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서 영감을 얻는다는 것
‘자연주의’는 현재 정원·조경 분야 트렌드를 설명하는 핵심어다. ‘자연주의 식재디자인’의 선구자로 손꼽히는 영국의 원예가이자 정원디자이너인 나이절 더닛(Nigel Dunnett)의 작업 모토는 ‘Inspired by Nature. Design for People’이다. ‘자연에서 영감을 얻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저자는 자연주의 방식이 단지 공간을 녹색으로 채우거나, 자연을 모방하려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 방식의 중요한 목표는 “내면 깊숙한 곳에 있는 근본적인 무언가를 끌어당기는 것, 매우 긍정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자연경관이 우리의 내면에 불러일으킬 수 있는 정서적 반응 중 가장 심오하고도 활기찬 면을 포착해 북돋우는 것”이 바로 자연주의 식재디자인의 핵심이다.
저자가 말하는 영감은 “식물군락의 역동적이고 활기차며 강한 생명력과 하나의 체계로 작동하는 모습”에서 온다. 그래서 정원에서 최소한의 자원만으로 유지되는 지속 가능한 자연주의 식재디자인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환경적인 힘과 복잡하게 상호작용하고 있는 자연의 식물군락의 기본 작동 원리를 이해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늘 자생식물과 군락을 작업의 시작점으로 삼는다는 나이절 더닛은 군락 속 식물 간 상호작용을 직접 관찰하는 것보다 정원사에게 더 좋은 경험은 없다고 강조한다.
나이절 더닛의 중요한 아이디어 중에 하나가 바로 ‘향상된 자연(enhanced-nature)’이다. 단순히 자연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 아닌 인간의 감정적 반응, 애착을 불러일으킬 수 있도록 ‘향상시킨’ 자연을 의미한다. 향상된 자연은 자연에서 느낄 수 있는 숭고함, 고양감, 즐거움은 물론 그 안에서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감각을 풀어내 자연에 몰입할 수 있게 해 준다. 감정에 강한 자극을 주고 깊게 몰입할 수 있게 만드는 ‘설계된 경관’을 창조하는 방법, 시각적으로 아름다우며 사람들에게 행복감을 전해 주는 동시에 생물다양성 가치가 높고 자원 투입량이 적은 지속 가능한 ‘저투입 고효과’ 식재디자인 방법, 이 ‘향상된 자연’을 일상의 공간으로 들여오는 방법이 이 책이 다루는 주요 내용이다.
아름답고 생태적인 지속 가능한 식재를 위하여
책 전반부가 우리가 막연하게 알고 있었던 ‘자연’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에 관한 내용이라면, 중반부 이후는 본격적으로 아름다운 자연경관의 본질과 정서적 힘을 포착하면서도 극대화되고 향상된 특성을 지닌 경관, 정원 또는 정원의 일부 구역을 구조화하고 디자인하고 식재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소개한다. 4장 ‘자연 읽기’에서는 자연주의적 경관을 만들기 위해 알아 두어야 할 경관의 구성 요소, 초본으로 이루어진 바닥층, 관목을 기반으로 하는 경계인 벽층, 교목과 숲을 기반으로 한 천장층을 자세히 다룬다. 어떻게 개별적인 공간을 이루는지, 서로 어떻게 연결되는지, 더 큰 경관을 위해 어떻게 결합하는지 등을 살펴본다. 저자가 중요하게 참조한 초지, 관목지대, 습지 등 실제 자연경관으로부터 발견한 식재디자인 원리는 실제로 자연의 식물군락을 어떻게 관찰할 것이며, 야생적이거나 준자연적인 식생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일반적인 패턴을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5장 ‘식재디자인의 도구’는 지금까지 언급한 자연에서 받은 영감을 실제 정원·조경디자인 영역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에 관한 실용적인 내용으로 채워진다. 책에는 영국 스태퍼트셔주 트렌텀정원, 런던 바비칸센터의 비치가든과 고가 산책로, 런던 퀸엘리자베스 올림픽파크 등 나이절 더닛의 주요 작품을 포함한 아주 다양한 실제 식재디자인 사례가 수록되어 있어 내용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요즘처럼 기후변화가 전 세계적인 화두로 떠오른 시기에 6장 ‘미래의 자연’은 특히 주목할 만한 내용이다. 이미 전 세계 도시는 과다한 빗물을 흡수해 주고, 도시의 포장면이 과열되는 것을 막아 주며, 오염된 대기와 수질을 정화하고, 인간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자연과의 교감을 가능하게 해 줄 토양과 식물층이 매우 부족하다. 자연주의 식재디자인이 정원과 조경이 개입했던 기존의 공간을 뛰어넘어 대중적인 원예의 범위로 다루어지지 않았던 옥상, 벽면, 주차장, 거리, 공업단지나 상업개발지 등을 포함한 모든 공간에까지 그 영역을 넓혀야 하는 이유다. 특히 나이절 더닛의 빗물정원(rain garden)과 물 순환 디자인(water-sensitive design), 건조식재는 날씨를 예측하기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가 특히 주목해야 할 개념이다. 생명의 그물망을 고려해 무척추동물의 은신처를 만들어 주는 식재디자인 역시 미래 정원·조경이 반드시 관심을 가져야 하는 주제다. 마지막 장 ‘재배지침’에서는 저자가 주로 사용하는 몇 가지 표준화된 방법을 소개한다. 부지 준비부터 식재, 파종, 초지 조성, 관리 등 실제로 자연주의 식재를 적용할 때 필요한 정보들이 정리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