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에 대한 상식과 고정관념을 깨고
오로지 자유로울 것만을 주문하는 혁명적 연기 수업
『연기하지 않는 연기』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저자가 연기 수업을 받는 학생들이나 신인 연기자가 지상명령처럼 떠받들었던 가르침들을 하나하나 부정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거스킨은 철저한 분석을 통해 등장인물과 동화되는 스타니슬랍스키의 ‘메소드’ 연기법에 깊은 감명을 받았음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자신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는 “분석은 배우를 약하게 만든다”고 단언하면서 사전에 등장인물을 철저하게 분석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그럼 배우는 어떻게 등장인물과 동화되어야 할까? 거스킨은 먼저 대본의 텍스트 그 자체에 집중하기를 권한다. 그가 ‘지면에서 떼어 내기’라고 명명한 이 작업은 대본을 천천히 읽어 나가면서 심호흡을 하고, 문구를 머릿속에 집어넣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다음 지면에서 고개를 들고 대사를 말한다. 이때 지면 위 구절을 읽는 동안 머릿속에 떠오른 감정을 그대로 대사에 반영한다. 그 반응이 아무리 엉뚱해 보이거나 부적절해 보여도 상관없다. 그러고는 다음 대사로 옮겨가기 전 새로운 반응이 태어날 수 있도록 먼젓번의 반응을 버린다.
이런 식으로 진행하면 등장인물과 작품 전체에 대한 체계 없는 연기가 나올까 봐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거스킨은 그 ‘예측 불가능’성이 배우의 연기를 더 진실하고 살아 있는 것으로 만든다고 말한다. 배우가 자신이 다음에 어떤 연기를 할지 알고 있으면 관객들도 그 사실을 포착하게 되고, 그것이 연기를 ‘뻔한’ 것으로 만든다는 것이 거스킨의 지론이다. 배우는 예측 가능한 존재가 되느니 위험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배우 스스로가 틀에 구속되지 않는 자유를 마음껏 누리며 연기의 내외부를 자유롭게 탐험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비로소 살아 있는 연기, ‘연기하지 않는 연기’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밖에도 거스킨은 우리의 상식으로는 파격적으로 느껴지는 방법론을 연달아 펼친다. 오디션 전에 대사를 암기하지 말 것―대사를 잊어버리지 않았나 신경 쓰느라 자유롭게 기량을 펼칠 수 없기 때문에. 대본을 리딩할 때 내 대사보다 상대의 대사에 집중할 것―상대의 대사가 내 안에 불러일으키는 감정 역시 매우 중요하므로. 등장인물이 하지 않을 것 같은 선택들을 골라 시험해 볼 것―누군가가 하는 일 뿐 아니라 하지 않는 일에 커다란 진실이 숨어 있을 수도 있으니까.
결국 이 모든 지침은 연기를 통해 배우가 더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거스킨의 지도를 받았던 명배우 피터 폰다가 말했듯 “등장인물을 나 자신에게 더하는, 나 자신을 피하지 않고 확장시키는 근사한” 경험을 가능하게 하기 위함이다. 거스킨의 지도를 흡수한다면 연기자나 연기자 지망생 들은 연기를 통해 자신이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확장되는, 스스로도 몰랐던 내면의 자신을 발견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거머쥐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기술의 근원에서 실질적인 지식 습득을 통해
수용자 스스로 영감을 포착할 수 있도록 돕는 가이드, ‘도레미 인사이트’
『연기하지 않는 연기』는 도레미엔터테인먼트가 선보이는 예술 총서 ‘도레미 인사이트’의 첫 번째 권이다. ‘도레미 인사이트’는 예술 지망생들과 현업 종사자들로 하여금 해당 분야의 근원으로 내려가 가장 본질적 원칙을 고찰하도록 돕고, 실질적인 지식을 제공해 스스로 영감을 포착하여 발전할 수 있도록 인도한다는 취지로 기획되었다. 취지에 기반하여 『연기하지 않는 연기』에는 원서에 없던 체호프 희곡의 텍스트 일부를 연습용으로 수록하는 등, 단순한 독서에 그치지 않고 책 밖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 소기의 성과를 얻어낼 수 있도록 구성했다.
도레미엔터테인먼트는 2020년 봄 도레미 인사이트 제2권 『넷플릭스 시대의 글쓰기』를 출간할 예정이다. 급변하는 시대 스트리밍 영상 서비스의 홍수 속에서 어떻게 시청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이야기를 만들어낼 것인가, 라는 고민과 실제 글쓰기를 위한 구체적 지침을 담은 책이다. ‘도레미 인사이트’가 예술계에 신선한 자양분과 동력이 되고, 업계 종사자들의 등에 날개를 달아 주는 손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