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경주가 고대의 중심이 되었는가’에 대하여 자연환경의 관점에서 대답
경주 지역 고고학 및 고대사 연구에 있어서 가장 설명하기 어려운 주제는 선사 및 고대 인간활동의 중심지였던 왕경 지역에서 통일신라시대 이후의 문화층이 광범위하게 확인되는데 반하여 삼국시대 초기, 삼한시대, 초기철기시대, 청동기시대의 문화층은 그렇지 못한 것이다. 이러한 의문에 대한 대답으로 고대사학과 고고학에서 나온 가설 가운데 하나가 왕경에는 고대 초기까지 습지가 넓게 분포하였고 북천 홍수에 의한 재해로 인간이 거주하기 어려운 공간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습지 개간과 방수림 및 제방 등을 이용하여 문제를 해결한 이후 비로소 왕경에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거주하기 시작하여 신라의 핵심 지역이 되었으므로, 대체로 6세기 이후 문화층이 왕경 지역에서 광범위하게 확인된다는 것이다. 이 가설의 검증과 더불어 고대 전성기의 용수공급 문제, 발천의 발원지와 유로, 적석목곽분의 조성에 관한 논쟁은 실질적으로 지형학 및 수문학 연구의 주제였다.
지형학 연구자로서 필자는 이러한 문제들과 함께 더 근본적인 문제들 즉, 영남지방에서 국가가 발생하는 과정, 사로국이 영남지방의 패자가 되는 힘의 원천이 무엇인가하는 의문을 지리적 공간이 갖는 입지 특성으로 설명할 수 있는지 고민하였다. 다시 말하면 ‘왜 경주가 고대의 중심이 되었는가’에 대하여 자연환경의 관점에서 대답할 수 있는 내용을 찾아보아야겠다고 생각하였다. 다만 이런 주제까지 자연환경으로 설명하는 것이 환경결정론 관점으로 비난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있으나 이전에 아무도 논의한 적이 없으므로 검토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이미 연구의 중심축이 고대사와 고고학 쪽으로 상당히 많이 들어온 시점에서 재레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의 저작들과 도널드 휴즈(Donald Hughes)의 저서는 지형학 연구 내용을 고고학 및 고대사와 연계하여 해석하면 인간의 삶을 다른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하였다. 순수자연과학인 지형학을 인문학인 고고학, 고대사학과 융합하면 지형학의 연구 영역을 확장할 수 있을뿐 아니라 다른 차원에서 학문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고고학 및 고대사 연구는 지형학을 전공하는 필자에게는 극복하기 어려운 장벽 너머에 있는 영역이었다. 이들 분야에는 엄청난 연구성과들이 축적되어 있었는데, 발굴 현장이나 학술 토론장에서 연구 내용을 보고 들으면서 공부를 시작하였고 다행히 전문연구자들과 개인적으로 토론할 기회도 얻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지형학 연구 내용을 고고학과 고대사학 연구성과와 관련지어 해석할 수 있게 되었고, 고대 왕경 지역 홍수 가능성, 사로국 성립에 미친 자연환경의 영향, 적석목곽분 조성에 미친 지형의 영향, 삼국사기 기록을 기초로 하여 자연재해 및 식생파괴와 통일신라의 붕괴 등의 논문을 발표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 지형학을 전공하는 필자는 자연환경(natural environment)을 기반으로 융합적 관점에서 ‘왜 하필 경주인가’라는 질문에 답하고자 한다. 결론을 미리 말하자면, 고대 경주 지역의 융성은 단층선 및 선상지 그리고 금호강의 태백산맥 절단이 준 선물이었다. 덧붙여 통일신라의 멸망을 굳이 ‘붕괴(collapse)’로 규정하고, 자연환경이 여기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도 소개하고 싶다. 이것도 미리 결론을 말하면 통일신라는 식생파괴를 통해 에너지를 공급하는 삶의 양식, 기후 변화 그리고 이와 같은 상황에 대처하는 지배층의 태도로 인하여 붕괴되었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이 책을 통해 경주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전문연구자부터 시민들까지 기존 고대사 및 고고학 연구들과 다른 관점에서 고대 인간들의 삶을 살펴보게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