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짓기 바이블 2.0 - 건축주, 건축가, 시공자가 털어놓는 모든 것
“사는 방식이 달라진 만큼 사는 집도 다양해졌다!”
김호정 최이수 임태병 정수진 조남호 전은필
지난 12년의 변화, ‘하우스푸어’에서 ‘영끌’로
24년 한국을 뒤흔드는 가장 강력한 이슈는 무엇일까. 새로운 정책의 빈도와 뉴스의 파장, 공론화의 정도로만 봐도 그 주인공은 부동산이다. 그중 단연 ‘집’ 문제일 것이다. 환금성을 담보하는 재산 가치 외에 우리의 주거는 그 의미와 가치와 방식마저 몽땅 잃은 지 오래다. 『집짓기 바이블』 초판이 출간되던 2012년 초봄의 상황과 묘하게 겹쳐진다. 당시 수직상승하다가 금융 위기를 맞아 급락을 경험한 한국의 집값은 ‘하우스푸어’라는 신조어를 탄생시켰다. 요사이 등장한 ‘영끌’이라는 신조어는 당시의 하우스푸어와 대비되면서도 아슬아슬한 삶의 불안과 공포를 고스란히 오마주한 셈이다. 『집짓기 바이블』은 지금과 같은 아파트값 등락의 혼란 속에서 아파트가 아닌 주거 방식을 선택하고자 하는 30~40대의 바람과 질문으로 시작된 기획이었다. 작은 마당을 둘 수 있는 단독주택을 평범한 직장인 3~4인 가족이 교외 택지 또는 신도시 주택단지에 대지를 매입해, 가족만의 설계를 통해 고유한 삶을 짓고자 하는 바람으로 시작하는 이 책은 이에 따른 준비, 부딪는 현실적인 문제들에 관해 건축주, 건축가, 시공자가 한자리에 모여 시시콜콜 묻고 답한 실용서이자 건축에 대한 폭넓은 가이드였다.
그 후로 12년이 지났다. 『집짓기 바이블』 개정에 대한 독자 문의는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집짓기 바이블』이 지금의 맥락에 맞는 답을 내놓아야 할 시점이었다.
2024년 새로운 집필진, 새로운 이야기 - 2년 6개월의 대담, 1년간의 편집
코로나 팬데믹 이후 급작스러운 건설비 상승, 건축과 시공을 둘러싼 전반적인 변화, 재개발과 가로주택정비사업 등의 이슈가 한국 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30~40대 평범한 직장인의 집짓기 꿈은 여전히, 또는 과연, 이루어질 수 있을까?
40대 초반의 평범한 직장인 최이수 씨는 아내와 함께 은평구 응암동의 오랜 구옥을 매입해 세입자들과 이웃해 살며 신축을 계획했다. 5년간 예산을 마련한 최이수 씨 부부는 드디어 건축가를 만나 설계 상담을 받았다. 수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꿈에 그리던 일이었다. 골목을 이웃해 사는 임태병 소장에게 설계를 의뢰했기에 더욱 신뢰가 깊었다.
50대 중반의 김호정 씨가 집과 임대 상가를 겸한 상가주택을 짓기 위해 땅을 조사한 기간은 근 10년. 그 뒤로도 땅의 문제를 해결하고 예산을 마련하기 위해 약 4년이라는 시간이 더 필요했다. 주택을 꿈꾼 지 십수 년이 지난 2021년 3월 김호정 씨 가족은 드디어 성동구 성수동 윤슬 가옥에 이사를 들어갔다.
건축 규모도 용도도 연령대도 다른 두 건축주가 『집짓기 바이블 2.0』 대담 자리에 앉은 이유는 같다. 최이수 건축주는 ‘모르는 것투성이’였다. 아파트가 아닌 다른 주거 방식을 선택하자 모든 것이 낯설고 멀어졌다. 일가친척은 만류했고, 친구들은 우려했고, 은행은 시야에서 사라졌다. SNS 계정을 만들고 유튜브 채널도 여럿 구독하고, 건축 관련 다큐멘터리도 빼놓지 않았지만, 정작 손에 잡히는 정보는 없었단다. 그런 연유로 『집짓기 바이블 2.0』의 대담자로 초대받자마자 환호했다.
