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길을 사랑하는 마음,
그것은 나 자신에 희생을 요구하는 노력이오.”
육사는 수필 「계절의 오행」에서 행동의 연속만이 있을 따름, 시를 생각하는 것도 행동이라고 말한다. 총 대신 펜을 든 문학으로의 방향 전환은 암흑기에도 항일 투사로서의 본령을 잊지 않았던 육사의 확고한 의지와 신념의 결과다. 이 책에서 저자는 육사의 시뿐만 아니라 수필, 평론까지 자세히 살피며, 육사의 작품세계를 육사의 강철 같은 의지와 무지개처럼 눈부셨던 실천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삼기도 한다. 이에 그는 “육사는 수필로 과거를 추억하고, 평론으로 당대를 주유하며, 시로 미래를 상상했다. 그래서 육사의 시는 상징적이고, 평론은 분석적이며, 수필은 묘사적이다.”(12페이지)라는 결론을 도출해 낸다. 저자에게 육사 글쓰기는 ‘하루하루가 자기 모멸의 극복’이었기에 그만큼 이 책은 육사를 제대로 알 기회를 선사한다.
“인간은
얼마나 외로운 것이냐.”
‘1장 옥비와 헤어지다(경성)’에서 아버지를 그리는 딸 옥비 여사의 증언으로 동대문경찰서(현 혜화경찰서)에 수감 중이던 육사가 베이징으로 이감되기 직전, 포승에 묶이고 용수를 쓴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상기시킨다. 베이징으로 이감할 육사를 경성-베이징 직행열차를 버젓이 놔두고 먼 길을 돌아 청량리역으로 끌고 간 이유를 ‘육사 베이징 호송 루트’로 설명해 준다. 이로써 ‘거물급’ 독립운동가를 호송하는 일경이 감지했을 위험을 암시한다.
저자는 지적도와 토지대장을 뒤져가며 오랜 추적 끝에 육사 장례식을 치른 호상소 위치를 알아내고, 육사의 장례식이 왜 우송 이규호의 집에서 치러졌는지도 설명한다. 우리는 덤으로 호상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상허 이태준의 수연산방과 만해 한용운의 심우장도 둘러볼 수 있다.
육사가 난징에서 군사 간부 1기생으로 훈련받았음에도 경성에서 다른 행보를 보인 시대적 상황을 자세하게 살핀다. “나는 육사가 조선 독립이라는 대의를 유지하되 그에 이르는 전략을 바꾸었다고 생각한다. 이는 육사 항일투쟁의 후퇴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랬다면 중일전쟁 이후 대다수 문인이 그리했던 것처럼, 육사도 친일의 길로 걸어갔으리라.”(36페이지)
문학 교사만이 할 수 있는 ‘시인 육사의 일일’ 답사를 따라가면 육사가 관찰했던 경성과 이를 내면의 필터로 거른 작품들도 만날 수 있다. ‘육사의 경성 산책’은 단순한 “물리적 하루의 이야기가 아니라 과거와 현재가 수시로 겹치는, 재구성된 한나절의 산책”이라 흥미진진하다. 저자는 혼마치 환선서점 즉 마루젠에서 육사와 동주가 마주쳤을 합리적인 상상도 해본다.
“청포도가 익어가는 것처럼
우리 민족이 익어간다.”
‘2장 백마 탄 초인, 스러지다(베이징)’에서 옥비 여사와 함께 답삿길에 오른 저자는 이육사 시인-이원대 열사가 스러져 간 순국처에 표지판 하나 없음에 서글퍼하고 순국처가 재개발로 사라질까 봐 노심초사하며 자신의 무심함과 무책임을 자책한다. “극도의 건강 악화와 그만큼이나 나빠진 정세에도 육사가 베이징으로 간 이유는 자명하다. 1927년 최초의 피체, 1932년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입교, 1935년부터 이어진 문화연구 및 문예활동 등을 고려할 때 육사의 베이징행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었을 것이다.”(96페이지) 육신이 무너지는 순간, 육사의 베이징행 목적은 충칭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을 모시고 옌안 조선독립동맹을 방문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육사는 수필 「고란」에서 “공간적인 것보다는 시간적인 것이 보다 더 나에게 중요한 것만 같다.”고 말하지 않았을까?
육사와 목적이 달랐지만 조선을 탈출하겠다는 목적을 이룬 두 사람, 김태준과 김사량의 탈출 경로도 소환한다. 육사가 계획대로 옌안에 가려 했다면 김태준과 김사량보다 먼저 비밀루트를 이용하지 않았을까? 베이징 유학 당시 육사가 다녔던 ‘중국대학 옛터’ 앞에서, 아버지가 걸었던 중산공원과 북해공원에서, 감회에 젖어 쉽게 떠나지 못하는 옥비 여사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저자는 상념에 잡힌다.
“광야를 달리던 뜨거운 의지여,
돌아와 조국의 강산에 안기라.”
‘3장, 무장투쟁 최전선에 서다(난징·상하이)’에서는 코로나 팬데믹 직전 옥비 여사를 위해 기획된 상하이·난징 답사를 소개한다. 흔적조차 없이 사라진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1기 훈련 장소로 추정되는 도로 한쪽에서 단체 사진을 찍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고 아버지가 훈련받은 장소는 아니지만, 3기 훈련 장소 천녕사에서 옥비 여사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4장 264가 되기까지(대구·포항·경주·부여)’에서는 ‘안동 촌놈 원록이 대구 청년 육사’가 되는 혹독한 통과의례를 통해 ‘폭풍우 앞의 정적과 같은 고요’를 지닌 육사의 강인함이 대조적으로 드러난다. 포항에 육사의 「청포도」 시비가 두 개나 있는 사연과 「청포도」 시상지로 포항과의 인연을 소개한다.
‘5장 원록으로 태어나 육사로 묻히다(안동)’에서는 형상할 수 없는 한 개의 자랑인 육사의 친가와 대대로 독립운동에 헌신하다 산화한 외가 친척을 소개한다. 그리고 저자는 ‘안동 육사 산책’으로 육사의 대표작 「광야」, 「청포도」, 「절정」 시비와 이육사문학관 바로 옆 동쪽 언덕에 평장을 한 육사 선생과 안일양 여사의 묘소로 안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