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비마다 결코 쓰러지지 않는 오뚝이처럼 살아남은
풍도의 생존 비결과 철학을 담은 비밀스러운 고전
《소인경(小人經)》은 《영고감(榮枯鑒)》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영(榮)’은 흐드러지게 꽃이 피어 불타오르는 듯한 형상을 그린 글자이고, ‘고(枯)’는 나무가 메말라 시들고 약해지며 결국은 죽어가는 것을 뜻하는 글자이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이 책은 생기 넘치게 융성하여 잘 살 수 있는 방법과 생기를 잃고 점점 메말라 죽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함께 밝힌 글이라 할 수 있다. 《소인경》의 원저자인 풍도(馮道, 882~954)는 중국 역사에서 난세 중의 난세라고 꼽히는 오대십국(五代十國) 시대에 무려 20여 년간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의 자리에 있으면서 열 명의 군주를 모신 관인이다. 세상 사람들은 왕조가 거듭 바뀌어도 관직을 잃지 않고 심지어 줄곧 재상의 자리를 유지했던 풍도를 두고 ‘부도옹(不倒翁)’, 즉 ‘쓰러지지 않는 영감’이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풍도가 오대의 여러 왕조에서 재상의 자리를 지켰던 것은 가문의 배경이나 재물이 있어서가 아니다. 기록에 따르면 풍도는 업무를 처리하는 능력이 남달랐고, 군주의 결정이 옳지 않을 때는 직언을 서슴지 않았으며, 간언을 할 때 상대의 성정을 헤아려 듣기 좋게 에둘러 말할 줄 아는 지혜도 지니고 있었다. 이러한 풍도의 성공 처세와 지혜를 집약해놓은 책이 바로 《소인경》이다. 무인의 시대에 문신으로서 최고의 지위에 올랐고, 또한 그 자리를 누구보다 오랫동안 지켜낸 사람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 책의 가치가 얼마나 높은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소인경》이라는 책은 생명의 위협이 끊이지 않는 극악한 삶의 조건에서, 세상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능력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잘 살아남을 수 있는지를 말하고 있다. 특히 동양철학에서 중요시하는 ‘군자’와 대비해 ‘소인’의 특징과 강점, 소인으로서 살아남아 영달하는 법을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의 의미는 남다르다고 할 수 있다.
난세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소인(小人)의 지혜가 필요하다
《소인경》은 명분이나 명예, 즉 ‘선’이나 ‘악’, ‘군자’ 또는 ‘소인’이라는 이름이 아니라, 그 이름에 담긴 실질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풍도가 말하는 소인의 기본 자세는 이익과 현실을 냉철히 따질 줄 아는 현실적인 모습이다. 출세하고 싶다면 무조건 실력을 갖추어야 하며, 업무에 직접 연관이 없는 인간적 배려는 오히려 자제하는 것이 좋다.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명분이나 자존심을 내세우는 대신, 언제라도 고개를 숙이고 부탁할 수 있는 능력, 이해관계에 따라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해야 한다. 군자처럼 절개를 지키는 것도 현실적인 조건을 고려해야 하며, 현실에서 살아남아야만 공공의 정의도 실현할 수 있다. 세상은 믿을 수 없으니 모든 것은 자기 스스로 헤쳐나가야 한다. 풍도는 또한 사람을 승복시켜 마음을 사로잡는 법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대세에 따르고, 자기 속을 너무 드러내지 않으며, 적을 만들지 않는 것이야말로 난세를 살아가는 처세의 근본이다. 진짜와 가짜를 가리기 위해 늘 의심하고, 때로는 귀한 사람과 인연을 맺는 것도 필요하다.
국내에서 그동안 풍도를 소개하는 단편적인 글은 있었지만 이와 같은 《소인경》 전체의 내용을 번역해 현대적으로 풀이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인문연구모임 문이원은 장장 6년의 시간을 들여 《소인경》의 텍스트를 연구하고, 책의 내용을 보다 입체적으로 전달해보고자 기본적인 우리말 번역과 독음을 붙인 원문, 그리고 이를 현대적으로 풀이한 글쓰기 외에 《소인경》 전체에 대한 해제를 추가하였다. 해제에는 오대십국 시대의 역사서에 서술된 풍도와 《소인경》에 대한 중국 학계의 주요한 평가도 함께 소개하였다. 모쪼록 허울이 아닌 실질을 중시하라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조언으로 가득한 이 책을 통해, 군자라는 두텁고 견고한 벽이 허물어지고 소인이라는 참신하고도 기댈 만한 벽을 쌓는 획기적인 전환점을 만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