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시가 될 수 있다
누구든 시인이 될 수 있다
“지구는 돈다/ 23.5도 기울어져 돈다/ 자각하지 못한 채/ 너도 나도 기울어져 돈다/ 기울어진 초록 위에서/ 기울어진 파아란 생각을 할 뿐이다/ 기울어진 지평을 바라보며/ 수평으로 기울어진 축에서 돌고 돌 뿐이다/ 똑바로 된 세상은 우리 눈에서/ 23.5도 기울어진 채 비칠 뿐이다”(이영륜, 「23.5도」)
지구과학 시간에 지구의 자전축이 23.5도 기울어져 있다고 배운 후 능인고 시 창작반 학생이 쓴 시다. 기울어진 세상에서, 기울어진 생각이 당연해져 오히려 똑바로 된 세상이 기울어져 보이는 상황을 표현하며 선입견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든다. 『우리들의 시 창작 교실』을 엮은 민송기 시 창작반 지도교사는 교실에 잘못 들어온 벌 한 마리, 학교 벽에 붙은 담쟁이 하나에도 시가 들어 있다고 말한다. 의식하지 못한 채 지나가는 수많은 사물과 현상, 그 모든 것이 시가 되는 것이다.
“나는 항상 공부해야 한다고 반복해서 생각한다/ 나는 항상 배운 것은 반복해서 해야 한다고 반복해서 생각한다// 아! 그렇지만/ 나는 항상 공부해야 한다고 반복해서 생각한 것들을 안 하기를 반복한다/ 나는 항상 배운 것은 반복해서 해야 한다고 반복해서 생각한 것들을 안 하기를 반복한다/ 그러고는/ 나는 항상 시험을 망친다/ 나는 항상 이렇게 반복해서 시험을 망치기만을 반복한다”(김도운, 「반복」)
책에서는 1부에서 시란 무엇인지, 어떻게 시를 쓰는지, 시 창작에서 어떤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는지 민송기 국어 교사가 예시와 함께 알려준다. 시는 노래임을 설명하기 위해 또 다른 학생의 시를 소개한다. 매번 계획을 세우지만 계획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을 ‘반복’이라는 시어를 반복하며 리듬감 있게 표현한 시다. 반복과 대구를 통해 시의 운율을 살리고 재미를 더한 것이다. 2, 3부는 모두 시 창작반 학생들의 시로 구성되었다.
창작이라는 것은 누구나, 자유롭게, 즐겁게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엮은이의 말처럼 능인고 시 창작반 학생들은 창작의 즐거움을 몸소 느끼며 시인이 되었다. 엄마의 갱년기, 아파트 현관 입구 화단의 비비추, 수행평가 보고서, 암흑 물질, 자전축, 적분과 극한 등 일상과 학교 생활에서 발견한 것을 소재로 삼았다. 입시의 중압감에 시달릴 때, 세상에 대한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고 싶을 때, ‘시 창작’이라는 효과적이면서도 위로가 되는 취미가 있음을 보여준다.
“인생에는 통과해야 할 터널이 많다/ 난 이제 첫 번째이고/ 엄마는 두 번째 고비를 넘고 계신다/ 배려와 사랑으로 지켜봐 주며/ 우리 함께 잘 견뎌내고 지나가기를!”(이승찬, 「엄마의 갱년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