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과 성장을 둘러싼 흥미진진하고도 기상천외한
32가지 생물학 이야기
▣ 황제펭귄과 패러독스 개구리는 왜 어른보다 새끼의 몸집이 클까?
하나, 황제펭귄은 다 자란 새끼가 어른 펭귄보다 몸집이 크다. 어째서일까? 이는 황제펭귄이 서식하는 환경 때문이다. 즉, 남극과 같은 특수한 지역에서 사는 생물은 혹독한 겨울을 견뎌내야 하는데, 펭귄도 마찬가지다. 특히 새끼 펭귄은 굶주림을 견디기 위해 몸에 지방을 많이 축적해야 한다. 물론 어른 펭귄도 굶주림을 견디기 위해 지방을 충분히 축적해야 하지만, 성장 과정에 있는 새끼는 훨씬 많은 양의 영양분과 지방이 필요하다. 어른 펭귄보다 새끼 펭귄의 몸집이 더 큰 것은 그래서다.
또 하나, 패러독스 개구리의 올챙이는 약 25센티미터로 매우 크다. 그렇다면 어른이 된 패러독스 개구리는? 놀랍게도, 겨우 6센티미터 정도로 올챙이보다 훨씬 작다. 성체가 되면 몸집이 4분의 1 정도로 줄어드는 셈이다. 녀석의 이름이 ‘패러독스 개구리’인 것도 바로 이런 독특한 특성 때문이다. 대다수 생물과 달리 새끼 시절 몸집이 컸다가 성체가 되면 오히려 몸집이 작아지니 그럴 만도 하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날까? 정확한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과학자들은 패러독스 개구리가 염분 농도가 높은 바다 근처에서 서식하는 점에 주목해 올챙이 시절 염도가 높은 물에 대항하기 위해 몸집이 커지는 것으로 추정한다.
이렇듯 인간 사회와 마찬가지로 생물계 역시 아이와 어른의 차이는 단지 몸집 크기만은 아닌 모양이다. 아무리 몸집이 커도 성숙하지 않은 새끼 펭귄과 패러독스 개구리는 어른이 될 수 없다.
▣ 쇠무릎이 천적 애벌레의 ‘성장’을 돕는 영리하고도 섬뜩한 속내는?
애벌레는 식물 잎을 갉아 먹고 산다. 식물도 가만히 당하고 있지만은 않는다. 애벌레에게 자기 잎을 먹히지 않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하는 거다. 그중 하나로, 어떤 식물은 잎에 독 성분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특단의 대책도 소용없을 때가 더러 있다. 해독 작용을 발달시켜 무력화하는 만만치 않은 애벌레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녀석들은 식물이 독성 물질을 발산해 자신을 지키려 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잎을 갉아 먹는다.
애벌레에게 먹히지 않기 위해, 혹은 피해를 줄이기 위해 깜짝 놀랄 만큼 기발한 방법을 동원하는 식물도 있다. 바로 ‘쇠무릎’이다. 이 식물은 어떤 방법을 사용해 위기를 모면할까?
쇠무릎은 자기 잎에 애벌레의 성장을 촉진하는 성분을 지니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그런 까닭에 애벌레가 쇠무릎 잎을 먹으면 탈피를 반복한다. 한데 탈피 과정에 있는 애벌레는 먹이를 먹지 않기 때문에 쇠무릎잎을 많이 축내지 않고 어른벌레가 되어 날아간다.
칼과 창에 맞서기 위해 방패가 발명되듯 독을 지닌 식물을 만난 애벌레는 필사적으로 대항책을 마련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겠지만, 쇠무릎잎을 먹은 애벌레도 그저 조금 빨리 어른이 되는 것이기에 대응책을 강구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이렇듯 흥미롭게도 쇠무릎은 천적 애벌레의 성장은 적극적으로 돕는 방식으로 몰아낸다.
그렇다면 애벌레의 입장에서 빨리 성충이 되는 개체는 이득일까 손해일까? 명백히 손해다. 왜냐하면 애벌레 시절 잔뜩 먹고 부지런히 영양을 보충해야 제대로 된 어른벌레가 될 수 있는데, 잎을 충분히 먹지 못하고 어설프게 어른이 되면 몸집도 상대적으로 작고 튼튼하지 않아 알을 낚지 못하기 때문이다.
“빨리 어른이 되렴.”
