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생명은 빛의 몸을 갖고 있다.”
빛의 몸을 볼 수 있는 특별한 능력자들
육체에 포개진 또 하나의 몸, 육체가 죽어도 사라지지 않는 사차원의 존재가 있다. 우리는 흔히 귀신, 유령, 이더(Ether), 영혼이라고 부르지만, 그 존재를 다르게 부르는 자들이 있다. 그들의 눈에 그 존재는 밤하늘에 떠 있는 무수히 많은 별처럼 밝게 빛난다. 그래서 그들은 ‘빛무리 몸’이라고 부른다.
빛무리 몸을 볼 수 있는 것 외에도 그들에게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 유체 이탈 능력, 사물을 통과하는 능력 그리고 빛무리 몸을 소멸시키는 능력. 우연한 계기로 힘을 얻은 그들이지만 자신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사람들의 핍박을 견뎌야 했다.
“사람은 미움을 받으면 자신이 잘못했다고 생각하게 된다. 뭘 잘못했을까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가 무엇이 잘못이고 잘못이 아닌지조차 분간할 수 없게 되면 존재 자체가 잘못이라는 생각이 들지.” (16쪽)
그러나 모순적이게도, 사람들은 자신들이 필요로 할 때 그들을 찾았다. 눈앞에 닥친 고난을 해결할 능력이 없는 사람은 의지할 곳을 찾기 마련이니까. 그들은 자신들을 향하던 뭇매를 뒤로한 채 사람들을 돕기 위해 나선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이 빛무리 몸을 보거나 유체 이탈을 할 수 있어서가 아니라, 자신과 같은 사람들을 구하면서 그들 스스로도 상처를 치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누구든, 어디에서 왔든 당신들이 괜찮아지는 것을 보면서 우리도 괜찮아졌어.” (63쪽)
사실 가진 능력과 별개로 그들이 처한 상황은 평범한 사람들과 다를 바 없다. 똑같이 상처받고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지극히 평범한 존재에 불과하다. 단지 사람들은 잘 보려 하지 않는, 모든 사람이 차등 없이 갖고 있는 ‘빛’을 알아볼 수 있어서 그들은 사람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게 어쩌면 그들이 가진 진정한 능력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외계인도, 귀신도 아니었다.
단지 화를 낼 데가 없고, 몰두할 게 필요한 사람들일 뿐
『투명 공간 앨리스』는 외계 종족이 어디에서 왔는지, 어쩌다 주인공 일행이 능력을 갖게 됐는지 자세히 밝히지 않는다. 오히려 주인공과 친구들이 일상에서 부당하고 모순적인 상황을 겪는 장면이 많이 등장한다. 이러한 흐름은 그들이 소위 ‘퇴마’를 하면서 만나는 의뢰인들의 사연으로 이어진다.
“그 후로도 믐이 찾아낸 사람들은 대부분 빙의가 아니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자기 자신을 미워하고 있는 사람들일 뿐. 엉뚱하게도, 우리의 도움을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기도 했다.” (56쪽)
작중에서 사람들이 ‘빙의’라고 말하는 현상은 육체의 주인이 아닌 다른 빛무리 몸이 들어간 경우다. 보통은 착각인 경우가 많지만, 사람들은 절실하게 누군가의 도움을 바라곤 한다. 그래서 몸 밖으로 꺼내주거나 몸을 통과하게만 해줘도 사람들은 말끔히 낫는다. 물론 주인공 일행이 쫓는 외계 종족 ‘데커’가 침입한 경우도 있었지만 데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것 또한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일이다.
『투명 공간 앨리스』는 이렇듯 남들과 다른 능력을 가진 자들의 상처와 그들이 내리는 선택에 집중한다. 그들은 사람들에게서 받은 상처를 되돌려주지 않고 오히려 사람들을 돕고 보살핀다. 사람을 둘러싼 증오의 연쇄를 끊어내고자 하는 그들의 선택은, 모든 빛이 그러하듯 어둠 속에서 더욱 밝게 빛난다.
결국 외계인도, 다른 차원에서 온 존재도 아닌 그들을 보면서 우리는 느낄 수 있다. 다른 세상의 이야기인 척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는 작가의 말처럼, 서로를 구원할 힘은 거창한 능력이 아니라 서로가 빛나는 존재임을 아는 것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말이다.