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철 목사는 한국 교회가 낳은 최대의 순교자라는 점에 이의가 없을 것이다. 그는 해방 이후 한국 교회의 역사와 신앙,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식, 국가와 교회에 대한 이해, 불의한 권력에 대한 저항 사상 등 한국 교회의 신학과 교회적 삶에 정신적으로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특히 그의 삶의 여정은 무엇에 복종하고 무엇에 저항해야 할 것인지를 분명히 보여 주었고, 한국 교회에 순교 신앙의 실제성을 깊이 각인시켜 주었다.
주기철 목사의 삶에서 가장 주요한 점은 신사참배 강요에 대한 일관된 반대와 저항이었다. 이 점이 그의 목회적 삶의 행로를 결정했고 순교자로서의 주기철 상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그의 생애와 목회는 일제의 식민통치와 종교 정책, 특히 기독교 정책과 이로 인한 한국 교회와의 대립과 갈등의 역사와 궤를 같이하고 있으며 복음적 신앙이야말로 그의 생을 이끌어 간 힘의 원천이었다.
주기철 목사의 신사참배 반대 이유는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신사참배를 하나님의 계명에 반하는 우상숭배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그에게 신사참배는 제1, 2계명을 범하는 죄악이었다. 이 점이 그가 신사참배를 반대했던 가장 중요한 이유이다. 둘째, 개인의 신앙 양심과 신교(信敎)의 자유를 억압, 탄압하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셋째, 교회의 순수성과 거룩성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일제의 계속적인 탄압은 종국에 한국 교회를 훼파하려는 저의가 있었으므로 주기철 목사는 신교의 자유와 영적 자유를 주장하고 신앙의 순수성과 교회의 거룩성을 유지하기 위해 투쟁했다.
주기철 목사는 신사참배를 반대하는 저항인의 길을 갔지만, 동시에 가난한 영혼을 감싸는 목회자였다. 우상숭배를 강요하고 교회의 순결과 거룩을 훼파하려는 세력에 저항했지만, 동시에 자상한 영혼의 목자이기도 했다. 그는 삶, 목회, 설교 그리고 신사참배 거부를 통해 무엇에 저항하고 무엇에 복종할 것인가에 대한 일관된 삶의 방식을 보여 주었다. 그 행동의 토대는 개인적 감정도, 민족주의도, 심리적 고집도 아닌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응답이었다. 그가 7년이라는 긴 기간 동안 감옥에서 투쟁하고 기꺼이 순교자의 길을 간 것은 성경의 진리에 대한 확신 때문이었다. 오늘 우리가 주기철 목사에게서 배워야 할 점이 있다면 바로 이런 삶, 평생 하나님만을 열렬히 사랑했던 태도일 것이다.
- 이상규(고신대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