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적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100여 년 전 한반도에 살았던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기적, 이적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아래 내용은 실제로 한반도에서 일어났던 이야기이다.
“어느 한 교회의 집회에 참석한 눈 먼 장님이 기도를 하던 중에 눈이 뜨였다. 기도 안수를 받던 중에 앉은뱅이가 일어나 걸었다. 귀신들린 사람, 각기병, 풍증 등에 걸린 병자들이 고침을 받았다. 기적과 치유의 사역이 전국을 휩쓸었고, 동시에 곳곳에서 쏟아지는 의심과 비방이 잇따랐다. 곧 이적에 대한 교회 안팎의 비난에 황해노회의 임택권 목사를 중심으로 이적명증회가 조직되었고, 조사와 연구를 거쳐 1921년 《조선예수교회 이적명증》이 발행되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듯이, 하나님께서는 100여 년 전 좌우를 돌아봐도 소망 없는 우리 민족에게 ‘이적’의 방법을 통하여 일하셨다. 이 이야기의 중심에 김익두(1874-1950) 목사가 있다. 김익두 목사의 집회에 이적과 치유의 기사가 나타났고, ‘김익두 목사의 이적사건’은 한국 교회와 사회 전반에 큰 화제가 되었다.
김익두의 집회에 참석한 선교사들의 기록에 의하면, 김익두는 자신이 기적을 행했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단지 병자를 위해 기도하는 성경적인 방법을 단순히 따랐을 뿐이라고 전해진다.
그는 설교를 통해 어떠한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을까. 그는 주님의 십자가와 보혈, 주님의 부활, 천국에 갈 자의 회개 등 순수한 복음을 증거했고, 군중들을 일으키고 깨우쳤다. 그의 설교는 슬픔과 고난의 좌절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이 민족에게 구원의 소망과 확신을 주었다.
김익두 목사의 글을 읽다 보면, 김익두 목사의 불 같은 열정과 함께 마치 그의 목소리를 옆에서 듣는 것과 같은 생생한 현장감을 느낄 수 있다.
“김익두 목사의 설교는 대개 가난하고 병마에 시달린 소외계층에게 환영을 받았다. 그가 설교에 사용한 언어의 형태와 구성 역시 이들과의 동질성 체험 때문에 대중들에게 밀도 있게 파고들었다. 더구나 한 사람 한 사람의 영혼 속에 내재하는 성령 강림의 체험은 한 인간의 존엄을 약속할 수 있었고, 기존 사회의 신분제도에 대한 저항 의식을 신앙을 통해서 지탱케 한 것이라는 의미가 있다.
그의 메시지는 대중의 공감을 일으켰다. 그것은 일제의 압박으로 말미암아 찌들고 허탈에 빠진 민족에게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했기 때문이다.”
-정성구 박사(전 총신대학교, 대신대학교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