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샐리리맨이 셰프가 되기까지
시간을 거슬러 ‘금모으기 운동’이 한창이던 IMF 사태 당시 저자는 잘 나가던 대기업을 그만두었다. 어려서부터 좋아하고 잘했던, 선생님의 칭찬과 친구들의 감탄을 기억하며 오래 집중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삼십 대 후반의 나이에 그는 런던의 르 꼬르동 블루로 떠난다. 이국의 땅, 낯선 분야에서 온갖 차별과 냉대 속에서 수모와 수치를 감내하며 요리를 배웠다. 요리 학교를 졸업하고 현장 경험을 쌓은 뒤에는 서울에 돌아와 레스토랑을 오픈한다.
하지만 그는 현실에 가로막힌다. 유행을 좇아 급변하는 세상에서 레스토랑이 안전할 수는 없었다.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시간이 흘러도 촌스럽지 않은 요리는 없을까, 고민하던 차에 그의 눈에 치즈와 살루미가 도드라졌다. 치즈와 살루미는, 된장이나 간장처럼 좋은 재료에 노력과 정성을 들여 오랜 시간 기다려야 깊은 맛을 낼 수 있는 발효식품이다. 다시 말해 ‘장인정신’을 담은 ‘소울 푸드’요 ‘아티장 푸드’이다. 그는 아티장 푸드를 배우기 위해 다시 세계 각지로 떠난다. 미국과 이탈리아에서 살루미를 배우고, 뉴질랜드와 프랑스에서 치즈를 배운다.
한국에서 치즈와 살루미를 ‘제대로’ 만든다는 것. 어쩌면 그 일은 프랑스에서 된장과 김치를 제대로 만드는 일과도 같다. 그래서 저자는 레스토랑에서 일하다가도 아티장 푸드를 향한 노력을 멈출 수 없다. ‘본질’이라는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에게 고생이 달라붙을 수 없는 까닭이다. 치즈와 살루미의 가장 기본이 되는 우유와 고기조차 구하기 어려운 한국에서 저자는 최선의 재료를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리고 자신이 만든 치즈와 살루미를 요리해 손님들에게 선보인다.
“누군가 한국 외식 산업의 역사를 기록한다면
아마도 나는 최초로 레스토랑에서 치즈와 살루미를 만든 셰프로 기록될 것이다.”
짧게는 이틀, 길게는 1년 이상 걸리는 치즈와 살루미로 음식까지 만든다고 하면, 속사정을 아는 사람은 “정신 나갔어?”라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금세 구닥다리가 되어버리는 세상에서, 저자는 느리고 더디기만 한 아티장 푸드의 길을 고집한다. 소량 생산, 에너지 소비 최소화, 친환경 포장재와 디자인, 동물 복지, 다양한 품종의 유지와 보존, 로컬 식자재 소비를 통한 탄소 발자국 저감, 전통으로의 회귀를 통한 지속 가능성…. 그래서 저자는 ‘잘’ 만들고 싶다. 비록 자본주의 산업화와 반대되는 방식으로 돌아간다 해도, 벤치마킹할 롤모델이 없어 전전긍긍하면서도, 법과 제도에 가로막혀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으면서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인터넷을 검색하고 책을 뒤지고 외국 어딘가 있는 장인을 찾아 나선다.
“유기물은 발효와 숙성이라는 단계를 거치지 않으면 빨리 상하고 썩는다. 어차피 썩고 분해되어 사라질 운명이지만 발효와 숙성을 거쳐 생명을 연장하고 다른 유기물에 이로운 역할을 하고 사라진다. 인생도 비슷하다. 어떤 방식으로 살든 옳고 그름의 개념은 없다. 어차피 우주의 먼지로 사라질 인생이지만 스스로 발효와 숙성을 통해 오래 지속되면서 어떻게든 세상에 이로운 영향을 주고 다양한 가능성을 만들고 사라질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서양의 아티장들만큼 치즈를 잘 만드는 것이 우선의 목표라면 최종 목표는 한국인의 시각으로 만들 수 있는 치즈를 만드는 것이다.” -〈에필로그〉 중에서
치즈의 풍미에 반해 치즈를 공부하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한국 치즈 시장도 성장하고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성장세와는 달리 국내에는 제대로 된 발효 치즈와 육가공품을 맛보거나 정보를 얻을 수 있을 만한 곳이 거의 없다. 저자는 이러한 한국 현실을 두루 겪어냈다. 수없이 찾아 나선 외국의 스승들과의 이야기는 물론, 국내 목장 등지를 찾아다니며 발로 뛰고 몸으로 체득한 그의 이야기 하나하나가 어쩌면 치즈가 숙성하는 과정이 아닐까. 어쩌면 저자가 추구하는 ‘아티장 푸드’는 다다를 수 없는 이상(理想)에 속한 음식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여정에 있는 한 그는 아티장이자 누군가에게는 롤모델이며, 그의 이야기는 귀중한 기록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