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와 현생, 흥망과 성쇠:
신화로 시작해 복잡한 세상을 보여 주고, 회한으로 마무리하다.
『홍루몽』은 중국 소설 중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뽑히지만, 대중에게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다. 유럽에서 19세기에 소설이 등장한 것처럼, 명청 대에 이르러 소설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선두에 『홍루몽』이 있었다. 이전 산문 작품들의 장단점을 모두 취합해, 중국 문학의 정수를 일구어냈다. 『홍루몽』 이전의 문학은 완전하지 못했다. 신화적인 요소가 강하기도 했고, 문체도 자연스럽지 못했다. 인물 군상 또한 다양하지 않았다. 하지만, 『홍루몽』에 이르러 다양하고 전형적인 인물 군상이 나타나고, 그 문체 혹은 어투 또한 자연스러워졌다. 신화적인 요소가 사라지지는 않았으나, 이야기의 시작과 마무리를 위해서 사용되었을 뿐, 결국 내용은 현세에서 벌어지는 사건에 초점을 두었다. 이를 통해 독자는 눈앞에서 펼쳐지는 듯 생생한 묘사와 긴장감 넘치는 갈등을 통해 손에 땀을 쥐고 소설을 읽게 되었다.
여와가 버린 돌 하나가 현생에 내려와 온갖 치정과 파란을 겪고, 결국 속세를 떠난다. 이것이 이 소설의 전체 줄거리지만, 이 하나의 흐름만을 가지고 소설 전체를 논할 수는 없다. 그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 하나하나가 하나의 소설이자, 이야기이며, 각자의 의미를 지닌다. 그렇기에 홍루몽의 매력에 빠진 사람들을 가리킬 때, 수수께끼 미(謎) 자를 사용해 홍미(紅謎)라 가리킨다.
환상적 낭만주의, 그리고 사랑의 성서
『홍루몽』에서 사랑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저자도 사랑과 운명에 대해 한 장을 할애했다. 『홍루몽』 속 사랑은 낭만주의적 사랑이다. 사랑에 목말라하고, 그 사랑을 쟁취하고자 한다. 하지만, 그 사랑은 이룰 수 없다. 비극적 사랑을 낭만주의라 한다면, 그 전형을 중국에서는 『홍루몽』에서 찾을 수 있으리라. 사랑을 할 때 심장을 간질이는 그 애틋함을, 사랑을 잃었을 때 온몸이 무너지는 그 좌절감을 『홍루몽』에서는 그런 모든 감각을 세밀하고, 감각적으로 표현한다. 이런 묘사가 이 책이 큰 사랑을 받고, 아직도 문화적 재생산이 이루어지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그 치밀한 감정 묘사 중 신화적 요소의 출현은 환상 속 세계로 우리를 인도한다. 어느 순간 환상과 현실이 이어지고, 현세에서, 대관원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이 환상과 같다고 느껴질 뿐이다. 대관원이라고 불리는 이 환상적 공간이 사랑이라는 감정과 만나 하나의 꿈만 같은 삶을 그려 낸다.
청대의 화려한 문화가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도 한몫한다고 할 수 있다. 청대 문화를 설명하는 부분은 오히려 낭만주의가 아니라 사실주의라고, 생리학적 묘사라고 해도 될 만큼 상세하다. 이러한 묘사는 우리를 청대 홍루로 초대해 그 문화를 눈앞에서 직접 보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 덕분에 우리는 환상 속 낭만이 우리 눈앞에 펼쳐지고, 그 사랑의 감정이 더욱 사실적으로 느낀다.
흥망성쇠, 인과응보:
가문의 일대기 속 회한 맺힌 참회록
『홍루몽』에서 놓치지 않아야 할 내용은 가문의 일대기라고 할 수 있다. 저자 또한 『홍루몽』의 작가 조설근의 일생이 작품에 반영되어 흥성했던 한 가문이 멸망하는 과정을 자세히 그렸다고 설명한다. 처음에는 사소하게 느껴졌고, 당연하게 느껴졌던 것들이 뭉쳐져 결국 쓰나미처럼 한 가문을 파멸로 이끌었다. 호관부부터 시작해 성적 타락, 사채 등 많은 일들이 결국 가문 몰락의 원인이 되었다. 부자와의 갈등도 있었고, 대관원이 야간수색을 당한 후 완전한 쇠락의 길을 걸었다. 이에 모든 이가 지난날을 되돌아보며 회한의 눈물을 삼켰다. 그리고 현세의 인간이 되었던 돌은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다시, 홍루몽 읽기
세창명저산책 시리즈 104권 『홍루몽 읽기』는 체계적인 구성과 저자의 친절한 설명으로 『홍루몽』의 방대한 서사를 따라가는 독자에게 좋은 해설서가 되어 줄 것이다. 『홍루몽』에서 『금릉십이차』가 주인공들의 운명을 간략하게 알려 주는 복선 혹은 도구의 역할을 했다면, 『홍루몽 읽기』를 지금까지 몰랐던 중국 문학의 정수를, 홍학의 즐거움을 독자에게 선사할 것이다. 30여 년간 명청 소설, 특히 『홍루몽』을 연구한 저자가 그리고 있는 홍루의 세계를 몸소 감상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