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와 헤겔의 목적론적 통찰이
어떻게 기계론적 자연과학을 압도하고
생물학의 탐구를 지원하는가?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에서 뉴턴 역학에 기초한 기계론적 세계관을 철학적으로 재구성하면서, 기계론적 세계를 객관적으로 실재하는 세계로 간주했다. 이러한 기계론적 세계는 『판단력비판』의 합목적성과 양립할 수 없기 때문에, 칸트는 합목적성을 객관적 실재가 아닌 주관의 사고물로 간주하여 양자를 조화시켰다. 그러나 헤겔은 유기체를 인식적으로 구성할 수 없다는 칸트의 주장이 기계론에 기초한 인식 비판에 근거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칸트의 인식 비판의 전제를 거부하고 유기체를 객관적 실재로서 구성하는 방법을 고안했다.
이 책은 위와 같은 칸트에서 헤겔로의 이행을 칸트철학에 대한 헤겔의 내재적 비판으로서 논증한다. 헤겔의 목적론의 체계적 전개를 고찰한 후, 이에 기초하여 다윈 진화론과 자연과학적으로 재구성된 목적론인 텔레오노미(Teleonomy)와 같은 생물학의 기계론적 경향을 비판한다. 목적론에 대한 비판으로 거론되는 다윈 진화론의 기계론적 특징을 밝히고, 다윈이 이해한 목적론이 전통적인 철학적 목적론의 주장과 다른 것임을 해명한다. 텔레오노미는 형이상학적 목적 개념을 유전 프로그램으로 대체하지만, 생명현상의 설명을 위해 유전 프로그램이 확대되면서 결국 목적 개념으로 귀환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밝힌다. 마지막으로 형이상학적 요소를 제거하고 목적론을 자연화하고자 하는 논리실증주의의 시도를 이어받은 현대 영미권의 생물학적 기능 논쟁에서, 기원론과 성향론의 일면성을 지적하고 그것들의 종합을 자처하고 등장한 유기체론을 칸트와 헤겔의 목적론에 근거해서 비판적으로 고찰한다.
이를 통해 저자는 생물학자들과 현대의 생물 철학자들이 전통 목적론에 대한 오해와 편견 때문에 서양의 주요 철학자들의 중요한 통찰을 간과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아울러 철학이 생명에 관한 목적론적 통찰을 통해 자연과학 진영 깊숙이 침투할 수 있음을, 철학은 더 이상 자연과학에 밀려 인간적 세계로 물러날 필요 없이, 목적론적 생명관과 함께 객관 세계의 설명에 있어서 크게 전진할 수 있음을 증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