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만지한국문학의 〈지역 고전학 총서〉는 서울 지역의 주요 문인에 가려 소외되었던 빛나는 지역 학자의 고전을 발굴 번역합니다. ‘중심’과 ‘주변’이라는 권력에서 벗어나 모든 지역의 문화 자산이 동등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합니다. 지역 학문 발전에 이바지한 지역 지식인들의 치열한 삶과 그 성과를 통해 새로운 지식 지도를 만들어 나갑니다.
함양에서 용만까지, 12개월의 기록
《용만분문록》은 서계 양홍주와 그의 장자 진우재 양황이 전죽(箭竹) 4만 개와 장편전(長片箭) 300부를 만들어 경남 함양으로부터 용만, 즉 지금의 의주까지 몽진한 선조를 찾아가 진상하고, 그 전죽과 장편전으로 평양성 전투의 승리를 견인한 뒤 다시 한양으로 환궁하는 왕을 호종한 기록이다. 함양에서 출발하는 1592년 10월 1일부터 시작해 경유지와 도착지를 기록하고, 그사이에 있었던 일과를 적거나 창작한 시를 수록하는 것으로 내용의 대략을 완성하고 있는데, 출발하는 10월부터 11월까지는 일자별로 기록되어 있으나 이후는 상당 부분이 결락되어 온전한 형태가 아니다. 원래는 1593년 10월 환궁할 때까지의 기록이었으나 병자호란에 훼손되어 1592년 12월과 1593년의 1월은 대부분 결락되었고, 그 이후는 일자를 알 수 없어서 ‘모일(某日)’이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간간이 결락된 부분이 이어지다 3월 1일 이후는 완전히 일실되어 전하지 않고 있다.
한시로 전하는 서정
《용만분문록》의 기록 중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시다. 양황은 막 출발한 며칠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일정에 시를 지어 수록했는데, 현재 남아 있는 5개월간의 기록에 수록된 작품만도 5언 율시 16수, 7언 율시 12수, 7언 절구 3수, 고풍 1편으로 모두 32수다. 이는 양황의 시만을 헤아린 것으로, 함께 수록한 다른 이들의 시까지 포함하면 훨씬 더 많은 작품이 실려 있다. 이 시들에는 우국충정의 심정을 비롯해, 전쟁 중에 두고 온 고향과 가족에 대한 향수, 그 와중에도 간과할 수 없었던 아름다운 고국 산하에 대한 찬탄 등, 18세의 젊은 선비가 전쟁 중에 느낀 기쁨과 슬픔, 분노와 탄식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