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항해시대, 일본 전국시대를 조망하는 새로운 창
전쟁과 폭력의 세상이었던 일본에 ‘대항해시대’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나타났는가? 이 책은 일본으로 유입된 서양 문명과 그로 인한 충격이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생애 전반에 걸쳐 영향을 끼쳤다는 점을 강조하고, 이를 통해 일본 전국시대의 새로운 면모를 부각한다. 그런즉 이 책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크게 세 가지라 할 수 있다.
첫째, 일본 전국시대는 아시아와 서양이 일본을 축으로 연결된 시기이다. 일본 전국시대에 서양식 철포(화승총)가 유입된 이후 대외무역의 범위가 크게 확장된다. 최신 연구에 따르면 철포와 탄환 제작에 쓰이는 광석 재료는 일본 밖, 특히 태국을 비롯한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수입됐고 그 값을 치르기 위해 쓰인 대가가 바로 일본 이와미 광산에서 채굴한 은이었음이 밝혀졌다. 이렇듯 일본 전국시대는 대항해시대라는 물결과 함께 교역망이 확대되는 시기였다.
둘째, 예수회 선교사들은 단순한 바다 너머의 이방인이 아니라 전국시대의 판도를 뒤흔든 커다란 변수였다. 일본에 가톨릭 신앙을 전파하고자 찾아온 포르투갈·스페인 선교사들은 외교관의 업무까지 담당했다. 무기를 어느 다이묘에게 납품할지, 무기 제작에 쓰일 재료를 얼마나 제공할지를 결정하는 주체가 바로 예수회 선교사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사명을 관철하고자 종교를 전파하는 한편, 당대의 실력자들과 협상하며 자신들의 이익을 확보했다.
셋째, 위의 두 가지 이유로 일본 전국시대는 다채로운 집단과 인물들이 상호 작용하던, 말 그대로 ‘다각적인 격변기’였다. 흔히 일본 전국시대를 특출난 장수들의 힘겨루기가 팽배했던 시기 정도로 이해하나 실은 다이묘, 천황과 조정, 막부, 예수회 선교사, 불교 문도 등 다양한 세력이 끊임없이 동맹과 배신을 반복하던 역동적인 시기였다. 그리고 이러한 역동성과 입체성은 바로 대항해시대가 일본에 해일처럼 몰려들며 나타난 결과였다. 따라서 이 책은 그간 일본 전국시대를 둘러싼 편협한 오해를 타파하고, 나아가 세계사의 관점에서 동아시아의 역사를 알아볼 수 있도록 지평을 넓혀줄 수 있다는 의의가 있다.
■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생애를 따라가는 짥고도 풍부한 여정
원서의 저자 아베 류타로는 일본 문학계에서 차세대 선두주자로 부상한 역사소설 작가로, 그는 2012년 일본의 대중문학상 중 하나인 나오키상을 수상하여 해박한 역사적 지식과 문학적 성취를 인정받았다. 이후 2020년부터는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연작 소설 《이에야스》를 집필하였고, 현재 해당 시리즈는 8권까지 출간되었다. 이 책은 이에야스의 생애를 추적하는 어마어마한 여정 중 잠시 쉬었다 가기 위해 태어난, ‘쉼표’와 같은 존재라 할 수 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향한 저자의 애정은 남다르다. 학계의 최신 연구를 빠짐없이 파악하고, 유적지를 직접 찾아다녔으며, 아직 규명되지 못한 역사적 빈칸에는 소설가의 상상력을 덧붙여 당대의 인물과 시대상을 생생하게 묘사하고자 노력했다. 이를 증명하듯 본문 곳곳에는 숱한 학자의 이론과 가설, 학계의 최신 연구, 그리고 기존 가설에 대한 합리적인 반론 등이 빼곡하다. 또한 독자의 독서 여정이 고단하지 않도록 마지막 페이지 최후의 온점까지 친절한 문체와 극적인 전개 방식을 동원해 힘차게 서술했다.
단 212p라는 얇은 분량으로 일본 전국시대의 역사를 개괄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그 과정이 끝까지 흥미진진하다는 점은 이 책이 지닌 최고의 강점들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