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상찬과 『해동염사』
청오 차상찬은 일제강점기의 언론인이자 문필가로 문화운동의 선구자였으며, 지면으로 민중을 계몽하고 애국심을 고취한 인물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월간 종합지 『개벽(開闢)』을 창간하였고, 그 밖에 『별건곤』, 『신여성』, 『학생』, 『어린이』 등 여러 잡지의 발행을 주도하며 주간 또는 기자로 활약하였다. 최근 그의 이름과 업적이 재조명되고 있으며, 2010년에는 ‘제45회 잡지의 날’을 맞아 은관문화훈장이 추서되기도 하였다.
차상찬은 우리나라 반만년 역사 동안 정치가, 문장가, 음악가, 효녀, 충녀, 의녀 등 여성으로서 이름난 인물이 적지 않았음에도 이렇다 할 만한 여성 중심의 역사서가 없음에 유감을 표하였다. 그리하여 정사, 야사, 문집, 설화 등에서 여성에 관한 기록을 가려 뽑아 1937년 『해동염사』로 엮어 냈다.
차상찬의 『해동염사』는 우리나라 역사 속 다양한 여성들의 삶을 보여 주며 문학적으로도 가치가 있는 저작이나 지금껏 접하기가 어려웠다. 더구나 20세기 초중반의 문예적 특성을 반영하여 국한문이 혼용된 고풍스러운 만연체로 쓰인 데다 책 전체에 한시, 한문 산문, 시가 작품들이 삽입되어 있어 일반 독자가 이해하기에 쉽지 않았다. 이에 국어 교육 현장에 몸담고 있는 역자들이 저술의 내용과 특성을 손상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어휘를 풀어 쓰고 문장을 가다듬어 남녀노소 누구나 읽기 편한 독서물로 완성해 냈다. 이 책은 소장 가치가 충분하며 여러 방면에서 활용할 수 있는 귀한 자료가 될 것이다.
■ 그 옛날 남달랐던 여성들
이 책에는 총 여섯 가지의 카테고리 아래, 남다름으로 기록된 80여 명의 여성들이 등장한다. 궁중의 여왕과 비빈부터 양반의 부인과 첩, 기녀, 민간 여성에 이르기까지 상하 전 계층의 여성들 이야기를 두루 다루고 있다. 그들 중에는 남성과 사회가 요구하는 바를 충실하게 수행한 여성도 있었고, 그 이상으로 자신의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고, 역경과 고난 속에서도 기어이 목적을 이룬 여성들도 있었다. 재치 있는 시문으로 남성을 꾸짖은 명기, 가문을 일으켜 세운 눈먼 과부, 반정에 큰 공을 세운 단발 여승, 남편을 잡아간 호랑이를 때려 죽인 여인까지 저마다의 다양한 사연이 읽는 재미를 더한다.
지금의 시선에서 바라보면 이해가 되지 않는 선택을 한 여성들도 있겠으나, 당시 여성에게는 많은 제약과 한계가 뒤따랐고, 여성에게는 특히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었던 불평등한 구조 속에서도 자신의 의지대로, 저마다의 방식으로 제 삶을 살고자 했던 여인들을 만날 수 있다. 남성 중심의 역사 속에 묻혀 있던 여성 인물들을 새롭게 발견하고 그들을 기억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