린 미륵정토를 일깨워 준다. 임진강변 화석정은 율곡(栗谷)의 숨결이 남아 있고, 황희는 반구정에서 기러기와 벗 삼았다. 헌법상의 우리 영토인 북녘 땅은 그저 답답하기만 하고 까마득하기만 하다.
저자는 시간이 나는 대로 강과 산, 바다와 섬을 답사하면서 숨겨진 자연의 비경뿐만 아니라 우리 역사의 흔적과 인물을 들여다보고, 환경부 한강감시대장과 전주지방환경청장과 환경시설관리공사를 역임한 전력답게 환경 파괴의 현장을 지적하며 인간과 환경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임을 역설하고 있다. 저자는 오늘도 “行路萬里 讀書萬卷(만리를 걷는다는 것은 만 권의 책을 읽는 것과 같다)”의 마음으로 세상 밖으로 발걸음을 옮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