김호정 건축주는 10년을 넘게 준비했음에도 막막했다고 했다. 전문가가 아니라 경험자의 현실적인 조언, ‘평범한 일반인의 경험에 따른 조언’이 절실했기에, ‘내가 먼저 선뜻 손을 내밀자’ 하는 마음으로 자리했다고 한다.
초판과 2.0 버전에 모두 함께한 조남호 건축가의 고민은 누구보다 깊었다. 집이 오로지 집값으로만 치환되는 이 시대에 집에 대한 논의는 어디로 향해야 마땅한가? 집을 짓거나 고치는 방법을 알려주는 실용서가 갖춰야 할 본질적이고 궁극적이면서 변치 않는 ‘정보’란 어떤 형태이어야 할까?
1부 1장은 ‘내 집 짓기의 가능성’을 타진하며, 위의 물음에 대한 답으로 시작한다.
출생률 0.7 이하, 1인 가구 비율 34.5퍼센트, 급속한 초고령사회
비상경보가 깜빡이는 한국 사회에서 ‘집’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건축가 임태병의 거의 모든 경력은 ‘주거 실험’에 방점이 찍힌다. 그는 (어쩌면 우리 모두 알고 있듯) 우리 사회의 지향이 바뀔 수밖에 없다고 진단한다. 극단으로 치닫는 집과 거주의 문제가 결국은 돌파구를 마련할 수밖에 없을 거라는 예견이다. 그는 자신이 궁리하고 시도한 대안들을 ‘중간 주거’라는 개념으로 범주화했는데, 이를테면 그것은 ‘사이의 길’이다. 소유와 임대 사이, 공유와 공용 사이, 그리고 다양성과 유연함 사이. 예컨대, ‘풍년빌라’는 임차인이 임대인을 찾아 나선 독특한 방식의 코하우징 실험이다. 현재 임태병 소장의 가족을 비롯해 세 가족이 거주하고 있고, 임태병 소장은 설계가 아닌 코디네이터를 맡았다. (1부 190~196, 2부 436~437, 456~459)
이에 반해 건축가 정수진은 주택의 고유한 형식과 질서를 중시한다. 가장 내밀한 공간으로서 주택이 갖춰야 할 마지노선이 무엇이고, 현실적인 난제들은 무엇인지 가감 없이 드러낸다. 무엇보다 일면 추상적이고 관념적일 수 있는 설계의 개념을 어떻게 하면 공간 속에 실현할지에 관한 고민이 치열하다. (1부 139~143, 2부 466~490)
시공자로 참여하는 전은필 대표의 이야기는 현 시점 언론을 도배하는 사태들과 숱한 논란의 뿌리를 가늠케 한다. 대형 건설사가 아닌 중소형 건설사의 현 상황은 어떨까, 숙련공이 사라진 오늘의 건설 현장은 어떻게 움직이고 있나, 쉴 새 없이 불거지는 시공 현장의 사고 원인과 대책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어떤 시공사를 만나야 할까, 어떻게 비용을 가늠해야 할까 등등 폭넓은 범위에서 시작해 세세한 상황별 조언까지 놓치지 않고 풀어놓는다. (1부 115~121, 1부 150~160, 2부 573~595)
많은 것들이 달라졌지만, 대담자들의 전제는 변치 않았다
본격적인 토론을 시작하기 전에 대담자들은 몇 가지 원칙을 정했다.
하나, 각자 생각하고 주장하는 바를 진솔하게 드러낸다.
둘, 집짓기의 모든 과정을 다룬다.
셋, 업계 비밀과 관례, 관습을 넘어선 솔직한 태도로 대화한다.
넷, 보편적인 상황을 염두에 두되 직, 간접적으로 경험했던 사례들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다섯, 대담의 목적(책의 출간 목적)이 설계나 시공, 준공 같은 개별적 과정이 아닌, ‘좋은 집짓기’라는 총체적인 결과에 있음을 잊지 않는다.
