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민주주의 실천
좀 더 돌보는 인간과 사회, 자연과 지구를 향한 돌봄민주주의 실천은 전 세계적으로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관련하여 돌봄을 중심으로 한 돌봄선언(케어 매니페스토)이 확산되고 있는 점은 고무적이다. 대표적으로 더 케어 컬렉티브(The Care Collective)의 「돌봄선언: 상호의존의 정치」(Care Manifesto: The Politics of Interdependence, Verso, 2020)는 돌보는(caring) 친족관계, 공동체, 국가, 경제, 세계로 재편하기 위한 노력과 행동을 요구한다. 네델스키(Jennifer Nedelsky)와 멜르손(Tom Malleson)은 노동과 돌봄에서 시간을 축으로 한 규범의 전환을 선언한다.4 가틸립(Robert Gottilieb)은 경제사회 및 자연환경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아젠다로서 돌봄정치를 제안한다.5 제크너(Manuela Zechner)는 돌보는 실천으로 ‘commoning’(함께하기)을 제안한다.6 Oxfam, Global Women’s Strike, Network Care Revolution, Women’s Budget Group 같은 비정부기구와 국제네트워크 등에서도 인간과 자연에 대한 돌봄의 공식적 인정을 요구하는 제언을 지속하고 있다.7 UN Women을 포함한 국제기구들도 돌봄을 중심에 둔 지속가능한 경제를 제언한다.8
이러한 제언은 구체적인 사례들로 나타나고 있다. 국가 및 초국가, 도시 및 지방정부 등은 다양한 돌봄정책과 돌봄의 제도화를 시행 중이다. 유럽위원회(European Commission, 2022)는 케어딜(Care Deal)을 향한 진일보로 유럽돌봄전략(European Care Strategy)을 제시함으로써 유럽 정치아젠다 중 하나로 돌봄을 명시하고 유럽연합에 보편적이고 수준 높은 돌봄을 보장해야 하는 중요성을 명확히 하고 있다.9 콜럼비아 보고타(Bogota)시는 돌봄을 도시정책(Care Blocks)의 중심으로 삼으려 한다.10 최근 에콰도르 개헌 담론에서는 헌법의 근간 아이디어인 Buen Vivir(good life, 좋은 삶) 속에 돌봄 개념이 내재되어 있다고 학자들에 의해 제시되기도 하였다.11
한국 사회에서도 돌봄의 관점에서 사회를 변혁하기 위해 대안의 패러다임으로 제시하는 다수의 연구들이 제시되고 있다. 돌봄을 근간으로 하는 돌봄민주국가와 돌봄의 제도화가 제안되고 탈성장의 대안 담론과 대안의 체제로서 돌봄이 제시되었다.12 돌봄민주주의는 기존 제도와 정책을 평가하고 규범적인 방향성을 제안하는 근본 이론으로 활용되었으며,13 개헌 논의에 있어 돌봄이 헌법적 가치로서 다뤄져야 한다는 주장까지 논의된다.14 돌봄을 받을 권리와 돌볼 권리까지 보장하는 포괄적인 돌봄정책기본법이 제시되었고, 돌봄은 대안의 거버넌스로 또한 대안의 소득으로 제시되기도 하였다.15
더불어 돌봄정치를 기획하고 제안하는 시민사회의 폭넓은 논의의 장-정치하는 엄마들, 다른몸들, 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 한살림서울돌봄사회적협동조합, 비비사회적협동조합,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한국여성단체연합,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시민건강연구소 등-이 활발히 열리고 있다.16 나아가 돌봄민주주의는 중앙과 지방정부의 돌봄정책과 돌봄제도화를 위한 이론적ㆍ실천적 논의로 제시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광주광역시는 ‘돌봄도시’ 광주를 모토로 다양한 돌봄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광주광역시는 ‘광주다움 통합돌봄’으로 2023년 제6회 국제도시혁신상을 받았다.17
지난 10년은 돌봄정치의 배양기였다. 코로나 팬데믹은 ‘거리두기’를 외쳤지만, 역설적으로 거리두기를 할 수 없는 돌봄에 의존해야 하는 취약한 인간존재의 실상을 가감 없이 드러냈으며, 돌봄의 가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돌봄부정의와 억압을 양산하는 정치경제를 부양하는 구호들의 허상을 들춰냈다. 성찰과 변혁의 기치로 돌봄을 모색하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녹록하지 않은 정치경제적 부침과 냉혹한 현실 앞에서 돌봄은 지금까지 그래왔듯 꽃길이 아니라 가시밭길을 헤쳐 나가야 할 것 같다. 예견된 돌봄의 정치적 성장통 속에서 더 나은 사회와 더 많은 인간해방의 모습을 더 넓은 미래가 함께 할 수 있는 비전이 되리라 기대하며 돌봄민주주의 두 번째 10년(돌봄민주주의 2.0)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