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시대에 희망과 사랑을 찾는 시문학의 여정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는 꽃과 나무를 모티프로 희망과 사랑을 노래한 국내외 유수한 시인들의 명시를 엄선한 시선집이다. 시집 제목인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는 한반도에서만 자생하는 미선나무의 꽃말이다. 미선나무는 3.1운동이 일어난 해에 일본에 학명을 빼앗겨 일제 강점기의 시련과 슬픔을 한민족과 함께 견뎌내 온 인고의 식물이다.
김승희 시인의 「미선나무에게」를 비롯하여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에는 서른세 명의 시인들이 각양각색으로 변주한 꽃과 나무들이 독자를 맞아들인다. “데이지꽃을 믿듯 세상을 믿는다”라는 페르난두 페소아, “죽음을 거부하는” 오월의 꽃 전령사 에밀리 디킨슨, “죽지 않는 사랑과 정열”의 빨강 카네이션을 찬미하는 엘라 윌러 윌콕스까지, 서른세 명의 시인들이 읊는 오십 편의 시는 우리의 슬픔을 어루만지고 은유적 삶을 풍요롭게 하는 뜻깊은 기회를 선사할 것이다.
김승희의 미선나무에서 로르카의 아카시아까지
“시인에게 꽃이 없다면 아픔과 희망을 무엇에 담을 수 있을까”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의 문을 여는 「미선나무에게」를 쓴 김승희는 한국 여성문학사에서 독보적 위상을 차지하는 작가이다. “시인은 본질적으로 세상의 어두운 면에 감응하는 존재”라는 작가의 말처럼 이 시는 위안부 할머니, 밀양 덕천댁 할머니와 김말해 할머니, 5.18과 4.16 엄마들 등 국가폭력에 맞서 싸우는 여성들을 기억한다. 시인은 “지칠 줄 모르고 이어지는 사랑의 봄을 안다”고 하며 이 “봄은 이어지고 이어져 우리 앞에 봄꽃들의 행렬은 끝이 없다.” 그리고 “지칠 줄 모르고 이어지고”, “끝이 없다”는 말에서 우리는 기억하는 행위를 간파한다. 세월호 10주기를 맞아 「미선나무에게」는 각별한 울림으로 다가와 우리에게 기억해야 할 것이 무언지 일깨워 준다.
비운의 시인 로르카는 시인에게 꽃이 없다면 아픔과 희망을 무엇에 담을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던진다. 1936년 스페인 내전 당시 가장 영향력이 컸던 시인으로 재판도 없이 사살당한 로르카는 아카시아, 달리아, 장미, 백합, 재스민, 석류나무, 인동덩굴 등 각양각색의 식물을 모티프로 삼아 죽음이 그것으로 끝이라면, 그래서 그 죽음이 기억에 남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하면서 슬픔 속에 희망이 깃들기를 염원한다. 기억과 애도에 관하여 김승희 시인은 롤랑 바르트를 인용하여 “끝없이 그리워하고 슬퍼하는 것, 그 안에서 타자를 이한 작은 쪽지의 기념비를 만드는 것, 그것만이 진정한 애도”라고 말한 바 있다.
“죽지 않는 사랑과 정열이 여기에 잠들어 있다”
아울러 국내 처음 소개되는 여성작가 안나 마골린은 절망의 아스팔트에서 백합처럼 온화한 꽃을 피우는 자신을 상상하며 희망을 살린다. 그리고 엘라 윌러 윌콕스는 희망이 있어야 성실할 수 있고, 성실해야 헬리오트로프의 꽃말처럼 헌신할 수 있다고 노래한다. 그에게 꽃은 바라보아야 시들지 않으며, 카네이션에는 “죽지 않는 사랑과 정열”이 잠들어 있다. 이 또한 애도를 거친 기억의 흔적이다.
꽃과 나무가 필요하지 않은 때가 없지만 지금은 특히 필요한 시대가 아닐까. 꽃은 “인생의 서리를 지기엔 너무 약하다”고 하지만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의 시인들은 꽃을 가슴에 품고 시를 통해 위로를 주는 힘이 있는 매개체로 승화시킨다. 그래서 슬픔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더욱 그런 시가 간절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