이 전제들의 종착지는 ‘예비 건축주들과 건축가, 시공자에게 양질의 정보를 제공한다’는 것이었다.
건축법의 변화, 감리제도, 직영공사의 속내와 부가세 환급 문제까지
총 여섯 개의 장으로 구성된 1부는 기획자를 포함한 일곱 명의 대담으로, 지난 10년간 무엇이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분석하고 집짓기의 가능성과 방법들을 타진해본다. 특히 1장을 통해 대형 아파트단지 재개발과 소규모 가로주택정비사업, 공공이 보급하는 다양한 주택 보급들, 이 사이에서 ‘안정적인 거주’가 가능한 방법들을 모색해본다. 2장과 3장에서는 설계와 시공의 전반적인 변화를 짚어보며 어떤 건축가를 만나야 할지, 시공사를 선택하는 기준은 무엇인지를 톺아본다. 4장에서는 착공을 목전에 두었음에도 여전히 뭉뚱그려진 생각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할 수 있도록 돕는다. 5장과 6장의 대담은 상세한 시공 단계를 따라간다. 요사이 시공은 복잡하게 강화된 건축법만이 아니라 기후의 변화에 큰 영향을 받는다. 공기 압박은 크고 작은 모든 건설 현장의 어려움인데, 특히 예측할 수 없는 폭우나 폭염은 현장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한편 세간에 논란이 되고 있는 감리제도에 대한 효용을 논의하고 비판과 대안을 토의한다. 뿐만 아니라 단열법의 변화, 주차장 문제, 조경을 비롯한 사용승인에 관련된 현안들과 주택 신축을 둘러싼 부가세 문제까지 비판의 날을 세우며 첨예한 토론을 이어간다.
전문가와 경험자의 마스터클래스
거대하고 본질적인 질문에서 시작해 점차 폭넓고 세부적인 정보까지 파고드는 2부는 개별 건축가의 이야기로 시작해 시공자의 낱낱한 조언으로 끝을 맺는다. 건축가 조남호의 화두는 여전히 지속 가능한 집의 세계다. 그는 집짓기의 어려움이 개별 건축가 또는 시공자 때문이 아니라 좋은 집을 짓기 위한 사회적 기반이 약한 데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독자들이 이해하길 촉구한다. 그러니 서로의 고충을 이해하고 협력이 작동할 때 비로소 행복한 집짓기가 가능해진다는 것이다(430~433쪽). 또한 한 가족에게 행복한 설계라면 백년이 지나도 추레해지지 않고 깊이를 지닌 집이 될 것이라 조언하며 중성적 공간의 가치를 임태병 소장의 작업들을 들어 역설한다.
건축가 임태병의 시도들은 일관된 지향을 지닌다. 20여 년 전 홍대 카페 문화의 시조로 불리는 카페 ‘비하인드’(439~441쪽)를 기획하고 운영했던 장본인이자 상업 시설에서의 유연한 연대를 시도했던 ‘어쩌다 가게’(442쪽), 새로운 방식과 과정으로 지어진 코하우징 주택 ‘풍년빌라’(457~759쪽)의 실제 입주자이기도 한 임태병 건축가는 공유하지 않고 느슨하게 점유하며 함께 사는 ‘중간 주거’ 개념을 확장하고자 한다. 특히 일본의 현재 건축의 변화와 사례들을 들어 초고령화, 도시 공동화, 세대 간 분리 등의 사회적 문제까지를 아울러 위기에 처한 건축이 오히려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다(450~456쪽)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한편 건축가 정수진의 고민들은 철저히 현 상황을 직시한다. 당장 닥친 문제들을 해결해야 할 예비 건축주들에게 핵심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대지를 매입하기 전 전문가의 눈이 필요한 이유(467~468쪽), 예산을 어디까지 솔직히 털어놓아야 할지, 지출의 순서를 어떻게 정할지(469~472쪽), 원하는 공간을 어떻게 정리할지(473~476쪽), 왜 설계 계약과 감리 계약이 분리되어 있는지, 도면의 완성도란 무엇인지, 정밀 시공의 중요성 등(479~485쪽)을 알려주어 구체적인 계획을 잡으려는 독자에게 친절한 안내가 될 것이다.