애벌레의 성장을 돕는 쇠무릎의 작전이 매우 영리하면서도 섬뜩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은 바로 그래서다.
▣ 집게벌레는 왜 새끼들이 자기 몸을 뜯어먹는 동안 천적으로부터 새끼들을 보호하기 위해 싸우며 죽어갈까?
많은 생물, 그중에서도 특히 대다수 곤충은 자신이 낳은 새끼를 돌보지 않는다. 예를 들어 나비, 잠자리 등의 곤충은 어미가 알을 낳고 난 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 자기 삶을 산다. 알에서 깨어난 애벌레는 스스로 거친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
그러나 모든 일에 예외가 있듯 곤충 세계도 마찬가지다.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곤충 집게벌레가 그런 경우다. 집게벌레는 자기 새끼를 헌신적으로 돌본다. 녀석은 이름에 걸맞게 꼬리 끝에 커다란 집게를 가지고 있는데, 이 집게를 무기 삼아 적으로부터 몸을 지킨다.
여기서 드는 의문 한 가지. 여기서 드는 의문 한 가지. ‘왜 집게벌레는 대다수 곤충과 달리 알을 낳은 뒤 떠나지 않고 성심성의껏 새끼를 돌볼까? 이는 녀석이 스스로를 돌보고 새끼를 지킬 힘이 있기 때문이다. 위에 언급한 대로, 녀석에게는 강력한 집게가 있기에 그 집게를 무기로 자신을 돌보고 새끼들을 보호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전갈도 마찬가지다. 전갈 역시 새끼를 돌보는 곤충으로 알려져 있는데, 무서운 독성을 지닌 독침이 있기에 그것을 무기 삼아 자신을 지키고 새끼들을 보호할 수 있다.
다시 집게벌레로 돌아가자. 성충이 된 집게벌레는 돌 아래에 알을 낳은 뒤 부화할 때까지 정성껏 품고 지킨다. 이때 만일 누군가가 그 돌멩이를 들춰보면 어미 집게벌레는 어떻게 반응할까? 녀석은 마치 전장에 나간 장수처럼 집게를 치켜들고 필사적으로 적을 쫓아내려 안간힘을 쓸 것이다.
어미 집게벌레는 알이 부화할 때까지 짧게는 한 달에서 두 달이 넘도록 아무것도 먹지 않고 알을 지키는 일에만 전념한다. 어미의 이런 헌신적인 노력 덕분에 마침내 알에서 작은 애벌레가 꿈틀꿈틀 깨어난다. 그러나 아직 어미의 일이 끝난 것은 아니다. 집게벌레는 육식 곤충이므로 작은 곤충 등을 먹이로 삼는데, 갓 부화한 애벌레는 제 힘으로 사냥감을 잡을 수가 없다. 어미 집게벌레가 새끼들에게 자기 몸을 먹이로 내주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갓 태어난 새끼들은 어미 집게벌레의 몸을 게걸스럽게 갉아먹기 시작한다. 이때 어미는 새끼들에게 먹히면서도 혼신의 힘을 다해 집게를 휘두르며 적을 내쫓는 일에 몰두한다. 이처럼 어미 집게벌레는 새끼를 돌보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고, 마지막에는 목숨까지 내주는 눈물겨운 모정을 발휘한다.
▣ 수컷 하마는 왜 피 흘려 싸우는 대신 입 크기로 경쟁하는 독특한 시스템을 발달시켰나?
대다수 생물은 ‘본능’을 고도로 발달시켜 그 본능의 힘으로 생존한다. 그에 반해 포유류는 ‘지능’을 발달시켜 생존할 뿐 아니라 육아에도 지능의 힘을 활용한다. 이 책의 저자에 따르면, “‘본능’이 자연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최소한의 프로그램이라면 ‘지능’은 환경에 적응해 그 프로그램을 변화시키는 어댑터이거나 새로운 형태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도구”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포유류 세계에는 본능의 힘에 의지해서만 생존하는 생물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고도로 발달한 정교한 프로그램이 존재하는데, 이것을 ‘규칙’이라고 한다. 그런 정교한 프로그램, 즉 규칙의 대표적인 예로 저자는 ‘수컷 하마가 입을 최대한 크게 벌려 서로 입 크기를 견주는 행위’를 든다.