경험자의 문서함을 열다
건축가의 이야기를 잇는 두 건축주의 경험담은 그야말로 현실의 무거움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먼저, 은평구 응담동에 오래된 다가구주택을 헐고 신축을 준비하던 최이수 씨의 이야기는 반전을 맞는다(501~509쪽).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축주 부부는 결국 원하는 것을 얻게 된다.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떤 결론에 이르는 걸까?
한편, 성수동 상가주택을 마련하기 위해 약 20여 년을 준비한 김호정 씨는 산더미 같은 서류와 계약서를 펼쳐놓았다. 김호정 씨는 “제 경험상 관할 관공서에서든 시공사에서든 무엇무엇을 준비하라고 얘기를 하면 그 말을 솔직히 한번에 알아듣기 어려워요. 단어들도 어려운데다, 그게 허가가 필요한 서류인지 쌍방이 서명해야 하는 계약인지, 공증을 받아야 하는 보험인지 파악하기가 힘들었어요. 모든 것이 낯설고 어려웠던 제 경험을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어요”라고 전하며 ‘필요한 거의 모든 서류와 계약서’의 실제 모습을 보여주고자 애썼고, 관련된 업체들에 폐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일의 모든 순서와 오고 간 서류들을 공개했다. 따라서 2부 전체에서 김호정 씨의 글만은 다른 장들과 편제와 디자인이 다르다.
단계별 체크리스트와 연간·분기별·주간 계획이 수록된 집짓기 노트
방대한 분량의 정보와 전문적인 내용을 단시간에 습득하기란 어렵기도 하거니와 집짓기 또는 리노베이션은 거대한 하나의 사업이기 때문에 전체 사업 일정과 내용을 총괄하는 다이어리가 필수적이다. 별책 부록으로 제공되는 집짓기 노트는 전체 흐름을 짚어가며 예산 계획부터 집행, 관리, 시공 단계별 체크 리스트를 압축적으로 정리해 현장에서 편하게 휴대하고 메모할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 특히 세 번째 파트는 독자가 실전 상황에서 맞춤 노트로 사용할 수 있도록 연간, 분기별, 주간 계획으로 구성해 최대 3년 정도 기록을 정리할 수 있는 다이어리 형식을 갖췄다.
피해 가려고만 하면 구멍이 생긴다
건축물을 짓거나 고치고자 할 때 보통은 ‘사고를 피해 가는 것’에 초점이 맞춰지기 마련이다. 눈속임이나 사기를 당하지 않을까, 계약 상대가 저지른 잘못을 놓치지 않고 지적하려면 무엇을 알고 있어야 하나 등 모두 ‘내가 잘 모르면 피해자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이다.
그러나 주택과 같은 소규모 건축물의 시공이 표준화, 산업화를 이루지 못한 현 상황에서 한 사례를 다른 예에 그대로 끼워 넣으려다가는 더 큰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 ‘모든 집이 다름을 짓는다’는 조남호 건축가의 일설은 관념적인 교훈이 아니라 현실을 직시한 관계자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기억해야 할 전제이다. 때문에 이 책은 반면교사 방식을 취하지 않는다. 대담자들은 유의할 점을 알려주기보다 지향해야 할 지점을 강조한다. 건축주가 집짓기 사업을 이끌어갈 때 가장 절실한 해답은 여기에 있다. 필요한 것은 콘크리트 강도 같은 세부적인 수치가 아니다. 건축주, 건축가, 시공자가 맞드는 꼭짓점의 균형은 같은 곳을 바라보는 가치 지향에서 구해진다. 『집짓기 바이블 2.0』의 대담자들이 그 균형을 찾아가도록 이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