수컷 하마들은 왜 이런 독특한 행위를 할까? 이는 수컷들 간에 펼쳐지는 힘겨루기의 일환이라고 한다. 즉, 서로 입을 최대한 크게 벌려 조금이라도 입이 큰 하마가 승자가 되는 식이다. 그렇다면 수컷 하마들은 왜 사자나 호랑이 등의 다른 힘센 포유류 동물들처럼 직접 부딪쳐 싸우거나 하는 방식으로 승부를 가리지 않고 ‘입 크기’로 경쟁하는 독특한 시스템을 발달시켰을까? 이는 하마들이 지능을 발달시킨 결과이며, 자신의 무리를 보존하고 소중한 영역을 다른 경쟁자들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한 목적에서다. 그도 그럴 것이 만일 실제로 몸무게가 수 톤이나 나가는 하마들이 누가 더 강한지 가리기 위해 사생결단으로 싸울 경우 그 과정에서 다친 수컷이 많아져 무리 전체의 세력이 약해지고 위험에 빠지기 십상이다. 그렇게 되면 자칫 다른 하마 무리에게 영역을 빼앗길 수도 있다.
저자에 따르면, 수컷 하마들의 입 크기가 힘의 세기를 증명하는 명백한 기준인지는 알 수 없으나 동족 간의 불필요한 싸움을 되도록 피해 다 같이 살아남고자 나름대로 정교한 이런 규칙을 발달시킨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 우두머리 수컷 고릴라는 왜 육아휴직을 내고 새끼들을 돌볼까?
고릴라는 다른 대다수 포유류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어미가 어린 새끼를 돌본다. 갓 태어난 새끼 고릴라는 몸무게가 200그램 정도로 매우 작은데, 세 살쯤 될 때까지 사람처럼 어미 품에 안겨 젖을 먹으며 어리광을 부린다. 그러다가 새끼가 젖을 뗄 무렵이 되면 수컷 고릴라가 본격적으로 육아를 전담한다. 어미는 수컷 고릴라 곁에 자기 새끼를 놓아두고 볼일을 보러 다닌다.
한데, 고릴라 무리에는 여러 마리의 암컷이 같이 살고 있으므로 다른 암컷 고릴라도 제 새끼를 우두머리 수컷에게 맡긴다. 그런 까닭에 수컷 고릴라의 주위에는 새끼 고릴라들이 바글바글 모여 있다. 마치 인간 사회의 ‘유치원’ 같은 풍경이라고나 할까?
수컷 고릴라는 새끼들을 일일이 뒤치다꺼리하지 않고 노는 모습을 조용히 지켜본다. 그러다가 새끼들끼리 티격태격 싸움을 벌이기라도 하면 심판처럼 끼어들어 중재에 나선다. 이때 수컷 고릴라의 중재는 매우 합리적이고 평등하다. 상대적으로 나이가 어린 새끼와 공격받은 쪽의 새끼를 보호하는 식이다. 이 과정에 새끼 고릴라들은 고릴라 무리의 고유한 규칙과 사회성을 배워 나간다.
이것이 바로 고릴라 무리, 즉 고릴라 사회가 ‘본격적인 육아를 암컷이 아닌 수컷이 전담하는 시스템을 발달시킨 이유다. 즉, 어미는 제각각 달라서 어미 고릴라는 아무래도 팔이 안으로 굽어 자기 새끼 편을 들 수밖에 없는 반면 아비 고릴라 입장에서는 모두 자기 새끼이므로 편애하거나 차별대우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 밖에도 이 책에는 모든 생물 종을 통틀어 유일하게 ‘자녀가 부모를 돌보는’ 생물인 인간 이야기, ‘급한 성격의 씨앗’과 ‘느긋한 성격의 씨앗’을 동시에 키워 영리하게 살아남는 식물 도꼬마리 이야기, 새끼를 살뜰히 돌보다가 갑자기 돌변해서 무섭게 구는 어미 여우 이야기, 포유동물 새끼가 귀여울 수밖에 없는 생물학적 원인, 개복치 부부가 한꺼번에 3억 개의 알을 낳아 그중 두 마리 정도만 성체로 키우는 이유, 시력이 뛰어나고 완벽한 본능을 가진 잠자리가 푸른색 천막 위에 알을 낳는 까닭 등 읽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드는 흥미롭고도 기상천외한 생물학 이야기로 빼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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